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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ul 30. 2022

소박하고 단단한 삶

내 집이 생긴 후 이전만큼 절실하게 돈을 모으지 않았다. 돈을 모은다고 생각할 땐 쌓여가는 통장잔고가 뿌듯해 절약이 어렵지 않았는데, 빚을 갚아나간다 생각하니 절약하는게 괴롭기만 하고 하나도 좋지 않았다. 그나마 올 초에 정부에서 하는 청년 적금에 가입한 덕에 300만원이 든 적금 통장이 생겼다. 매달 50만원씩 6달을 넣었는데 이마저도 초반에는 매달 50만원을 추가로 내는게 부담스러워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첫 4달은 엄마에게 25만원씩을 매달 빌려서 적금을 넣고 5달 째 되었을 때 마침 회사에서 목돈이 들어올 일이 있어 엄마에게 지금까지 빌렸던 100만원을 한 번에 갚고 그 달부터 나 혼자 적금 50만원을 오롯이 넣고 있다.

1억 4천만원짜리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빌린 돈은 9,300만원, 지금 남은 빚은 7,970만원이다. 1년 반동안 1330만원을 갚았다. 거기다 300만원 적금을 추가하면 1년 반 동안 1630만원을 모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계산해보면 나는 1년동안 안쓰고 모은 돈이 1,000만원인 인간인 셈이다. 

카드를 만들었다 쌓여가는 대출금에 겁을 먹고 없애는 등,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한달에 나가는 돈과 모으는 돈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궁색하지 않게 생존하면서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이 얼마인지 감을 잡는데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한 달에 주택자금대출 원금 62만원 정도를 갚고, 신용대출 원금 15만원 정도를 갚고, 50만원을 별도로 모으니 한 달에 127만원을 모으는게 된다. 사실 주택자금대출을 갚는게 돈을 모으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되지만 급매로 몇 천만원 싸게 산 집이고 깨끗하게 청소하며 살면서 계속 고쳐나가는 내 집이기에, 나중에 판다 해도 내가 산 값에서 더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집값을 갚아나간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에는 모든 게 빚으로 느껴져서 마음만 답답했다. 열심히 돈을 모아 더이상 갚을 돈이 없는 '자유의 몸'이 되는 때가 언제인가 매일매일 계산기를 두드릴 때도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되면 집은 월세로 주고 여행을 다닌다든지 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달콤한 꿈도 꿔보았다. 하지만 내 성격상, 집에 깔린 대출을 다 갚는다고 당장 돈벌이를 그만두고 어디어디 한 달 살이를 전전하는 게 가능할리가 없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돈이 있고 없고와 관계없이 그렇게 자유롭게 살더라. 나는 그들과 달리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매달 쌓이는 돈이 +가 되어야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집값을 다 갚는 때가 되면 나는 그만큼 더 나이들고 내 삶이 지나가 버리는데, 집 값을 다 갚게 되는 그 때가 빨리 오기를 바라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냥 내 재산이라고 생각하니 심적으로 자유로워졌다. 나는 4700만원을 갖고 있던 사람이고 4700만원이 1년 반동안 6300만원으로 불어난 것이고 집을 구매함으로써 쫓겨날 일 없는 안정적인 월세방을 갖게 된 거라 생각하니 돈을 갚는 것에 대한 안달이 덜해졌다. 

나는 일확천금에 대한 욕심이 없다. 주식투자 열풍이 불던 근 2년 동안에도 나는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고 태어나서 단 한번도 로또를 사본 적이 없다. 덕분에 돈을 더 벌지는 못해도 잃지는 않았다. 젊은이라면 으레 더 큰 꿈을 가지는 것이 옳겠으나, 나는 현재의 삶을 잘 가꿔나가며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더 큰 야심, 더 큰 꿈... 그런 것들이 분명 있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것들이 정말 내 꿈이고 내 야심이었을까? 약간의 의문이 든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었는데 누군가(그것은 타인일 수도 있지만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기준일 수도 있다.)를 만족시키기 위해 소화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이를테면 나는 '결혼 권장' 유튜버로 화제가 되고 있는 '독거 노총각'의 유명한 나레이션 중, '3000만원짜리 낡은 아파트에 산다'는 내용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3000만원짜리 아파트가 아직 있다니. 나같으면 저기에 2천만원만 더 투자해서 엄청 예쁘고 깨끗하게 해놓고 살텐데. 남은 돈으로는 여행도 다니고, 차도 사고, 그리고 남는 돈은 모아둔 다음에 최소한의 돈 벌이만 해도 재미있게 살겠다."

솔직히 그렇게 칙칙한 집에서는 그 분이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었다고 해도 더욱 비참해 보이기만 했을 거다. 똑같은 집에 (그의 유튜버에 수없이 '결혼 권장'이라는 댓글을 다는 남자분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외모의) 여성분이 등장해 잔소리를 한다든가, 이리저리 널려있는 형형색색의 장난감 사이로 아이들이 빽빽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닌다면 더 끔찍하지 않았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좋은 삶의 기준은 결혼과 아이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골방에 살아도 그 골방을 예쁘게 꾸며놓고 돈을 모으는 사람이, 월세로 사는 큰 집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화려한 삶을 전시하며 많은 돈을 벌지만 모으는 돈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크고 더 좋은 것, 더 화려하고 더 많은 것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며 끝도 모르게 질주하는 이 세계에서 나 혼자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박하다고 해도 내 삶을 포기했다거나 자존감이 낮은 것은 아니다. 가난해도 안정적인, 작지만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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