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냄새가 계단통에 고여 있었다.
방을 나서며 머릿속에 건물의 평면도를 그렸다. 어제 오하늘과 함께 훑었던 건 대충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였고, 오늘은 제대로 뜯어볼 생각이었다.
1층은 빠르게 돌았다. 로비의 CCTV는 세 대, 사각지대는 프런트 데스크 뒤편뿐이었고 비상구 두 곳은 모두 전자 잠금 상태였다. 화분의 흙이 바짝 말라 있는 걸 보니 물을 주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더라. 식당의 벽 패널은 닫혀 있었고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심판자만 열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주방 뒤편 벽에서 이음새를 발견했는데 식당 패널과 비슷한 형태라 숨겨진 문이 하나 더 있을지도 몰랐다. 라운지에서 서쪽 벽을 두드리자 빈 울림이 돌아왔다. 콘크리트 뒤에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노트에 위치를 표시했다.
눈에 보이는 데서 찾을 건 이 정도였다.
2층 복도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강다은과 마주쳤다.
"수색이에요?"
"네."
"같이해요."
고개를 끄덕였다.
객실 복도를 지나쳤다. 201호부터 212호까지 열두 개의 방이 줄지어 있었다. 참가자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목적지는 복도 끝, 비상계단 옆의 작은 청소 도구함이었다.
객실 복도를 지나쳤다. 201호부터 212호까지 열두 개의 방이 줄지어 있었다. 참가자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목적지는 복도 끝, 비상계단 옆의 작은 청소 도구함이었다.
강다은이 문을 열었다. 빗자루와 걸레, 세제통이 놓여 있고 그 뒤로 벽이 보였다.
"이거." 안쪽을 가리켰다. "시멘트 색이 달라요."
들여다보았다. 회색 콘크리트 위에 밝은 회색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다. 손끝으로 표면을 훑자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부분이 느껴지더라. 최근에 발라진 것이다.
"문이 있었던 자리예요. 시멘트로 메운 거예요."
"문이요?" 수첩에 적었다. "뭘 막으려고?"
시멘트 면을 주먹으로 두드리자 둔탁한 울림이 돌아왔다. 벽 뒤에 공간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 건물에 지하가 있어요."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 "3층 잠긴 문 뒤에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고, 여기에도 시멘트로 막아 놓은 걸 봐선 여기도 계단 입구가 있겠네요."
펜이 멈추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3년 전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탐정이니까요."
강다은의 눈이 좁아졌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추궁 대신 수첩에 무언가를 더 적더라. '한서진 — 지하 구조를 알고 있음. 이유 불명.' 그 글씨가 보였다.
그때 코에 무언가가 걸렸다.
환기구의 이음새를 타고 시멘트 아래에서 무언가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냄새였다. 처음에는 습기와 곰팡이 냄새인가 싶었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바로 오랜 시간 굳어버린 비릿한 피 냄새.
손이 벽에서 떨어졌다. 3년 전 율도 지하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소형 방 여섯 개에 벽면을 가득 채운 손톱자국, 바닥 배수구의 검붉은 얼룩까지. 그때도 이런 냄새가 났다.
"이게 뭔 냄새예요?" 강다은이 코를 찡그리며 한 발 물러섰다.
대답하지 않고 시멘트 위로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시멘트가 완전히 막히지 않은 틈으로 공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목소리가 건조해졌다. "시멘트를 뜯어내야 해요. 지금은 도구가 없어요. 아니면 3층 문을 열던가요."
강다은의 수첩에 '피 냄새 — 지하'라는 글씨가 밑줄과 함께 적혔다.
두 사람은 청소 도구함을 나왔다. 복도의 형광등이 평온하게 빛나고 있었고, 어디선가 수도꼭지를 잠그는 소리가 벽 너머로 울렸다. 숨을 한 번 들이켜자 복도의 공기는 깨끗했지만 코끝에 남은 철 냄새만은 사라지지 않더라.
옥상까지 올라갔다. 3층의 잠긴 문은 전자 잠금 빨간불이 그대로였고, 그 옆 좁은 문을 통해 옥상으로 나갔다.
옥상까지 올라갔다. 3층의 잠긴 문은 전자 잠금 빨간불이 그대로였고, 그 옆 좁은 문을 통해 옥상으로 나갔다.
바람이 얼굴을 쳤다.
빈 수영장 타일 바닥에 오후 햇살이 쏟아지고, 난간 너머로 바다가 사방을 둘렀다.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난간과 배수구, 마른 화분 사이를 살폈다. 난간 안쪽 구석에서 담배꽁초 세 개를 발견했다.
