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2화. 혼자 떠난 여행에서 보낸 엽서
비행기 표를 끊은 건 새벽 두 시였다.
술 마시고 들어와서, 뭔가에 홀린 듯 검색했다.
후쿠오카, 편도 15만 원.
떠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고, 다음 날 아침 결제 완료 메일을 보고 잠이 확 깼다.
진짜 끊었네...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금요일 반차를 내서 혼자 인천공항에 갔다.
공항은 이상한 곳이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무도 나를 모른다.
회사에서는 유 대리, 집에서는 아들, 친구들 사이에서는 민우(가칭)야.
하지만 여기서 나는 그냥 여권 번호 하나다.
그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비행기가 뜬다. 창밖으로 서울이 작아진다.
내가 매일 전쟁하던 그 도시가 손바닥만 해진다.
별것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가 금방 지운다.
돌아가면 다시 커질 테니까.
후쿠오카 공항에 내리니 비가 왔다. 우산이 없었다.
원래였으면 짜증 냈을 텐데, 그냥 맞고 걸었다.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여기서는 비를 맞는 사람도, 길을 잃은 사람도, 혼자 밥 먹는 사람도 이상하지 않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왔다.
라멘 집에 들어가 혼자요, 라고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아무렇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혼밥이 슬펐는데, 여기서는 그냥 자연스럽다.
면을 후루룩 넘기면서 생각했다. 왜 여기서는 괜찮을까.
아마 기대가 없어서 아닐까.
서울에서의 나는 늘 무언가 여야 했다.
괜찮은 직장인, 듬직한 아들, 재밌는 친구. 역할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름도, 직함도, 관계도 없다. 그 가벼움이 좋다.
둘째 날, 텐진 지하상가를 걷다가 문구점 앞에서 멈췄다.
엽서가 놓여 있었다. 후쿠오카 야경 사진,
반짝이는 불빛 위로 'Wish you were here'라고 적혀 있었다.
한 장 집어 들었다. 누구한테 쓰지.
카페에 앉아 펜을 꺼내 엽서를 한참을 들여다봤다.
쓸 사람은 많았다. 엄마, 친구, 아니면 회사 동기.
근데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
“잘 지내? 나 지금 후쿠오카야.” 그건 카톡으로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엽서에는 뭔가 다른 걸 써야 할 것 같았다.
손으로 쓰는 글자에는 무게가 다르니까.
그래서 솔직하게 써봤다.
'나, 요즘 좀 힘들었어.'
거기서 펜을 멈추고 내려놓았다.
이 한 줄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서울에서는 절대 못 할, 사람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 않을 말.
그런데 바다 건너 낯선 카페에 앉으니까, 이 한 줄이 툭 튀어나왔다.
나머지는 쓰지 못했다. 그 뒤에 뭘 이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도망쳤다고? 여기서 뭘 찾고 싶다고? 돌아가면 달라질 거라고?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솔직한 건 첫 줄이 전부였고, 그 뒤는 전부 거짓말이 될 것 같았다.
엽서는 부치지 않고, 지갑 안쪽에 넣었다.
최대한 접히지 않게 조심해서.
누구한테 보내는 것보다, 내가 갖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날, 바닷가에 가서 벤치에 앉아 파도를 봤다.
아무 생각 없이.
그게 가능하다는 걸 오랜만에 알았다.
서울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불안이 찾아왔는데, 여기서는 바람만 온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갑을 열어봤다. 엽서가 있었다.
'나, 요즘 좀 힘들었어.'
읽으니까 웃음이 났다. 그래, 힘들었지. 인정하는 데 비행기 값이 들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길,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엽서 모서리가 만져졌다.
부치지 못한 엽서. 받는 사람 칸은 비어 있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나한테 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다시 유 대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도.
지갑 속에 한 줄이 있다. 그걸로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