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

[Part1] 7화. 이별 후 처음 간 카페

by 유리사탕

헤어지고 이틀째, 아무것도 안 했다.


셋째 날 샤워를 했다. 넷째 날 밥을 먹었다. 다섯째 날 밖에 나갔다. 이별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원시적으로 만든다. 씻는 것, 먹는 것, 걷는 것.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하나씩 다시 배우는 기분.


일주일째 되던 날, 그 카페에 갔다.


왜 갔는지 모르겠다. 안 가야 할 곳이라는 건 알았는데.. 발이 저절로 향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그 골목을 걷고, 그 문을 밀고, 그 자리에 앉는 일.

몸이 기억하는 루틴은 마음보다 느리게 지워진다.


문을 열었다.


종소리가 났다. 똑같은 종소리. 원두 냄새도 같았고 틀어놓은 음악도 비슷했다.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우리가 늘 앉던 자리. 이인용 테이블. 나는 거기 앉았다.


커피를 시켰다. 아메리카노. 그 애는 항상 바닐라라테를 시켰다. 나는 아메리카노.

주문할 때 "아메리카노 하나, 바닐라라테 하나"가 입에 붙어 있었는데, 오늘은 "아메리카노 하나"만 말했다.

하나.. 그 단어가 이렇게 쓸쓸한 줄 몰랐다.


커피가 나왔다.


테이블 위에 컵이 하나. 건너편 자리는 비어 있다. 의자가 반듯하게 밀려 있다. 아무도 앉은 적 없는 것처럼. 그런데 나는 안다. 거기 누가 앉아 있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빈 의자가 사람보다 많은 것을 말하는 순간이 있다.


창밖을 봤다.


토요일 오후의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커플도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고, 혼자인 사람도 있었다. 나도 혼자였다. 그런데 혼자인 것과 혼자가 된 것은 다르다. 원래 혼자인 사람은 빈자리를 느끼지 않는다. 혼자가 된 사람만 느낀다. 건너편의 부재를.


핸드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연락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도.


커피가 식어간다.


나는 그걸 천천히 마셨다. 쓴맛이 혀에 남는다.

이 카페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원래 이렇게 썼나?

아마 같았을 거다. 달라진 건 커피가 아니라 나니까.


옆 테이블에 커플이 앉았다. 여자가 남자 컵에 있는 거품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남자가 웃었다. 우리도 저랬나..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 저랬을 거다.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만들어낸 것 같기도 하다.

이별 후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다. 좋았던 것만 남거나, 나빴던 것만 남거나. 정확한 건 없으니깐


다 마시고 일어섰다.


계산대 앞에서 잠깐 멈췄다. 포인트 카드를 내밀었다. 도장이 아홉 개 찍혀 있었다. 열 개 찍으면 한 잔 무료. 아홉 개 중에 몇 개가 그 애와 함께였을까..

셀 수 없었다. 세고 싶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이제 이 카페에 안 올 수도 있겠다고. 아니, 언젠간 다시 올 수도 있겠다. 그때는 빈 의자가 그냥 빈 의자일 수 있겠다. 지금은 아니지만.


스물넷의 이별은 그랬다.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다음 날 해가 떴고 버스는 왔고 수업은 있었다. 다만, 모든 게 조금씩 어긋나 있었을 뿐이었다. 반 박자 느린 것처럼, 색이 한 톤 빠진 것처럼. 그 어긋남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얼마나 걸렸냐고 묻는다면..


포인트 카드를 새로 만들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