필터가 바닥에 비벼 눌려 있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비에 젖은 흔적도 없고 바람에 굴러다닌 흔적도 없는 위치로 보아 어젯밤이거나 이른 아침에 피운 것이다.
야간통제 시간에 누군가 여기서 담배를 피웠다.
꽁초를 주머니에 넣었다.
"말보로 레드." 강다은이 중얼거렸다. "참가자 중에 흡연자가 누군지 아세요?"
"아직 몰라요."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직으로 깎인 절벽 아래로 파도가 암벽을 치고 있었고,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위까지 올라왔다.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이 건물은 위로는 열려 있고 아래로는 막혀 있어요. 심판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숨기고 싶은 것이 나뉘어 있다는 뜻이죠."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으로 돌아왔다.
식당으로 돌아왔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아침의 침묵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류지원이 다가왔다. "단서 카드를 교환하면 어떨까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어요. 여러 장을 모으면 패턴이 보일 거예요."
백서연이 끼어들었다. "전체 공개는 위험해요. 원하는 사람끼리 1대 1로 교환하는 게 안전해요."
박도현이 콧방귀를 뀌었다. "내 카드는 아무한테도 안 보여줄 거야."
"자유예요." 서진이 말했다. "인과 사슬을 파악하려면 정보가 필요해요. 주는 만큼 받는 거예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다은 옆에 앉아 흐름을 지켜보는데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식당에 퍼졌다. 류지원이 차민경에게 카드를 보여주자 류지원의 얼굴이 무거워졌고, 차민경은 고개를 떨궜다. 오하늘이 강다은에게 조용히 카드를 내밀었다. 정태호와 박도현은 움직이지 않았고, 김준영은 구석에서 노트북만 펼치고 있었다.
30분이 지난 뒤, 수집한 정보를 정리했다.
류지원의 카드: '콘크리트의 거짓말.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 박도현을 가리키는 단서. 건설, 부실시공.
오하늘의 카드: '키보드의 그림자. 숫자의 강 위로 배가 지나갔다.'
→ 김준영을 가리키는 단서. 해킹, 금융.
"패턴이 보여요." 강다은이 수첩에 화살표를 그렸다. "내 카드는 정태호 씨를 가리키고, 류지원 씨 카드는 박도현 씨를, 오하늘 씨 카드는 김준영 씨를 가리켜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가리키는 연쇄예요. 돌아가는 거예요"
"카드만 그런 게 아니라 죄 자체가 돌아가는 거 아닐까요. 누군가 뭘 저질렀는데, 그게 다른 사람한테 튀고, 또 거기서 뭔가 터지고."
펜이 멈추었다. "그러면 시작점이 있겠네요. 가장 처음 죄를 지은 사람."
주머니 안에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 손을 가려준 자가 있다.' 카드의 모서리가 손가락을 찔렀다.
"심판 전에 지하를 봐야 하지 않아요?"
식당 스피커에서 희미한 잡음이 흘러나왔다. 금방 끊겼다.
"시간이 모자라요. 시멘트를 뜯으려면 도구가 필요하고." 김준영을 흘긋 보았다. "오늘 밤에 갑시다. 야간통제 전에."
식당을 나오는데 차민경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진 씨." 평소의 가벼움이 벗겨진 목소리였다. "저기…"
잠깐 멈추었다. 손톱을 뜯었다.
"다음 심판에서 나 걸리는 거죠?"
서진은 차민경을 바라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차민경이 눈을 내리깔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멈추었다. 전파가 안 잡히는 건 알지만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습관이었다.
"나도 알아요. 내가 뭘 했는지." 차민경이 말했다. "송민호 씨가 고해하는 거 보고 알았어요. 다음은 나라는 거."
"무서워요." 차민경의 눈이 붉어졌다. "근데 고해하면 격리라고 했잖아요. 격리는 생존이라고. 그게 진짜예요?"
"송민호 씨는 살아 있어요."
차민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복도를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화려한 옷과 밝은 머리색이 형광등 아래 쓸쓸하게 빛났다.
차민경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해가 아니다. 자기 죄를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한다는 것.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
서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스피커가 켜졌다. 짧은 전자음. 그리고 변조된 음성.
"안내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 심판까지 두 시간 남았습니다. 심판 방식은 당일 공개됩니다."
스피커가 꺼졌다. 복도에 정적이 내렸다.
서진의 손이 주머니 안의 카드를 쥐었다. 두 시간. 지하의 피 냄새가 다시 코끝을 스쳤다. 기억이 만들어낸 냄새였다.
이 건물 아래에 무엇이 묻혀 있든, 심판은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