땀 냄새가 먼저 닿았다.
아침 출근 시간의 지하철. 겨드랑이 밑에 끼인 채 용산역을 향했다. 커피와 섬유유연제가 뒤섞인 공기. 옆자리 남자가 이어폰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하루를 향해 가고 있었다.
KTX 대합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자리에 앉았다. 출발까지 한참 남았다.
습관적으로 대합실을 훑었다. 표정, 시선, 손의 무게중심. 형사 때 배운 거라기보단, 원체 이런 놈이었다.
시선이 멈췄다.
기둥 옆. 삼십 대 중후반의 남자. 깔끔한 코트, 캐리어 하나. 눈길을 끈 건 외모가 아니었다. 왼손에 든 아이보리색 봉투. 금색 문양.
같은 초대장이었다.
남자가 봉투를 코트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서진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인식하고, 평가하고, 거리를 재는 눈.
탑승 안내 방송이 울렸다.
커피를 마저 마시고 일어섰다. 7호차 통로를 걸으며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 세 명을 세었다. 그중 하나. 화려한 옷차림의 이십 대 여자가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혼잣말을 했다.
"진짜 이게 대박 날 줄 몰랐지. 미스터리 여행 콘텐츠, 구독자들 미쳐버리겠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귀는 열어두었다. 이 여자도 초대받은 건가. 그걸 콘텐츠로 찍고 있고.
KTX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서울의 회색빛 건물들이 뒤로 밀려났다. 통로 건너편에서 아이가 과자 봉지를 뜯으며 엄마에게 졸랐다. 무릎 위의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지퍼를 열다가 다시 닫았다.
*
바람이 달랐다.
목포역에 내리자 혀끝에 바다의 짠기가 닿았다. 서울의 바람은 빌딩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마른 것이었다면, 여기 바람은 무겁고 젖어 있었다.
목포는 처음이 아니었다. 3년 전에도 이 도시를 지나 율도로 갔다. 그때는 해경 보트 뒷자리, 배지를 단 수사관으로서.
라디오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방향제 냄새가 진했다. 백미러에 조그만 인형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기사가 백미러 너머로 서진을 흘깃 보았다.
"관광이시우?"
"네, 비슷하게."
터미널에 닿았다. 문을 열기 전에 주변을 훑었다. 바닥에 담배꽁초가 세 개 있었다. 같은 브랜드. 일반 여객선 승강장과 별도로, 동쪽 끝에 작은 전용 선착장. 그 앞에 남자 둘. 검은 정장. 안내원으로 보이겠지만 서진의 눈에는 보안 요원이었다. 귓속 이어피스. 넓은 어깨. 정장 왼쪽 안자락이 미세하게 불룩했다.
"초대장을 확인해도 될까요."
봉투를 보여주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안쪽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전원이 모이면 출발합니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가죽 냄새가 코를 감쌌다. 호텔 라운지를 축소한 것 같은 공간. 가죽 소파, 미니 바, 은은한 간접 조명. 커피 원두 향이 가죽 사이로 번졌다. 상당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이미 여섯 명이 있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빠르게 읽어냈다.
소파 한쪽. 오십 대 남자. 잿빛 양복에 손목시계의 금속광택. 구두는 수제화. 앞코의 마감이 기계 제품과 달랐다. 다리를 꼬고 앉아 대기실을 둘러보는 눈에 거만함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맞은편. 용산역에서 눈이 마주쳤던 남자. 깔끔한 셔츠에 캐시미어 코트. 손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손등에 정맥이 또렷하고, 손톱은 짧고 균일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외과의가 손을 관리하는 방식.
미니 바 앞. KTX에서 본 유튜버. 한 손에 음료, 다른 손에 핸드폰. 이미 대기실 곳곳을 촬영하고 있었다.
창가. 이십 대 초반 여자. 무채색 옷에 검정 테 안경. 무릎 위에 펼쳐놓은 노트북 화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눈을 들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런데 서진이 들어서는 순간, 안경 너머의 시선이 찰나 동안 가방에 머물렀다. 노트북을 쳐다보는 척했지만, 커서가 움직이지 않았다.
소파 끝. 육십 대 남자. 갈색 재킷, 면바지. 무릎 위의 수첩에 볼펜을 올려놓고 주변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미니 바 카운터에 기댄 이십 대 후반 남자. 캐주얼한 옷에 운동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긴장된 공기를 무시하겠다는 태도. 눈이 멈춘 곳은 손이었다. 손등과 손가락 사이에 퍼진 화상 흉터. 기름이 튀긴 자국.
그가 다가왔다.
"혹시 이게 뭔지 아세요? 나는 영문도 모르고 왔는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가방을 무릎 옆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이야, 5억이면 뭐든 하죠." 대기실을 둘러보며 낮은 휘파람. "솔직히 사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와보니까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이 인테리어만 해도 돈 좀 썼잖아요. 저 커피 괜찮은 건가요?"
"쓸데없는 소리 마."
낮고 거친 목소리였다. 잿빛 양복의 오십 대 남자. 다리를 꼰 채 턱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게 진짜면 말이 되고, 가짜면 내가 가만 안 둬."
요리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서운 아저씨."
유튜버가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혹시 같이 한컷 찍을 분? 미스터리 여행 브이로그 찍고 있거든요. 나중에 모자이크 처리—"
"됐어." 양복의 남자가 잘라 말했다.
