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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an 01. 2022

2021년 인간정산

작년 한 해의 나 자신 되돌아보기

*편의상 2021년을 '올해'로 지칭하였음.


올해의 발견: 마블의 아싸들

나는 사실 마블에 심취한 적이 없다. 어벤저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인 토니 스타크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가상인물 리스트에서 높은 등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본 어벤저스 영화들의 스토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기에 왜 싫어하게 됐는지 그 이유도 모르겠다. 아마 그 특유의 거무죽죽하고 지저분한 인상이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데, 거만하고 문란해서 싫어하게 된 것 같다.  얘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튀었는지 모르겠지만 올해의 발견은 마블이다. 별 관심없었고 심지어 대표적인 캐릭터에 강한 거부감까지 갖고 있었는데 이런 내가 '마블'이라는 단어에 설레는 사람이 될줄은 몰랐다. 나는 올해 내가 마블의 '비주류 캐릭터'들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는 걸 드라마 '로키'를 보고 깨달았다. 너무나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서 한동안 빠져 지냈다. 그러고보니 내가 재미있게 봤던 마블의 영화들은 다 비주류 캐릭터가 주인공이었다.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반면 어벤저스 시리즈는, 뭐랄까. 항상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과 재능이 소모되었을텐데, 당연히 재미없을 순 없다.) 항상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을 하며 봤다.


 올해의 독서: 문학과 멀어진 한 해

올해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특히 한국 소설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올해는 아주 각 잡고 오락 중심의 독서를 했던 것 같다. 읽은 책들은 주로 인테리어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실용서들, 재테크서와 자기계발서들. 10대와 20대 시절의 나에게 자기계발서란 정크푸드와 동급이었는데, 30살의 내게는 자기계발서가 주는 즉각적인 도파민 상승이, 소설이 남기는 찜찜한 여운보다 더 정신건강에 좋았던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는 대신 단편 소설을 하나 썼는데 노트북을 맥북으로 바꾸는 바람에 열리지가 않는다. 맥북에는 폴라리스 오피스를 업데이트해서 한글 파일을 열어야 하는데, 아이튠즈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2011년도에 잊어버린 덕에 폴라리스 오피스 업데이트가 안된다. 이것저것 알아보면 방법은 있겠지만 내 집에서만큼은 핑프이고 싶다. 아마 답답해지면 한컴 프로그램을 구입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정말 컴퓨터를 다루는 게 너무 싫고 귀찮다. 올해의 독서는 컴퓨터 얘기로 끝맺을 만큼 별 거 없었군.


올해의 음악

그래도 20대 중반까지는 새로운 뮤지션을 발견하기 위해 애썼는데, 요즘은 그냥 과거에 듣던 앨범들을 계속 듣는다. 음악 취향은 한번 형성된 이후 좀처럼 변하질 않고 있어서, 새로운 음악을 듣기 보다는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모조리 저장해 두고 질리지 않게 돌아가며 듣고 있다. 크게는 '잔잔한 것'과 '뽕삘 가득한 운동용'을 구분해 놓는데, '잔잔한 것'에는 the marias, the xx, rhye, honne, cigaretts after sex, 김사월이 있고 뽕삘 가득한 운동용에는 도쟈캣, 에이바 맥스, 비비 렉사 같은 언니들과 k-pop이 있다. 올해에는 '잔잔한 것' 리스트에 'off the menu'라는 한국 인디가 추가됐는데, 가사가 좀 더 시적이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내 기준 참 듣기 좋은 노래들이 많은데 가사가... 책임져 줄게 for the life time 이런 식이다.(제 손발은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우리나라에 시인이 얼마나 많은데 놀고 있는 사람 아무나 데려다 가사를 좀 쓰게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못알아듣는 스웨덴어 같은 걸로 노래를 부르든가.

night-off도 자주 들었다. 내 세대 문창과피플의 학창시절 소울 뮤지션 중 하나였던 이이언의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건데(잘 모른다) 가사가 아주 구질구질의 끝판왕이다(그렇지만 착 달라붙으며, 서사가 있다.). 알고 있지만/리뷰/그러지마 이 세곡을 반복해서 들었는데 '그러지마'는 무려 bts의 멤버 중 한 명이 피처링 했다.

유튜브 뮤직을 이용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재생목록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사실 10대 20대 시절과는 달리 좋아하는 음악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남이 만든 재생목록을 듣다가 꽂히는 게 있으면 좋아요를 눌러 저장하면 그만이니, 세상이 아주 편해졌다. 음악 검색 결과에 그 뮤지션에 대한 기사나 스토리 같은 것도 좀 나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아직도 안 생기는걸 보면 그런걸 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가 보다. 새벽에 공부하거나 글쓸 때는 맑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드는 피아노 연주로만 이루어진 음악을 선호한다.


올해의 취미

요리를 하게 되었다. 정성껏 시간들여 만든 따뜻한 것을 예쁘게 담아내 누군가를 먹이는게 내게 이렇게까지 큰 행복을 줄지는 몰랐다. 그 누군가는 나 자신이 될 때도 있고, 소중한 다른 사람이 될 때도 있다. 누가 되었건, 내게 중요한 존재를 위해 그의 한 부분이 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정말이지 즐겁다.


올해의 여행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친구의 납골당을 찾아갔던 진해 여행이다. 봄의 진해는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웠다. 내년에도 같은 숙소에 묵기로 했다.


올해의 변화

전에 없던 물욕이 생겼다. 좋은 소재의 액세서리나 옷, 신발 따위에 대한 물욕인데 싸고 예쁘면 장땡이었던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의 물욕이다. 여전히 옷에 대해서는 '싸고 예쁘면 그만'이지만 겨울 아우터를 좋은 것으로 장만했다. 요즘은 숏패딩이 유행이라 조금만 발품 팔면 고품질 롱패딩들을 아주 싸게 살 수 있는데 패션이고 뭐고 추운건 질색인 나로서는 아주 반갑다. 숏패딩아 오래 유행해라, 좋은 옷 싸게 사게.

신발도 지나가는 어머님들이 얼굴을 찌푸리지는 않을 정도의 퀄리티로 하나 장만했으며 14k 골드 액세서리를 몇 개 장만했다. 오래 입고 쓸 것들이라 아주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뷰티

미용실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아 라푼젤이 되기 직전이다. 물론 열심히 한 것도 있다. 속눈썹 펌과 증모제(녹내장약)을 이용해 길고 잘 말린 속눈썹을 갖게 되었으며 아이라인과 입술에 반영구 메이크업을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AHA성분이 든 크림을 발라봤는데 모공과 피부결이 확실히 개선되는 걸 느껴서, 같은 성분의 바디로션을 사서 애용중이다. 피부가 엄청 부드러워졌는데, 상처나 약한 부위에 닿으면 굉장히 아파서 조심해서 발라야 한다.


올해의 건강

작년에 비해 채소를 덜 먹어서 반성중이다. 대신 상반기에 등산에 빠진 덕에 운동을 많이 했다. 아이폰 건강앱에 따르면 2021년 내가 일 평균 8,071보를 걸었다는데 정말 놀랍다. 왜냐면 등산에 한참 빠졌을 땐 하루에 3만보씩 걷는걸 매주말 했고 걷기에 미쳐 회사까지 10km 거리를 걸어다닌 적도 있는데, 도대체 안 움직일 땐 얼마나 안 움직였길래 일 평균이 8천대가 나오는걸까. 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감동 중이다. 그래도 2020년엔 일 평균 6천대를 걸었는데, 2천보 가까이 더 걸었다. 2천보가 365일이니 73만보를 더 걸은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엄청난 거네? 장하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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