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

[Part2] 1화. 엄마 등이 작아 보인 날

by 유리사탕

추석 전날, 버스를 탔다.


원룸에서 부모님 집까지 한 시간. 같은 서울인데 끝에서 끝이라 멀다. 창밖으로 익숙한 거리가 스쳐 갔고, 이어폰을 끼고 있지만 음악은 꺼져 있다.

그냥 사람들 말소리가 싫었다.


정류장에 내리니 엄마가 서 있었다. 멀리서 봤다. 사람들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는 작은 사람.

검은색 패딩, 작년에 내가 사드린 거다. 손에는 비닐봉지.

아마 내가 좋아하는 약과. 마중 나오면서 앞 마트에 들렀겠지.


가까이 가서야 알아본다.

"어, 왔어?"


웃는 얼굴. 주름이 늘었다. 눈가에, 입가에. 언제 이렇게...

삼 개월 전 명절에도 봤는데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안 본 건지도 모르겠다.


같이 걸어서 집으로 간다. 내가 들게, 했더니 괜찮다고 손을 저었다. 나란히 걸으며 옆모습을 슬쩍 보니, 어느새 늘어난 흰 머리카락이 보인다. 염색을 안 한 건가, 아니면 염색해도 이만큼 나오는 건가.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걸 물어보면 엄마가 신경 쓸 테니까.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거실에 앉아 계셨다. 뉴스를 보다가 고개만 돌린다. "왔어." 그게 전부다. 우리 집은 원래 그렇다. 말이 적다. 대신 밥상이 말을 한다.


저녁 식탁에 반찬이 열두 가지. 갈비찜, 잡채, 동그랑땡, 배추전.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이 빠짐없이 올라와 있다.

스물아홉에도 엄마한테는 아직 애인가 보다. 집에 오면 항상 이 반찬들이 놓여 있다.


많이 먹었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남기면 안 될 것 같아서.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됐다고 했지만 그냥 했다. 싱크대 앞에 서니 엄마 키가 보인다. 내 어깨에도 못 미친다.

엄마가 이렇게 작았나.. 초등학교 때는 엄마 손이 세상에서 제일 컸는데.


밤에 방에 누웠다. 내 방, 이라고 하기엔 이제 반쯤 창고가 된 방. 책상 위에 대학교 원서가 아직 꽂혀 있고, 벽에는 어릴 때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시간이 여기만 멈춰 있다.


새벽에 물 마시러 나왔다가 부엌 불이 켜져 있었다. 엄마가 내일 아침 차려줄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등이 보인다. 둥글게 구부린 등, 칼질하는 작은 어깨. 그 뒷모습이 갑자기 낯설다.


내 기억 속 엄마는 크다. 무서울 만큼 단단하고,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근데 지금 저 등은, 내가 두 팔로 감싸면 남을 만큼 작다.


"엄마, 뭐 해."

"어, 깼어? 내일 아침에 네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그냥 자. 내일 내가 할게."

"됐어, 금방이야."


그 '금방'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일까.


돌아서 방으로 가는데 목이 멨다. 아무 이유 없이. 아니, 이유는 알고 있다. 말을 안 할 뿐이다. 엄마한테도, 나한테도.


다음 날 내 집으로 돌아갈 때 엄마가 짐을 들고 나왔다. 반찬 통이 가득 든 종이가방. 내가 받아 들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냥 들었다.


"무겁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엄마 손에서 가방을 가져오는 그 짧은 순간, 손끝이 스쳤다.


거칠었다.


버스 창가에 앉아 가방을 내려다봤다. 반찬 통 사이에 약과가 끼워져 있었다. 비닐봉지에 손글씨.


'많이 먹어.'


세 글자. 그게 엄마의 전부였다.


나는 창밖을 봤다. 익숙한 서울 거리가 흘러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