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연겨자를 꺼내다가 멈췄다. 나는 원래 연겨자를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족발을 시키면 새우젓에만 찍어 먹었고, 냉면에도 겨자를 풀지 않았다.
이러던 나를 그 사람이 바꿔놓았다.
겨자 안 넣으면 맛을 반만 먹는 거야, 라고 했던 목소리에 한번 찍어먹어봤고,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났고, 그 사람은 웃었고, 나도 웃었고, 그 뒤로 연겨자는 내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관계가 끝나면 남는 것들이 있다. 물건이 아니다. 반지나 편지처럼 서랍에 넣어둔 것이 아닌, 몸에 밴 습관 같은 것들. 나도 모르게 변한 감각의 기준 같은 것들. 그 사람과 이 년을 함께하면서 내 안에 스며든 것들이, 물이 마른 뒤에 남는 얼룩처럼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 사람은 음악을 좋아했다. 특별히 어떤 장르를 고집하는 건 아니었지만,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달랐다. 노래를 들을 때 눈을 감고, 한 곡이 끝나면 잠깐 침묵을 두고 나서 다음 곡을 재생했다. 곡과 곡 사이에 여백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원래 음악을 배경으로 두는 쪽이었다.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곤 했다.
이런 내가 그 사람과 지내면서 달라졌다. 이어폰으로 출근길에 음악을 들을 때, 좋은 곡이 끝나면 나도 모르게 일시정지를 누르게 되었다. 몇 초간의 정적. 방금 들은 음악의 잔향이 귀 안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나서 다음 곡을 재생하는 습관이 남아버렸다. 출퇴근길마다 그 사람의 흔적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잠자리도 바뀌었다. 그 사람이 오기 전에 나는 침대 한가운데에서 대자로 잤다. 그 사람과 함께 자게 되면서 오른쪽으로 밀려났고, 왼쪽을 비워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침대의 왼쪽이 넓게 느껴졌다. 한밤중에 잠이 깨서 손을 뻗으면 빈 시트가 만져졌다. 차가운 면의 감촉. 아무도 누워 있지 않은 쪽의 시트는 항상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그러면 그 차가움에 매번 잠이 깬다. 몇 달이 지나서야 다시 가운데로 돌아왔지만,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을 때가 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때보면 머리보다 몸은 똑똑하면서도 미련하다.
그 사람은 길을 걸을 때 보도블록 금을 밟지 않으려고 했다. 어릴 때 버릇이 남은 거라고 했는데, 옆에서 같이 걸으면 나도 모르게 금을 피하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넓은 보도를 걸을 때 발이 알아서 금을 피한다. 의식하면 멈출 수 있지만, 멍하니 걸을 때 튀어나오는 습관. 그때마다 웃음이 난다. 웃으면서 동시에 가슴 어딘가가 묵직해진다. 그 무게가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구분이 안 된다.
요리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파스타 면을 삶을 때 소금을 넣지 않았다. 소스에 간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면수에 소금을 넣는 걸 보고 따라 했더니 확실히 달랐다. 면 자체에 간이 배면 소스와 만났을 때 맛이 한층 깊어진다. 그 사람은 그런 식이었다.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작은 차이를 알려주는 사람. 고기를 구울 때 팬을 먼저 충분히 달궈야 한다는 것, 양파는 천천히 볶아야 단맛이 나온다는 것, 된장찌개에 들기름 한 방울을 넣으면 풍미가 올라간다는 것. 부엌에 서면 그 사람의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진다.
이토록 끝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함께 있을 때는 너무 가까워서 보지 못했던 것들.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들을 때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게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였는데, 함께 있을 때는 몰랐다. 헤어지고 나서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가 고개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알았다. 그 사람이 내 말에 기울여주었던 각도가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 관계 안에 있으면 그것이 공기처럼 당연하게 느껴지고.. 떠나고 나서야 그 공기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빈자리의 형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예리한 칼날과도 같았고, 석 달쯤 지나면 날이 무뎌지며, 여섯 달이 지나면 빈자리가 익숙해진다. 일 년이 지나면 빈자리는 빈자리가 아니라 그냥 내 공간이 된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냉장고에서 연겨자를 꺼낼 때, 음악이 끝난 뒤 일시정지를 누를 때, 파스타 면수에 소금을 넣을 때, 보도블록 금을 피할 때. 그 순간마다 빈자리가 잠깐 원래의 형태를 드러낸다. 거기 꼭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것 처럼 말이다.
오늘 저녁, 혼자서 족발을 시켜 먹었다. 연겨자를 풀고, 족발 한 점을 찍어 입에 넣었고, 곧 코끝에 시큰함이 느껴졌다. 예전처럼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 매운 기운이 코를 타고 올라갈 때 잠깐 눈을 감았다. 이 맛을 알려준 사람은 이제 없지만, 맛은 남아 있었다.
관계가 가르쳐주는 건 결국 감각의 기준이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깊은 것인지, 무엇이 충분한 것인지..
접시를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수돗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따뜻한 물에서 차가운 물로 바꾸면서, 온도 차이가 피부 위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행주로 손을 닦고 불을 끄려다가, 부엌 창 너머 아파트 불빛들을 보았다. 저 불빛들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연겨자를 꺼내고 있을지 모른다. 떠난 사람이 남긴 습관을 반복하면서, 그것이 그리움인지 성장인지 알 수 없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