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고
주말에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었다. 이미 서점가를 한 번 휩쓴 베스트셀러인 데다 작가의 후속작도 출간된 상황이라 아주 뒷북 오브 뒷북이다. 사실 이전부터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무려 미국 변호사라는 저자의 넘사벽 이력이 조금 부담스러웠고, '유튜버 책'에 대한 편견도 있어서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나 역시 재작년부터 꾸준히는 아니어도 새벽에 일어나 영어 단어를 외운다던가 필사를 하는 걸 즐겨왔어서 '새벽 기상'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다. 새벽 기상을 할 때는 하루를 설렘이 가득한 상태로 시작할 수 있어서 삶에 대한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많은 양의 공부나 작업을 해야 한다는 과한 목표를 세우는 바람에 일정기간 하다가 놓아버리고 다시 도전했다가 또 놓아버리는 걸 반복했었다. 다시 잘해보고 싶으니 잘하는 사람에게 영감을 얻는 수밖에.
주말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왔다. 베스트셀러답게 여러 사람의 손 때가 묻어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꼬질꼬질했다. 어떤 내용인지 살펴만 보고 이따가 읽을까 하면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흠뻑 빠져들어 두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굉장히 잘 읽히는 책이고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답게 동기부여가 아주 확실히 되는 책이었는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의 매력은 다른 부분이다. 이 책은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았어.'하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책의 서사 자체가 '새벽 기상으로 미국 변호사가 되는 이야기'가 중심은 아니라는 점이 그랬다. 물론 저자는 새벽 기상을 이용해 변호사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지만 책의 초반부는 이미 변호사가 되어 대기업에 입사한 후부터 시작된다. 남들 보기에 커리어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고, 이룰 것 다 이룬 상황. 그런데도 저자는 피곤하고 울적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상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 목표를 이루기까지 해오던 새벽 기상을 다시 실천하게 된다.
저자는 새벽 기상을 통해 이러저러한 화려한 것을 얻었다, 라는 식의 동기부여보다 이 새벽 기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생활을 어루만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남을 짓밟고 이기거나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불행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으로서의 자기 계발, 자신을 돌보기 위한 자기 계발을 이야기한다. 즉, 자기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이다.
사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홀로 일어나 있는 건 보기에 따라 굉장히 외로운 행위일 수 있다. 저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외로움이란 뾰족한 바늘 같은 존재였다. 바늘로 나를 찌르면 아프고 피가 나겠지만 그 바늘로 찢어진 옷을 꿰매면 구멍이 채워진다. 그렇게 외로움을 그저 일종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여기고 자기 계발로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을 체득했다. 이때부터 무엇이든 혼자 행동하는 습관이 생겼다.
-p.135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방법' 중
저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존중했다. 사람들과의 교류로 덮어 가리거나,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평생 가져가야 할 것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무언가 찾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종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란 결국, 외로움 역시 자기 자신의 한 상태, 일부로 여기는 것이다. 내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러한 정서가 동기부여형 자기 계발서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책의 숨은 장점으로 느껴졌다.
나는 네가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여자로 자라났으면 좋겠어.
어린 시절 엄마는 내게 종종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했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것이 연인이 됐든 가족이 됐든 사람과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외로움과 평생 동행하고 있다. 연애 중일 때도, 겉으로는 연인에게 많이 의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고 어떤 경우에도 내 모든 마음을 다 내어주진 않는다. 내 마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항상 나를 위한 공간으로 남아있으며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나의 좋아하는 마음이 영악한 계산 아래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내 마음은 너무나 차갑게 식어버린다. 애초에 사랑이란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써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본능일 뿐인데, 지금은 온갖 달콤하고 안온한 판타지를 덕지덕지 덧붙인 마케팅 용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미화하지 않는 만큼 외로움이라는 말도 미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혼자고, 혼자인 자신을 잘 돌보고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할 때도 성숙하고 따뜻한 태도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벽,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는, 오롯이 혼자가 되는 그 시간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한다. 오늘도 새벽 4시 반까지는 아니지만 5시 반에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책에서 배운 대로, 무엇 무엇을 얼마만큼 반드시 해야겠다! 는 거창한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그저 빗소리를 들으며 영어공부를 조금 하고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사각사각 노트에 글자를 적어 넣으니 산만했던 마음이 절로 곱게 다듬어졌다. 그러다 보니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고 내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그 마음을 적어보기도 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지금도 내일 새벽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오늘 퇴근하니 인터넷으로 주문한 김유진 작가의 책 두 권이 도착해 있었는데 후속작 <지금은 나만의 시간입니다>는 본격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보여 무척 기대가 된다. 평일인 내일이 기다려지는 오늘이라니, 내게는 이 기다림이 곧 인생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