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을 위한 자기계발
나는 매일의 생활이 흐트러지면 우울해진다. 내 생각에 이건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부작용 같다. 매일 매일에 작은 과제들을 부여하고 그걸 해내는 데 지나치게 적응해 버린 거다. 만약 그렇게 영혼이 자라나는 가장 예민한 시기의 십수년을 보낸 후에 입시에 성공했다면 일이 바쁘고 번 돈을 쓰느라 바빠 우울할 겨를이 없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예술 어쩌고를 업으로 삼겠다는,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대학 전공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영화도 만들고 싶었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그 중에서는 그나마 돈이 안드는 문학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분야는 돈이 안드는 만큼이나 돈이 되지 않았기에 어지간한 정신력과 희생정신이 아니고서는 돈없이 계속하기가 힘들었다.
내 전공을 생각하면 안타까움도 있다. 문단과 문단을 둘러싼 좁은 울타리 안의 사람들은(과거의 나 포함) 하나같이 세상의 무거움과 진지함은 다 저 혼자 짊어진 채 답도 없는 고민을 정말 진심으로 한다.
이러한 시대에 문학이란 게 여전히 존재해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
술에 취해 한숨을 푹푹 쉬며 정말 진지하게 저런 고민에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저건 부모가 섹스해서 애가 태어난 것처럼 너무 뻔한 답이 있는 고민이었다.
뭐 의미가 있나? 네가 좋아하니까, 네가 돈쓰니까 아직 있는 거잖아. 이 나라에서 문학은 소수의 매니악한 취미가 된지가 오래다. 그 매니악한 취미를 너무 깊이 판 나머지 생산자가 되고자 하는 소수의 하드코어 팬(소위 고급독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해 간신히 돌아가는게 그 바닥이다.
인생의 방향을 잘못 설정했던 대학시절에는 불행했다. 여러가지 상황적 요인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내 하루하루를 지탱하던 작은 기둥들이 사라지며 삶의 의지를 잃었던 것 같다.
목표를 세우고 매일매일 공부한 뒤 기록하는 입시생의 고정된 루틴이 사라지자 인생이 헐거워졌다. 놀고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배탈 없이 잘먹는다고, 노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자유와 시간 속에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 몇 가지 개인적인 고통들이 겹치며 나는 지독한 우울에 시달리게 되었다.
대학시절 전반을 지배하던 그 고통스러운 감정은 취업준비를 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매일 목표를 세워 공부를 하고 작은 성취감이 쌓이기 시작하자 그 성취감의 크기만큼 내 우울도 덜어졌다. 매일 책상에 앉아 무언가 읽고 사각사각 쓰고 남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앉아 있다보니 자연스레 부정적인 감정들과 멀어진 것이다.
그 때부터 매일 조그만 성취를 쌓아가는 규칙적인 삶을 살고자 했다. 운동, 영어공부, 도서 필사, 영상편집 배우기 등 다양한 것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물론 그 중 꾸준히 해내 평생의 좋은 습관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 시도는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실패했다. 다시 도전하는 이유는, 그런 것들을 하고 있을 때 내 정신이 건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끊임없이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자 도전했기에, 1년의 절반은 게으르게 보내고 절반 이상은 생산적으로 보냈던 것 같다. 가시적인 자격증이나 수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건강하고 행복했다.
무언가를 100일동안 반복하면 루틴이 된다는 자기계발서 말을 정말 믿는 건 아닌데, 이번엔 '100일 루틴 만들기'를 컨셉으로 또 생산적인 삶을 살아보려 한다. 아무도 읽지 않는 브런치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도전의 일환이다.하루의 루틴을 제대로 만드려면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과제 하나 끼워넣어야 한다는데, 아무거나 헛소리로 한 바닥 글자를 채우는 것이 내게는 가장 쉬운 일이기에 '매일 A4 반장 이상 글쓰기'를 도전하게 되었다. 공개적인 공간이라 '매일 올린다'는 결심을 지키기가 쉬울 것 같았다. 물론 매일 올리려면 필터없이 막 써낸 따끈한 글을 올려야 하기에 조금 두렵지만. 이 외에 하기로 마음 먹은 일은 스쿼트 100개와 토익 공부다. 갖고 있던 토익 점수는 5년 전에 만료되어서 기왕 영어공부도 할 겸 가시적인 점수를 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싶었다. 스쿼트 백개는 제대로 운동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워밍업 조차 못되는 초라한 운동량이겠지만 나같은 인간에겐 그조차 힘들고 다리가 당기기에, 안하는 것보단 나은 정도의 최소 목표로 매일 해보기로 했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이제 겨우 이틀째다. 작심삼일인 내일, 주말의 유혹을 무사히 넘길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