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비를 맞기로 한 퇴근길

by 유리사탕

사무실을 나서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현관 유리문 너머로 아스팔트가 검게 젖어 있는 게 보였고, 가로등 빛이 그 위에서 길쭉하게 늘어져 반사되고 있었다. 비가 올 줄 몰랐다. 아침에 날씨를 확인하지 않았고, 하늘을 올려다볼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우산은 없었다. 가방 안을 한 번 뒤져보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텀블러와 이어폰 케이스뿐이었다. 현관에서 잠시 멈춰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비는 가늘었지만 꾸준했다.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은 종류의 비였다.



옆에 서 있던 동료가 같이 쓰고 가자고 했지만 방향이 달랐다.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살 수도 있었다. 삼천원원짜리 투명한 그것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맞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충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한.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서 건조한 공기를 마시며 앉아 있었고, 형광등 아래에서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일했고, 뭔가 다른 감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유리문을 밀었다.



첫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다. 차갑다. 생각보다 차갑다. 실내에 있을 때는 비의 온도를 잊는다. 눈으로만 보는 비는 온도가 없는데, 피부에 닿는 순간 비는 온도를 갖는다. 두 번째 방울이 코끝에, 세 번째가 목 옆에 떨어졌다. 각각 닿는 부위에 따라 차가움의 질이 달랐다. 이마는 둔하게, 코끝은 날카롭게, 목은 물줄기를 타고 쇄골 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선을 그었다. 그 선이 피부 위에서 차가운 경로를 만드는 것이 느껴졌다.



걷기 시작했다. 처음 십여 걸음은 어색했다. 본능적으로 어깨가 올라가고, 고개가 약간 숙여지고, 걸음이 빨라졌다. 비를 피하려는 몸의 반사. 하지만 삼십 걸음쯤 지나자 그 긴장이 풀렸다. 어차피 젖는 거라면, 하고 어깨를 내렸다. 고개를 들었다. 걸음을 평소 속도로 돌렸다. 그 전환의 순간이 있었다. 비를 견디는 것에서, 비 안에 있는 것으로. 태도가 바뀌면 감각도 바뀐다. 같은 빗방울인데, 참고 있을 때와 받아들이고 있을 때의 촉감이 다르다.



코트 어깨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울 혼방이라 처음에는 빗방울이 표면에 맺혀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스며들었다. 물을 머금은 천의 무게가 어깨 위에서 느껴졌다. 가볍던 코트가 무거워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것. 젖은 울에서 나는 냄새도 있었다. 양모 특유의 동물성 냄새가 빗물과 섞여서 묘하게 따뜻한 냄새를 만들었다. 머리카락도 젖어갔다.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고, 귀 뒤의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맺혔다가 뺨 아래로 흘러내렸다. 빗물과 체온이 만나면 처음의 차가움이 조금 누그러진다. 피부 위에 머무르는 동안 물의 온도가 체온 쪽으로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가 올라왔다. 비가 오면 나는 특유의 냄새. 페트리코라고 하는, 건조한 표면에 물이 닿을 때 방출되는 것. 흙냄새와 광물질 냄새가 섞인, 도시에서 맡을 수 있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냄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위에 배기가스와 음식점 환풍기에서 나오는 기름 냄새가 얇게 겹쳐져 있었다. 비가 그것들을 씻어내면서 동시에 섞어놓는다. 이상한 일이다. 정화와 혼합이 동시에 일어나는. 코를 스치는 냄새의 층위가 걸음마다 바뀌었다. 음식점 앞을 지날 때, 나무 아래를 지날 때, 맨 아스팔트 위를 걸을 때, 각각 다른 냄새가 비에 실려 올라왔다.



가로등 아래를 지났다. 빛 안에서 빗줄기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비가, 가로등 불빛을 만나면 가느다란 은색 선이 된다. 비스듬히,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각도를 바꾸면서 떨어지는 수천 개의 선. 그걸 올려다보면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실제로는 비가 아래로 떨어지는 건데, 빛의 원뿔 안에서 보면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가로등 아래에서 두세 걸음을 멈추고 그걸 올려다보았다.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눈 위, 입술 위, 이마 위. 지나가던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을 수도 있지만, 비가 오는 밤에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사람은 없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발밑에 물이 고여 있었고, 신호등의 빨간 불빛이 그 물웅덩이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물이 찰랑거리면서 반사된 빛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모였다. 빨간색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순간, 물웅덩이 속의 빛도 동시에 바뀌었다. 위의 세계와 아래의 세계가 같은 박자로 움직이는 것. 건너편에서 우산을 쓴 사람들이 걸어오고, 나는 우산 없이 걸어갔다. 우산 아래의 얼굴들은 어둡고, 나의 얼굴은 빗물에 젖어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물웅덩이를 밟지 않으려고 살짝 옆으로 돌아서 건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미 충분히 젖어 있었는데.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큰길보다 조용했다. 차 소리가 멀어지고, 대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또렷해졌다. 처마 밑을 지날 때마다 리듬이 달랐다. 어떤 곳은 뚝, 뚝, 느리게. 어떤 곳은 또르르르 연속으로. 건물의 구조에 따라, 홈통의 위치에 따라, 바람의 방향에 따라 물의 경로가 달라지고, 그래서 소리도 달라진다. 비가 만드는 음악이라고 하면 과장이지만, 비가 만드는 패턴이라고 하면 정확하다. 골목 바닥의 물이 배수구 쪽으로 흘러가면서 내는 작은 물살 소리도 있었다. 낮에는 절대 들리지 않는 소리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비가 약해졌다. 아니, 내가 비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한 방울 한 방울이 사건이었는데, 지금은 비가 피부 위의 배경이 되어 있었다. 셔츠까지 젖어서 등에 달라붙어 있었고, 구두 안에 물이 약간 스며들어 양말이 축축했다. 걸을 때마다 양말 속에서 물이 눌리는 미세한 감촉이 있었다. 불편했다. 분명히 불편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싫지 않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불편하지만 싫지 않은 감각. 차갑지만 나쁘지 않은 온도. 젖었지만 괜찮은 상태. 하루 종일 쾌적한 실내에 있다가, 이 불편함을 통해 몸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차가워져 있었는지 알았다. 비에 젖어 있는 동안에는 몰랐던 한기가 따뜻함을 만나는 순간 한꺼번에 밀려왔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반사적으로, 짧게. 그 떨림이 한 번 지나가자 근육이 이완되면서 피로가 밀려왔다. 사무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하루의 피로가, 따뜻한 공기를 만난 순간 몸 위로 쏟아졌다. 코트를 벗었다. 물기를 머금은 코트가 옷걸이 위에서 천천히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코트에서 비 냄새가 났다. 바깥의 냄새가 천에 배어 들어온 것이다. 구두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맨발이 마루에 닿는 감각이 평소와 달랐다. 차갑게 식은 발과 따뜻한 나무 바닥 사이의 온도 차이가 생각보다 컸고, 그 차이가 발바닥에서 종아리를 거쳐 무릎까지 올라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창밖을 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제 안에서 보는 비였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가로등 빛이 그 물줄기를 따라 움직이면서 유리 위에 작은 강을 만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나는 저 바깥에 있었다. 저 비 안에, 저 가로등 아래에, 저 젖은 길 위에.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있다.



바깥의 나와 안의 내가 같은 사람인데, 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감각은 완전히 달랐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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