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

[Part1] 6화. 네가 두고 간 계절

by 유리사탕

이별하고 나면 계절이 하나 사라진다.


내 경우엔 여름이었다. 우리가 시작한 게 여름이었고, 끝난 것도 여름이었으니까. 유월에 만나서 그다음 해 유월에 헤어졌다. 일 년. 첫 번째 여름에 우리는 시작했고, 두 번째 여름에 우리는 끝났다.


그 뒤로 여름이 올 때마다, 어딘가가 시렸다.


시작은 캠퍼스 축제였다. 친구의 친구. 술자리에서 옆에 앉았고, 별 대화 없이 웃기만 했다. "그래"라고, "아 그렇구나"라고. 별 뜻 없는 말들 사이에서 눈이 자꾸 마주쳤다. 나는 원래 눈을 잘 안 마주치는 사람인데 그날은 달랐다. 이상하게 그 사람 눈을 보면 시선을 피하고 싶지 않다.


번호를 교환했다. 다음 날 내가 먼저 연락했다.


"어제 재밌었어." 별것 아닌 한 줄에 십 분을 고민했다.


연애는 빠르게 진행됐다. 스물셋의 여름은 그런 거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좋으면 만나고, 보고 싶으면 전화하고, 나란히 걸으면 손을 잡았다. 복잡한 게 없었다. 세상이 둘이면 충분한 것 같던 계절.


문제는 두 번째 여름에 왔다.


아니, 문제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용했다. 큰 싸움이 없었다. 배신도 없었다. 다만 대화가 줄었고, 만남이 줄었고, 웃음이 줄었다. 줄었다, 줄었다, 줄었다. 이별은 폭발이 아니라 감소였다. 있던 것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일.


유월의 어느 저녁, 그 애가 말했다.


"요즘 우리 만나도 재미없지 않아?"


나는 아니라고 하려다가 멈췄다.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솔직히 나도 느끼고 있었다.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 의무 같은 게 들어와 있었다. 만나야 하니까 만나는 것, 연락해야 하니까 하는 것. 사랑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관성이 되고, 관성이 피로가 되는 과정.


"그래, 좀 그런 것 같아."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서 처음으로 '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좋았던 것, 달라진 것, 앞으로 어떻게 할지. 놀랍도록 차분했다. 울음도 고성도 없었다. 스물넷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이별이었다.


그 애가 말했다.


"미워서가 아니야. 그냥.. 우리, 여기까지인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게 끝이었다. 악수도 포옹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 문을 밀고 나갔다. 바깥은 여전히 여름이다. 매미가 울고,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하늘은 미련 없이 맑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별이 이렇게 담담할 수도 있구나. 영화에서는 비가 오거나, 누군가 뛰어가거나, 이름을 부르거나 하는데. 현실의 이별은 그냥 걷는 거였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거였다. 각자의 방향으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왔다.


다시 여름이 왔을 때, 나는 캠퍼스 축제에 가지 않았다. 친구가 가자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아직 여름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고,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그냥 피곤하다고 했다.


그 계절을 되찾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지금은 여름이 좋다. 다시 좋아졌다. 다만 한여름 밤, 매미 소리를 들으면 가끔 잠깐 멈추게 된다. 아주 짧은 순간. 그리고 다시 걷는다. 돌려받은 계절 위를, 내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