입술이 살짝 비죽거렸다. 핸드폰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잠깐 떨렸다.
건너편에서 코트 차림의 외과의가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읽는 게 아니었다. 눈 가장자리로 대기실의 사람들을 훑고 있었다.
안경의 여자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서진의 시선과 부딪쳤다. 자기가 관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눈. 그래서 오히려 먼저 쳐다보는 눈.
미니 바 냉장고가 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수첩의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많이들 긴장하셨나 봐요. 괜찮습니다. 다들 처음이니까."
*
삼십 분 뒤, 나머지 다섯 명이 도착했다. 열두 명이 채워졌다.
배는 예상보다 컸다. 이십 인승 쾌속정. 하얀 선체에 이름도 번호도 없었다. 미등록 선박이었다.
엔진이 걸렸다. 진동이 발밑에서 올라왔다. 항구를 빠져나가며 물살이 거칠어졌다. 뒤쪽에서 차민경이 난간을 붙잡으며 얼굴을 찡그렸고, 송민호가 "먼 데를 보래요, 먼 데를" 하며 부산하게 옆에 붙었다.
갑판 앞쪽에 서 있었다. 바람이 코트를 후려쳤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때렸지만 치우지 않았다.
율도.
3년 만이었다. 남쪽 절벽의 수직 단면은 기억 그대로. 파도가 깎아낸 회색빛 암벽. 그 위에 콘크리트 건물이 왕관처럼 얹혀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었다. 3년 전에는 폐허였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이 드나들고, 외벽은 녹색 덩굴에 반쯤 삼켜져 있었다.
지금은 외벽이 새로 칠해져 있었다. 창문에 불빛이 보였다. 누군가 이 폐허를 되살린 것이다.
건물 윗부분으로 시선을 올렸을 때, 옥상 난간 위에 무언가가 보였다. 사람인지 구조물인지. 역광 때문에 실루엣만 잡혔다. 배의 흔들림 때문에 한 초 만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단하죠?"
옆에 윤재하가 서 있었다. 언제 갑판에 나왔는지 몰랐다. 코트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수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네요."
"관찰력이 좋으시군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혹시 이 섬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뭘 보여주고 뭘 감출까.
"이름은 율도라고 들었어요. 예전에 재벌가 소유였다고."
"JK그룹." 윤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유명했죠. 지금은 거의 잊힌 이름이지만."
JK그룹. 이걸 바로 꺼내네. 상식인가, 아니면 뭘 알고 있는 건가.
"의사시죠?"
윤재하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어떻게?"
"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잠깐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서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눈도 함께 웃었다. "외과의입니다." 파도가 뱃전을 때렸다. 물보라가 갑판 위로 튀었다. "한서진 씨는?"
"사설탐정이에요."
"탐정." 바람에 코트 깃을 여미며 말을 멈추었다. "아, 아닙니다. 실례가 될 뻔했네요."
뭘 물으려다 삼킨 건지. 먼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곳에 탐정이 초대됐다는 건, 뭔가 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네요."
대답하지 않았다. 배가 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새로 지은 목재 선착장 위에 검은 정장의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배가 접안했다. 밧줄이 말뚝에 감기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열두 명이 하나씩 내렸다. 서진이 마지막이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선착장 말뚝에 앉아 꼼짝 않고 있었다. 발이 나무 판자에 닿는 순간, 등 뒤에서 엔진 소리가 다시 울렸다.
돌아보았다. 배가 선착장을 떠나고 있었다.
"잠깐, 배가—" 강다은이 소리쳤다.
늦었다. 배는 빠른 속도로 물 위를 갈랐다. 흰 물보라가 점점 작아졌다. 선착장에 남은 안내원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72시간 후에 배가 돌아옵니다."
박도현이 안내원에게 성큼 다가갔다. "뭐? 72시간이라고?"
안내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선도. 호흡도. "리조트로 안내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도착 후 설명됩니다."
수평선 위로 작아지는 배의 흰 점을 바라보았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신호 없음.
핸드폰을 밀어 넣고, 절벽 위의 리조트를 올려다보았다. 해풍이 솟구쳐 올라오며 코트 자락을 뒤집었다.
안내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열한 명의 발소리가 자갈을 밟으며 따라왔다. 절벽을 따라 난 오르막길. 가시덤불 사이로 녹슨 안내판이 보였다. 글씨는 다 벗겨져 있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바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정문이 열려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발이 대리석 바닥 위에서 멈췄다.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고급 가구. 꽃. 은은한 클래식 음악. 하지만 눈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모든 창문의 방탄유리. 비상구의 전자 잠금장치. 천장 구석마다 박힌 CCTV의 붉은 점등.
리조트가 아니었다.
로비 중앙에 긴 테이블. 그 위에 열두 개의 봉투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 각 봉투에 이름.
한서진. 윤재하. 차민경. 박도현. 이수아. 정태호. 오하늘. 김준영. 백서연. 송민호. 류지원. 강다은.
열두 명이 테이블 앞에 섰다. 누구도 먼저 봉투를 집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환기구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벽면의 대형 스크린이 켜졌다. 하얀 빛이 번지며 열두 개의 그림자를 바닥에 드리웠다.
"환영합니다."
변조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사방에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72시간의 심판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