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문을 열면 바람이 먼저 온다. 아래층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 문이 열리는 순간 머리카락을 낚아챈다. 문틈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가면서 우우, 하는 낮은 소리를 냈다.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좁고 어둡고 시멘트 냄새가 나던 공간에서, 한 걸음 만에 하늘이 사방으로 열리는 이 전환이 매번 놀랍다. 몸이 반응하는 것은 시야보다 피부가 먼저다. 바람의 온도, 습도, 방향이 먼저 도착하고, 그다음에 눈이 따라간다. 오후 다섯 시의 옥상. 해가 건물들 사이로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 서쪽 하늘이 노란 기운을 품기 시작했고, 동쪽은 아직 연한 파란색 그대로였다. 하늘이 두 개의 색으로 갈라지는 시간.
콘크리트 바닥이 따뜻했다. 하루 종일 햇볕을 받은 바닥이 체온보다 약간 높은 온도를 품고 있었다. 손을 대보면 미세하게 거친 표면 아래 열기가 느껴진다. 주저앉으면 엉덩이와 허벅지에 그 온기가 스민다. 청바지 너머로 전해지는 따뜻함인데, 직접 피부에 닿는 것보다 한 겹 걸러진 열이 오히려 더 깊게 느껴질 때가 있다. 등을 뒤쪽 벽에 기대면 벽도 따뜻하다. 콘크리트가 열을 흡수하고 내뱉는 이 단순한 물리학이, 이 순간에는 어떤 위로처럼 작동한다. 누가 데워놓은 것이 아니라 해가 데워놓은 것. 옥상에 올라올 때 가져온 캔맥주를 옆에 내려놓았다. 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다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콘크리트가 잠깐 젖어 색이 진해졌다가, 금세 마르며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서쪽 하늘이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얗던 것이 노란색으로, 노란색이 주황색으로. 이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 잠시 다른 곳을 보다가 돌아오면 색이 달라져 있는, 그런 속도로 움직인다. 시계의 분침과 같다.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할 수 없는 변화.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늘을 계속 보았지만,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노란색이 주황색이 되는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색은 그냥,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 도시의 건물 위로 내려앉는 빛이 순금에서 적동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그 빛을 받은 건물의 유리창들이 저마다 다른 주황을 담고 있었다.
캔맥주를 열었다. 프시, 하는 소리가 옥상의 넓은 공간에서 금방 흩어졌다. 아래에서 들으면 밀폐된 소리인데 여기서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소리. 캔 입구에서 올라오는 기포의 냄새, 맥주 특유의 곡물과 홉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첫 모금을 마시면 탄산이 혀 위에서 퍼지고,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가슴팍을 시원하게 한다. 목구멍 뒤편에서 맥주의 쓴맛이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맥주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산 천오백 원짜리. 하지만 이 장소에서, 이 시간에, 이 빛 아래서 마시면 다른 것이 된다. 맥주의 맛은 반은 액체에서, 반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상황의 맛은, 바람과 노을과 콘크리트의 온기가 만드는 것이다.
옥상에서 보이는 것들. 앞쪽으로는 빌라와 아파트가 높이를 달리하며 줄지어 서 있고, 그 너머로 산의 능선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고가도로가 길게 뻗어 있어서 차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데, 여기서 보면 장난감 같다. 소리도 멀어서 작다. 엔진 소리와 경적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올라오지만, 날카로움이 다 깎인 채로 도착한다.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도시의 배경음이다. 가끔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면 그 소리가 천천히 지나가고, 흰 선이 하늘에 그려졌다가 바람에 번진다. 오른쪽 아래에서는 개가 짖는 소리,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자전거 벨 소리가 간간이 올라왔다. 높은 곳에서 듣는 아래쪽 소리는 방향을 잃어서,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처럼 떠다닌다.
