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후 세 시, 창가 자리

by 유리사탕

그 카페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창가 자리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창가 자리에 오후 세 시에 앉았을 때 일어나는 일 때문이다. 그것은 드라마틱한 일이 아니라 빛에 관한 일이고, 빛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방식에 관한 일이다. 매일 가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오후 시간이 비는 날에. 가방에 책 한 권을 넣고 나선다.


두 시 반에 도착했다. 점심 손님과 오후 손님 사이의 공백 시간대라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창가, 왼쪽에서 두 번째. 나무 테이블 위에 물 잔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전 손님이 쓰던 냅킨 한 장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접혀 있었다. 직원이 와서 그것을 치우고, 행주로 테이블을 한 번 닦았다. 축축한 행주가 나무 위를 지나가면서 물기의 막이 생겼다가, 몇 초 만에 마르면서 나무 표면이 원래의 밝은 갈색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단골이라 따로 사이즈를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레귤러, 얼음 적게.


이 시간의 햇살은 높지도 낮지도 않다.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는 빛이 테이블 위에 사다리꼴 모양을 그린다. 겨울이면 빛이 더 낮게 들어와 테이블 전체를 덮고, 여름이면 높아서 창틀 아래에서 끊긴다. 지금은 초봄이라 테이블의 삼분의 이 정도까지 빛이 닿아 있었다. 빛이 닿는 면과 닿지 않는 면의 경계가 선명했다. 빛 쪽의 나무는 따뜻한 꿀색이고, 그늘 쪽은 서늘한 회갈색이다. 같은 나무인데 빛 하나로 색이 갈린다. 그 경계선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면, 한 손가락 안에서도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의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커피가 나왔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 카페는 아이스 음료를 유리잔에 준다. 플라스틱이 아니라. 잔을 빛 쪽에 놓으면 얼음 사이로 빛이 통과하면서 테이블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그림자가 얼음의 형태에 따라 울퉁불퉁한 윤곽을 가진다. 얼음이 녹으면서 형태가 바뀌면 그림자도 따라서 바뀐다. 아주 느린 애니메이션 같은 것. 빨대로 한 모금 마셨다. 차갑고 쓰다. 설탕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의 첫맛은 언제나 써서, 입 안이 잠깐 움찔하고, 그다음에 오는 고소한 뒷맛으로 넘어가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이 음료의 구조다. 유리잔 바깥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찬 유리 표면에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닿으면서 생기는 결로. 물방울이 하나씩 커지다가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잔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 시가 되었다. 달라지기 시작한다. 해가 조금 더 서쪽으로 기울면서 빛의 각도가 변한다. 아까 테이블의 삼분의 이를 덮던 빛이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각도가 달라지면서 닿는 면적이 줄어드는 것인데, 체감상은 빛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 느낌이다. 그 속도가 맨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느려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어느새 빛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한 페이지를 읽는 사이에 빛의 경계선이 일 센티미터쯤 이동해 있는 것이다.


빛의 색도 달라진다. 두 시의 빛은 하얗다. 세 시의 빛은 노랗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백색광이 따뜻한 색으로 전환되는 구간이 있는데, 그 전환은 점진적이어서 정확한 시점을 짚을 수 없다. 다만 커피잔 위에 드리운 빛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아까는 잔 안의 커피가 투명한 갈색이었는데, 지금은 호박색에 가깝다. 같은 커피인데 빛이 바꿔놓는 색.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책의 종이색도 달라져 있었다. 아까 하얗게 보이던 종이가 지금은 약간 크림색으로 따뜻해져 있었다.


창밖을 본다. 건너편 건물 외벽에도 빛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인데, 이 시간에는 한쪽 면만 빛을 받아서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경계선이 건물의 모서리를 따라 수직으로 떨어진다. 저 경계선도 시간이 지나면 이동할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더 기울면 밝은 면이 줄어들고 어두운 면이 넓어지고. 도시의 오후란 이런 식으로 빛과 그림자의 영토 싸움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보도 위의 가로수 그림자도 길어지기 시작했다. 나뭇잎 사이로 빛이 빠져나가면서 보도 위에 점점이 빛 무늬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무늬의 형태도 아까와는 달라져 있었다.


카페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 시의 카페는 두 시의 카페와 소리가 다르다. 점심시간의 잔향이 빠져나가고, 오후의 조용함이 자리를 잡아가는 시간. 에스프레소 머신이 가동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고, 직원들이 컵을 정리하는 사기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손님은 네 팀 정도. 혼자 노트북을 펴고 있는 사람, 마주 앉아 조용히 대화하는 두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세 시의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하다. 큰 소리로 웃거나, 전화를 받거나, 의자를 끄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치 이 시간의 빛처럼, 조금 낮아진 에너지로 존재하는 사람들. 스피커에서 나오는 재즈 피아노가 그 사이를 채우고 있었는데, 볼륨이 대화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 낮았다.


커피 잔의 얼음이 거의 녹았다. 잔 아래쪽에 커피가 진하게 가라앉아 있고, 위쪽은 얼음이 녹은 물과 섞여 연해져 있었다. 빨대를 넣으면 아래의 진한 것이 먼저 올라오고, 젓지 않으면 위의 연한 것이 올라온다. 나는 젓지 않고 마셨다. 연한 커피물. 제대로 된 커피의 맛은 아니지만, 이 물 같은 커피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갈증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커피의 잔향을 남기는, 마시기 편한 음료. 오후 세 시에 어울리는 농도라고 할까. 진한 에스프레소가 아침의 음료라면, 이 묽어진 아메리카노는 오후의 음료다.


빛이 내 손등 위에서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아까 빛 속에 있던 손이 이제 빛과 그늘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손가락 끝은 빛 안에, 손목은 그늘 안에. 빛이 닿는 손가락 끝의 피부색과 닿지 않는 손목의 피부색이 달랐다. 한 손 위에서 두 개의 색이 공존하고 있었다. 책갈피를 끼워두고 그 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세 시 반이 지나면서 빛의 사다리꼴이 테이블 가장자리까지 밀려났다. 이제 테이블 위 대부분이 그늘이었다. 그늘이라고 해서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창밖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간접광이 충분해서, 그늘도 밝은 그늘이었다. 다만 직사광이 만드는 따뜻함은 사라졌다. 손등이 서늘해졌다. 피부가 먼저 빛의 부재를 알아차린다.


책 위로 눈을 돌렸다. 세 시부터 읽기 시작한 페이지가 삼십 쪽 정도 넘어가 있었다. 빛이 변하는 걸 보느라 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고, 빛의 변화가 읽기의 일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카페에서 읽는 책은 집에서 읽는 것과 다르다. 같은 문장인데 빛의 색에 따라, 주변 소리에 따라, 커피의 맛에 따라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 오후 세 시의 따뜻한 빛 아래에서 읽는 문장은 좀 더 부드럽고, 그늘이 내려앉은 후에 읽는 문장은 좀 더 선명하다.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착각이라 해도 그 감각은 진짜다.


네 시가 가까워지면 나는 보통 자리를 뜬다. 빛의 쇼가 끝나서가 아니라, 카페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해서다. 학교가 끝난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소리의 볼륨이 올라가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바빠진다. 세 시의 고요함은 네 시의 활기에 자리를 내준다. 의자 끄는 소리,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 웃음소리. 그 소리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공간의 질감이 달라진다. 나는 그 전환이 일어나기 직전에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마지막까지 세 시에 머무르고 싶어서.


카페 문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앉았던 창가 자리에 빛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빈 유리잔만 놓여 있고, 잔 안에 남은 물이 창밖의 빛을 아주 약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내일도 세 시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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