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국물

by 유리사탕

아침부터 비가 왔다. 소리로 먼저 알았다. 눈을 뜨기 전에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고르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바람이 있는 비였다. 빗소리가 세졌다 약해졌다 하는 건 바람이 방향을 바꾸기 때문일까.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천장을 보는데, 방 안이 평소보다 어두웠다. 비 오는 날의 아침은 해가 떠도 해가 뜨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빛을 갖는다. 회색이라고 하기엔 너무 밝고, 밝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시계를 확인하니 일곱 시 사십 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실 시간인데, 오늘은 소리가 나를 깨운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을 때, 유리창에 빗줄기가 사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그 줄기 사이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 같았다. 건물의 윤곽이 흐려지고, 가로수의 가지가 물에 젖어서 평소보다 검게 보였다. 아스팔트 위로 물이 얇게 고여 있었고, 그 위에 하늘의 회색이 비치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땅이 하늘을 품은 것과도 같아진다.

유리창 아래쪽에 물방울이 모여서 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줄기가 아래로 흐르면서 새로운 물방울을 만나 합쳐지고, 더 커지고, 더 빠르게 흐르는, 그 흐름을 한참 보고 있었다.


현관문을 나설 때 우산을 폈다. 우산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귀에서 가까운 우산 천에 맺히는 소리는 탁탁, 조금 먼 곳의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소리는 쉬이, 더 먼 곳의 지붕이나 나뭇잎에 닿는 소리는 하나로 뭉쳐져서 배경음이 된다.

발밑을 보면서 걸었다. 신발 밑으로 물이 고인 곳을 밟을 때 나는 찰박거림. 보도블록 사이 틈으로 물이 흘러가고, 배수구 근처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양말이 젖지 않도록 보폭을 조절하며 걸었는데, 결국 왼쪽 발목 언저리가 축축해졌다. 바지 밑단이 물을 머금어서 무거워진 느낌이 발목에 전해졌다. 비 오는 날에는 어딘가 한 군데는 반드시 젖는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 삼십 년이 걸렸다.


회사에 도착하면 우산을 접어 우산꽂이에 꽂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코트 어깨에 맺힌 물방울을 손으로 털었다. 코트 표면에서 손바닥으로 옮겨진 물기가 차가웠다.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사람들의 젖은 신발 자국이 찍혀 있었다. 모양이 제각각이고 방향도 달랐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동선이 보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의 우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일정한 간격으로. 층수가 올라가는 동안 그 소리만 들리는 밀폐된 공간.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을 때, 창밖의 빗소리가 유리를 통해 약하게 들려왔다. 이중창이라 소리가 한 겹 걸러져서 부드러워져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세졌다. 빗줄기가 눈으로 보일 만큼 굵어졌고, 창밖의 건물들이 더 흐려졌다. 창밖을 보다가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비와 국물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닐 텐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목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내려가는 감각을 원했다. 밖의 차가움과 축축함에 대한 몸의 응답 같은 것. 동료에게 말했다. 국밥 어때요.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산 두 개가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우산과 우산 사이 좁은 틈으로 빗방울이 어깨를 적셨다.


국밥집은 회사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간판이 오래되어 글씨가 바랬고, 플라스틱 간판의 모서리가 갈라져 있었다. 오래된 가게라는 증거. 문을 열면 김이 얼굴로 확 밀려왔다. 안개 속에 들어선 것 같았다. 안경에 김이 서렸다.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가, 안경을 벗고 닦는 동안에는 세상이 흐릿하게 변했다. 두 종류의 흐림 사이에서 자리에 앉았다. 안경을 다시 쓰자 시야가 돌아왔다. 맞은편 벽에 메뉴가 붙어 있었다. 돼지국밥, 순대국밥, 내장탕. 글씨가 기름기에 살짝 번들거렸다. 가게 안에는 후루룩 소리와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가 깔려 있었고, 그 위로 환풍기의 웅웅거림이 낮게 깔려 있었다.


