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몸치의 저가형 로잉머신 구매 후기
20대의 나는 몸매를 위해 운동했다.
피티도 받아보고 발레나 폴댄스 같은 것도 배워보고 스피닝과 요가도 해봤지만 솔직히 말해 건강을 위해 한 적은 없었다. 그저 한 가지 어리석은 목적 '마른 몸'을 위해서만 운동했다. 물론 온갖 운동을 찝쩍거리며 돈과 시간을 쓰면서도 단 한번도 원하는 만큼의 마른 몸은 가져보지 못했다. 내가 가장 말랐던 순간의 몸무게를 아직도 기억한다 51.5. 그조차 날씬했던 시절 밥을 건너 뛰어야 나오는 숫자였고, 내 몸무게는 결코 그 밑으로 내려가본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상태에서 10킬로그램이 넘게 쪘다. 지금은 아무리 굶고 운동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30대의 나는 몸매가 아닌 컨디션을 위해 운동을 한다.
나이 들수록 근육을 적금처럼 쌓아둬야 나중에 병원비가 안든다지만 솔직히 그런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조언은 별로 와닿지 않고 당장 내일의 컨디션이 지금의 나에겐 더 절실하다. 올 봄과 여름에 나는 등산에 미쳤었는데 그때는 평일 저녁엔 야등, 주말에는 10킬로미터 넘게 산을 타며 미친듯이(내 소박한 기준으로는) 운동을 했었다. 그 때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어디서 에너지가 샘솟는지, 지각도 아닌데 출근길 전철역 계단을 뛰어오른뒤 회사까지 달려가곤 했다. 야등을 안할 때면 동네 천변을 10킬로미터 넘게 걷기도 했고, 출근길 집에서 회사까지 약 10킬로미터를 걸어서 출근하기도 했다. 우울한 기분과는 담을 쌓고 지냈고 항상 약간 흥분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여러가지 이유로 등산을 그만두게 되면서 내 매일의 컨디션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등산으로 뺐던 살 5킬로그램이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이 시작이었다. 곧 아침에는 잠이 덜 깨 피곤하고 낮에는 회사라서 피곤했으며 저녁에는 에너지를 다 소진해 피곤한 날들이 반복됐다. 예전같았으면 피곤한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라 생각하고, '이게 회사원의 삶이지 뭐.'하고 그냥저냥 지냈을 텐데, 등산으로 넘치는 체력과 활기를 한 번 맛본 나는 이런 상태를 견딜 수가 없었다.
날씨에, 사람에 구애받지 않는 운동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틈날 때마다 실내 운동기구를 조금씩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처음 본 건 런닝머신이었는데 경험상 런닝머신을 주구장창 하는건 살빼는덴 도움이 되는지는 몰라도 컨디션을 올리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침에 런닝머신을 하고 출근하면 오히려 평소보다 더 피곤했던 것 같다. 등산이 내 컨디션에 도움됐던 걸 생각하면 심폐지구력을 올려주면서 근육량을 늘려주는 운동을 찾아야 했다. 다리 근육 발달에 도움을 주는 실내 자전거형 운동기구도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상체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렇게 몇 주를 검색하다 드디어 나와 맞는 운동기구를 발견했고 큰 고민하지 않고 들였다.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네 가지를 만족시키는 운동기구는 바로 로잉머신이었다.
나는 로잉머신중 가장 저가인 유압식 로잉머신을 십만원에 구입했다. 실패하면 바로 당근 마켓에 내놓을 요량이었다. 싸게 산 만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난 주말에 온 로잉머신은 내가 기대했던 네가지 요소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생각조차 안했던 장점까지 있었다. 그 장점이란 스포츠 브라를 하지 않아도 허리에 힘만 똑바로 주면 가슴이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예 브래지어 자체를 하지 않아도 운동이 가능했다. 게다가 공간차지도 적게 해서 인테리어에 큰 위협도 되지 않는다.
주말에 30분 운동을 시작으로 어제 오늘 이틀은 아침 저녁으로 1시간씩 로잉머신을 탔다. 전신 근육 운동이 되는 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강도로 하는데도 운동하면서 허리와 배,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진다. 엉덩이 근육도 쓰이는지 끝나고 나면 한동안 눕지 못할정도로 엉덩이 근육이 아프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등산처럼 에너지를 준다는 점이다. 할 때는 10분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지만 떨리는 팔 다리를 추스리고 나면 얼마나 기분좋고 개운한지 내가 혹시 피학적인 성향의 변태인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사실 저녁 운동까지는 내 계획에 없었는데 아침에 운동을 하고 나가니 이상하게도 저녁에 기운이 남아돌아 또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일 새벽에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에너지를 충전해줄 운동을 해야겠다. 이렇게 또 좋아하는 것 하나가 늘어나서 기쁘다. 다시 등산을 할 수 있는 봄이 올 때까지, 로잉머신에 투자한 십만원을 뽕뽑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