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람이 없는 아침에 대하여

by 유리사탕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얇은 줄기 하나가 이불 위를 가로질러, 내 손등 위에 멈춰 있었다. 따뜻하다기보다는 미지근한, 아직 힘을 다 내지 않은 빛이었다. 눈을 뜬 건지 뜨고 있던 건지 모르겠는 상태로, 나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천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흐릿한 흰색이 천천히 윤곽을 잡아갔고, 그제야 아, 나는 깨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전날 밤, 잠들기 전에 내린 유일한 결정이 그것이었다. 내일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날이니까. 그 한 문장이 주는 안도감이란 것이 있다. 몸이 먼저 아는 종류의 것. 어깨가 매트리스 쪽으로 조금 더 깊이 내려앉고, 발끝이 이불 바깥으로 살짝 비어져 나온 채로, 시원한 공기와 따뜻한 이불 사이 그 경계 지점에 발가락이 걸쳐져 있었다. 그게 좋았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그 애매한 온도가.



휴대폰을 뒤집어 놓은 채 충전기에 꽂혀 있었다. 화면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이것도 전날 밤의 결정이었다. 평소 같으면 눈을 뜨자마자 화면을 켜고, 밤사이 쌓인 알림 들을 훑어보고, 아직 이불 속인데 벌써 하루가 시작된 기분이 들곤 했다.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휴대폰은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고, 그 사이에 아무 연결도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오 분이었는지 삼십 분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시계를 보지 않았으니까. 시간을 모른다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일인지, 나는 잘 잊고 산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도시에서 듣는 새소리는 숲 속의 것과 다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반사하며 들어오는 소리라 약간 울림이 있고, 어디서 오는지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다. 짧고 높은음이 두세 번 반복되다가 멈추고, 잠시 후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이사이에 멀리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주말 아침의 차 소리는 평일과 결이 다르다. 급하지 않고, 간격이 넓고, 그래서 한 대가 지나간 후의 정적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몸을 옆으로 돌렸다. 베개가 눌려서 한쪽이 낮아져 있었고, 귀가 거기에 묻히자 바깥소리가 절반쯤 차단되었다. 대신 이불이 스치는 소리, 내 숨소리, 심장이 뛰는 리듬 같은 것들이 가까이 들렸다. 사람의 몸은 가만히 있어도 꽤 많은 소리를 낸다. 보통은 너무 바빠서 그걸 듣지 못할 뿐이다.



빛줄기가 조금 이동해 있었다. 아까 손등 위에 있던 것이 이제 베개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가 있었다. 해가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커튼 천의 올 사이로 빛이 부서지면서 작은 무늬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게 물결 같기도 하고, 오래된 레이스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무늬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딱히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걸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어떤 기분을 만들었다.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한 건 세 번째였다. 처음 두 번은 생각만 하고 몸이 따르지 않았다. 세 번째에 이불을 걷었다.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불 안의 온도와 바깥공기의 온도 차이가 피부 위에서 선명하게 갈렸다. 팔뚝 안쪽, 허벅지 앞쪽, 목 뒤.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부위들이 공기의 존재를 알려왔다. 잠옷이 얇아서 그 감각이 더 직접적이었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가, 이 초 안에 사라졌다.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마루의 차가움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겨울이 아닌데도 아침 바닥은 늘 차갑다. 특히 햇볕이 아직 닿지 않는 복도 쪽은. 부엌까지 걸어가는 열두 걸음 사이에 온도가 두 번 바뀌었다. 거실 한가운데 햇살이 내려앉은 구간을 지날 때 발바닥이 잠깐 따뜻해졌다가, 다시 그늘진 부엌 타일 위에서 차가워졌다. 그 작은 온도 차이를 의식하면서 걷는 아침이란 것. 이런 아침이 가능하려면 시간이 넉넉해야 하고, 시간이 넉넉하려면 아무것도 예정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정수기를 틀었다. 물이 파이프를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벽 안쪽에서 울렸다. 처음 나오는 물은 미지근했고, 삼 초쯤 지나 차가워졌다. 컵에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잠에서 깬 후 처음 마시는 물은 맛이 있다. 아무 맛이 없는 물인데, 그게 마른 입안을 적시면서 만드는 감각이 하나의 맛처럼 느껴진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온도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마셨다. 식도를 지나 위장에 닿는 순간 배 안쪽에서 미세하게 온기가 퍼졌다. 몸이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 그건 알람 소리가 아니라 물 한 모금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바깥공기가 들어왔다. 실내의 잠든 공기와 바깥의 깨어 있는 공기가 섞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약간 습하고, 흙냄새가 섞인, 아직 데워지지 않은 아침 공기. 코끝이 시원해졌다. 멀리서 누군가 문을 닫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어린이 자전거 바퀴가 보도블록 위를 굴러가는 딸각거리는 소리가 차례로 들어왔다. 세상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움직임이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부엌 테이블 앞에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커피를 내리지도, 빵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서 창밖을 보았다. 건너편 건물 베란다에 빨래가 널려 있었다. 하얀 티셔츠와 줄무늬 수건이 바람에 느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아침도 이미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의 아침에도 알람이 없었을까. 아마 아니겠지. 대부분의 아침에는 알람이 있다. 그래서 이런 아침이 드문 것이고.



드문 것은 소중하다고 말하면 너무 쉬운 문장이 된다. 그보다는, 드문 것은 감각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같은 빛인데 더 길게 보게 되고, 같은 물인데 더 천천히 마시게 되고, 같은 공기인데 더 깊이 들이마시게 된다. 감각이 달라지면 시간의 밀도가 달라지고, 시간의 밀도가 달라지면 하루의 질감이 달라진다.



나는 여전히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빛이 조금 더 들어와 테이블 위 나뭇결을 비추고 있었다. 나뭇결 사이사이에 그림자가 깊어지면서 무늬가 더 선명해졌다. 아까보다 해가 높아진 것이다. 시간은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흘러가고 있었고, 그게 나쁘지 않았다.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쫓기지 않으면서 그 안에 있는 일. 알람이 없는 아침은, 어쩌면 시간을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원래 이런 속도였다는 걸 떠올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휴대폰은 여전히 뒤집혀 있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