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

[Part 2] 5화.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

by 유리사탕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카페 앞 횡단보도였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혹시 이 근처에 문구점 아세요?"


고개를 돌렸다. 첫인상은 평범했다. 그런데 웃을 때 눈이 초승달처럼 구부러졌다. 목소리가 밝았다.


"저기 모퉁이 돌면 있어요."


대답하고 신호가 바뀌었다. 각자 갈 길을 갔고 끝이었다. 그렇게 끝날 뻔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같은 카페에서 또 마주쳤다.


"어? 아까 그분."


그 사람이 먼저 알아봤다. 손에 봉투를 들고 있었다. 문구점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고, 그 사람은 카운터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자리가 없었다. 주말 오후라 카페는 만석이었다. 그 사람이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자리가 없네요."


보통이라면 괜찮다고 말하고 각자 폰을 볼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내가 먼저 물었다.


"문구점에서 뭐 사셨어요?"


"펜이요. 요새 다이어리 쓰는데 맘에 드는 펜이 없어서요."


"무슨 다이어리요?"


"그냥 하루 기록이요. 오늘 뭐 했는지, 뭐 먹었는지. 별거 아닌 거."


"별거 아니어도 나중에 보면 좋잖아요."


"맞아요."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처음엔 다이어리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엔 커피 이야기. 그다음엔 이 동네 이야기. 서로 같은 동네에 산다는 걸 알았다. 그 사람은 도서관 근처에 살고, 나는 공원 근처에 산다고 했다.


"가끔 공원에서 뛰어요. 아침에."


"저도 공원 가요. 산책하러."


"그럼 본 적 있을 수도 있네요."


"그럴 수도요."


시간이 빨랐다. 커피가 식었고, 밖은 어두워졌다. 노트북은 한 번도 안 켰다.


"저 이만 가볼게요."


그 사람이 일어섰다.


"네. 조심히 가세요."


헤어지려는데 문득 아쉬웠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그래서 말했다.


"다음에 또 공원에서 보면 인사해요."


"그럴게요."


그렇게 끝났다. 번호도 안 물어봤다. 이름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그 사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같은 동네라고 했으니까, 어쩌면. 어쩌면 또 마주칠 수도.


서른하나의 겨울이었다. 오랜만에 누군가가 궁금했다. 외로웠던 시간이 조금 덜 외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던가.


나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카페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연이 왔다. 횡단보도에서, 카페 테이블에서.


다음 주말, 나는 또 그 카페에 갔다.

이유는 모른다. 아니, 알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그 사람도 왔다.


작가의 이전글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