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4화. 이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12월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게 좋았던 기억인지 아팠던 기억인지, 이제는 구분이 안 된다.
그냥 12월의 공기를 마시면 그 사람이 희미하게 번진다.
윤곽만 남은 수채화처럼. 표정도 목소리도 흐릿해졌는데 분위기만 선명하다.
스물아홉에 끝난 연애였다.
이 년을 만났다.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아니, 좋은 사이였다.
좋은 사이가 끝나는 건 나쁜 사이가 끝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미워할 수가 없으니까. 탓할 곳이 없으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방향이 달랐다.
그 사람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그 사람은 확신을 원했고, 나는 확신을 줄 수 없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맞지 않았다.
타이밍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마지막 날,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그 자리가 끝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날씨 이야기를 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근황을 나누며, 끝내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날의 대화는 헤어지자는 말 없이 이미 헤어져 있는 두 사람의 대화였다.
"잘 지내."
그 사람이 먼저 일어서며 말했다. 웃고 있었다. 나도 마주 보고 웃었다.
"너도."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갑다. 코트 깃을 세우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멈출 것 같았다.
그날 우리의 웃음은 버팀이었다.
한 달 동안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겁고, 주말이 싫었다. 둘이 보내던 시간이 통째로 비어 있었으니까.
빈 시간을 채우려고 운동을 시작했다. 뛰면 생각이 멈추니까. 땀이 나면 다른 게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두 달째, 안부를 묻고 싶은 충동이 왔다. 참았다.
석 달째, 괜찮아졌다고 느꼈다. 착각이었다.
네 달째에 다시 무너졌다.
이별의 회복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괜찮다가 안 괜찮다가...
일 년이 지나서야, 진짜로 괜찮아졌다.
정확한 순간이 있었다. 퇴근길에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 생각이 아니라, 어떤 생각도 안 나는 보통의 저녁.
그게 회복이었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이 돌아오는 것.
지금은 그 사람을 생각하면 담담하다.
미움도 그리움도 아닌 어떤 감정.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굳이 붙이자면 '감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줘서, 나쁜 이별을 하지 않아 줘서,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결말을 만들어줘서.
이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내 건 일 년이었다.
그 이후의 슬픔은 진짜 슬픔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슬퍼하는 데 익숙해진 나를, 어느 순간 놓아줬다.
그게 스물아홉의 마지막이 서른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12월이 오면 잠깐 멈춘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이제는 그 멈춤이 아프지 않다. 그냥 쉬어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