해가 산 능선에 가까워지면서 그림자가 길어졌다. 내 그림자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늘어나 반대편 벽까지 닿았다. 옆에 놓인 실외기의 그림자도, 난간의 그림자도 함께 늘어나 바닥에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었다. 이 그림자들이 초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다. 다만 오 분 전에 내 그림자의 머리 부분이 닿지 않았던 벽에 지금은 닿아 있으니까. 해가 진다는 것은 빛의 각도가 변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림자의 언어로 바닥에 기록된다. 그림자의 색도 달라졌다. 한낮의 그림자가 회색이라면, 지금의 그림자는 보라에 가까운 짙은 남색이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었다. 아까는 왼쪽에서 오던 것이 이제는 정면에서 불었다. 셔츠 가슴 부분이 바람에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다. 해가 낮아지면서 공기의 온도도 달라지고 있었다. 아까까지 따뜻했던 콘크리트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엉덩이를 통해 느껴졌다. 미세한 차이인데, 몸은 그것을 안다. 바람도 차가워졌다. 얇은 셔츠 위에 걸쳐온 경량 패딩이 바람에 팔락거렸고, 팔뚝에 소름이 올라왔다. 이 온도의 변화가 해 질 녘의 시간표다. 따뜻함에서 서늘함으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소란에서 고요로. 모든 것이 동시에 방향을 바꾸는 시간.
하늘의 색이 다시 변했다. 주황색 위에 보라색이 번지기 시작했다. 수채화에서 물감이 젖은 종이 위로 스며드는 것과 비슷한데, 하늘은 그것을 훨씬 느린 속도로 한다. 주황과 보라 사이에 잠깐 분홍이 끼어든다.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이라 색의 변화가 깨끗하게 보였다. 건물들의 창문에 노을이 반사되어 유리가 주황빛으로 불타는 것 같았다. 멀리 있는 아파트의 창문 수십 개가 동시에 타오르는 풍경. 한쪽에서는 해가 지고, 반대쪽에서는 이미 남색에 가까운 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늘의 반은 낮이고 반은 밤인 이 순간. 세상의 경계선 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맥주가 미지근해졌다. 캔의 온도가 손의 온도와 같아진 것이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면 처음의 차가움은 없고, 탄산도 빠져 있다. 하지만 그 미지근한 맥주가 이 시간의 마침표였다. 빈 캔을 옆에 놓고 무릎을 세워 팔을 올렸다. 해가 산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기 직전, 마지막 빛이 수평으로 세상을 비추었다. 그 빛이 내 얼굴을 스쳤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쪽이 붉었다. 따뜻함이 얼굴 한쪽에만 닿는 비대칭의 감각. 그리고 사라졌다. 온도가 먼저 달라지고, 빛이 뒤따라 사라졌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햇빛 아래 색을 잃고 있던 가로등이 어둠을 감지하고 주황빛을 켜 올렸다. 하나가 켜지면 옆의 것도 따라 켜지듯, 골목 끝에서부터 큰 길 쪽으로 불빛이 번져 나갔다. 건물의 창에도 불이 들어왔다. 부엌의 불빛은 하얗고, 거실의 불빛은 노란 것이 많았다. 누군가 저녁을 짓기 시작한 것이리라. 이 높이에서 보면 사람들의 삶이 불빛의 색으로 보인다.
콘크리트 바닥은 이제 완전히 차가워졌다. 아까의 온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엉덩이를 통해 올라오는 냉기가 이제는 불편했다. 일어서야 할 시간이었다. 빈 캔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키면 무릎이 살짝 뻣뻣했다. 한 시간 넘게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으니까. 허리를 펴면 등뼈가 작게 우두둑, 소리를 냈다. 서서 한 바퀴 몸을 돌리면 바람이 사방에서 닿았다. 낮과는 완전히 다른 바람. 차갑고 날카롭고, 겨울의 질감이 담겨 있었다. 옥상 문을 다시 열고 계단으로 내려가기 전,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의 마지막 보라색이 남색으로 잠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