돼지국밥을 시켰다. 뚝배기가 나왔을 때, 국물이 아직 끓고 있었다. 표면에서 기포가 올라오고, 가장자리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났다. 국물 위로 기름이 동그란 눈처럼 떠 있었고, 그 사이로 파가 흩어져 있었다. 고기 조각이 국물 속에서 살짝 비치고, 밥알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얼굴 아래를 감쌌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그 열기를 잠깐 받았다. 바깥에서 젖고 차가워진 얼굴이, 국물의 수증기로 다시 데워지는 과정.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번 저었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밥알이 올라오면서 국물이 탁해졌다.


첫 숟갈. 국물을 입에 넣는 순간, 뜨거움이 입술 끝에서 시작해서 혀 위를 지나 목 안으로 내려갔다.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국물을 마실 때 사람은 반드시 그 소리를 낸다.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국물의 맛이 퍼진다. 돼지 뼈를 오래 우린 깊은 맛, 소금의 짠맛이 정확하게 자리 잡은 간, 파의 알싸함이 뒤에서 올라오는 것. 국물이 식도를 따라 내려가면, 그 경로가 가슴 한가운데를 통과해서 위장에 도착하는 걸 느꼈다. 몸 안에 따뜻한 줄기가 하나 생겼다. 그 줄기를 중심으로 온기가 양옆으로 퍼져나갔다. 두 번째 숟갈은 첫 번째보다 덜 뜨거웠다. 입이 적응한 탓이기도 하고, 국물이 조금 식은 탓이기도 했다. 세 번째 숟갈부터는 맛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밥을 말아 먹었다. 밥알이 국물을 머금으면 부피가 약간 커지고, 씹었을 때 국물이 배어 나온다. 밥과 국물이 분리되어 있다가 입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 과정. 깍두기를 곁들였다. 차갑고 아삭한 깍두기와 뜨거운 국밥의 온도 차이가 입안에서 부딪혔다. 무의 시원한 맛이 국물의 구수한 맛과 섞이면서 새로운 맛이 되었다. 그 대비가 좋았다. 한 숟갈 국물, 한 젓가락 고기, 깍두기 한 조각. 반복할수록 이마에 땀이 맺혔다. 뜨거운 것을 먹으면 이마에 가장 먼저 땀이 난다.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고, 손등으로 훔쳤다. 동료도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서로 보고 짧게 웃었다. 국밥집에서 서로 땀을 닦는 모습은 말보다 솔직하다.


국밥 한 그릇을 거의 비워갈 때쯤, 공깃밥을 하나 더 시킬까 잠깐 고민했다. 그릇 바닥에 국물이 남아 있었고, 거기에 밥을 말면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멈추기로 했다. 적당히 배부른 이 상태가 좋았다. 더 먹으면 포만감이 만족감을 넘어서 둔한 졸음이 된다. 지금이 딱 좋은 경계였다. 국물 마지막 한 숟갈을 떠서 마셨다. 그릇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파 조각과 고기 부스러기가 숟가락에 함께 올라왔다. 마지막까지 깊은 맛이었다.


국밥을 다 먹고 나면 몸 전체의 온도가 올라간다. 뜨거운 것이 위장에서 사방으로 퍼지면서, 손끝과 발끝까지 온기가 닿는 느낌. 바깥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와서 축축하고 차가웠던 양말 속 발가락이, 국밥 한 그릇으로 다시 살아났다. 물을 한 잔 마셨다. 차가운 물이 뜨거운 입안을 정리했다. 그릇을 내려다보니 국물만 남아 있었다. 뚝배기의 열기가 아직 남아서, 국물 표면에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다. 빈 그릇이 아니라 끝난 식사가 거기 있었다.


밖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우산을 펴고 걸으면서, 빗소리가 조금 더 부드럽게 들렸다. 배가 따뜻하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동료와 나란히 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는 종류의 만족감이 있었다. 몸 안의 온도가 바깥의 차가움과 만나는 경계면에서, 비가 그저 비일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발밑에 물이 튀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젖은 양말이었고, 몸 안에는 국물이 있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