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 끝 10여년 만의 방송출연

장애부모의 부모됨 역시 당연하다는 것 알리수만 있다면..with KBS

by 은진슬

제가 아주아주 오랜만에, (약 10년 만에?) 제 성향과는 별로 맞지 않지만, 방송 출연을 했어요.

사실, 제가 장애부모의 육아문제에 대한 칼럼을 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방송 섭외가 들어오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많이 놀랐어요. 워낙,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거나, 블로그 포스팅을 공격적으로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죠.


EBS, 공감다큐, TVN 리틀 빅 히어로, KBS 사랑의 가족 등등…

어떤 프로그램은, 하도 자주 연락이 와서, 외주 제작사가 두 개라는 사실도 알게 될 정도였다죠. 하지만, 저와 같이 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송에서 장애인을 다루고, 장애 관련 이슈를 소비하는 접근 방식에 많은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저처럼, 언뜻 봐서는 장애가 잘 부각되지 않는 사람에게 흰지팡이나 선글라스를 써서 시각장애인임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라고 주문하거나, 평소 잘 하는 활동을 하는데도 좀 더듬거나 어설프게 해 달라고 한다든지… 좀 극적이고, 불쌍해 보이고, 뭔가 없어 보이지만 역경을 극복하거나, 누군가가 도와줘서 근근히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

아무래도, 방송이라는 것이, 시청자가 한 번에 감각적으로 확 끌리고 몰입해야 하다 보니 그런 측면이 있을 거라고, 아무리 좋게 이해해 보려고 마음을 먹어 봐도…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그들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정의를 카메라로 투사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도 불쾌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그렇게 프로그램을 제작하시는 작가나 프로듀서 및 연출자들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저는 잘 압니다. 그들 역시,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언론 속 장애인의 모습이 그랬기 때문에, 다른 모델, 다른 모습을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을테니까요.


사실,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제 입장에서, 방송국에서 날 찾아주고,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일적으로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껏 많은 방송사들의 의뢰를 거절해 온 이유는, 대부분의 섭외 담당 작가 및 조연출 분들과 몇 마디만 이야기 해보면, 기존의 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과 방송에 장애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 성향, 제 강의 방향, 제 글의 논조와 너무나도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영혼을 파는 느낌이 들어서, 아무리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해도, 이거 하면 강의가 더 들어올 걸 알면서도, 차마 할 수가 없더군요.

지난 겨울에는, 방송국들에 거절에 거절을 거듭하면서 엄청난 자괴감이 몰려와, 제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이신 친정엄마께 이런 고민까지 털어 놓았었답니다.


‘엄마, 나, 일의 특성상, 이런 방송들 출연하면, 강의도 더 들어올거라는 거 아는데… 애도 커가고 쓸 곳도 많아질 테니 돈도 더 벌어야 하는 것도 아는데… 아직 우리 나라 방송국들이 장애를 다루고 소비하는 방식이 너무 별로라… 내 아이와 그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장애에 대해 진실하고 담백하게 이해를 구하는 내 입장과 방송 내용이 너무 다르면, 내 아이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 같고,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할 것 같아. 엄마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조용히 생각하시던 엄마는, 불쑥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니, 내가 널 키울 때나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지, 아직도 안 바뀌었단 말이야? 왜, 너처럼 아이 좋은 유치원 보내고 싶고, 더 적합한 초등학교 보내기 위해 이사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여느 비장애엄마 못지 않게, 아니 훨씬 더 잘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장애인 이야기는 왜 방송국에서 다루지 않는 거야? 왜 아직도 장애인은 그렇게 불쌍하고 구질구질하게 다룬다니? … 그래, 자식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운 것이 부모이니, 니 소신대로 해. 엄마는 니 뜻을 지지한다.’


엄마의 지지는, 제가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저를 지탱해 준 원동력이었답니다.


%EC%82%AC%EB%9E%91%EC%9D%98%EA%B0%80%EC%A1%B1.jpg ⓒ KBS 사랑의 가족 홈페이지



그.런.데.

작년 12월, ‘사랑의 가족’ 제작팀에서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이미, 작년에만도 두 번째라, 저는 늘 하던 앵무새 같은 제 의견을 정중히 말씀 드리면서 거절을 했었죠.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그 후로 무려 6개월간 작가님은 제 이야기를 방송에 소개하고 싶다며 공을 들이며 저를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끊임 없이 제가 방송에서 불편했던 부분들을 말씀 드리며, 난색을 표했지만…

제가 뭐, 대단한 업적을 이룬 장애인도 아니며, 특별할 것도 없는,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별 것 아닌 이야기를 꼭 쿨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고도 가벼운 터치로…이렇게 아이도 잘 키우고, 자기 일도 잘 하며, 요리도 잘 하는, 범인들의 상식과 편견을 깨는 장애인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장시간을 들여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설득하셨답니다.

역시, 시간과 마음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모양인지, 작가님의 진정성과 집념은 저로 하여금 방송 출연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작가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작가님 말 속에 엄마의 말씀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죠.

‘잘하는 거 잘 한다고 이야기 해 주는 방송이 있으면 출연해.’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완화되길 바란다면서도, 나 자신부터 나를 드러내며 이야기 하는 것을 주저하며 꽁꽁 숨어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너무 잘 하는 걸 많이 보여 주고 싶어 하시던 우리 작가님과 PD님의 열정 덕분에, 저는 ‘사랑의가족’이 아니라, 시각장애 아줌마 버전의 ‘냉장고를 부탁해’를 찍은 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많은 요리를 했다지 뭐에요?

그것도 이틀치를 하루 만에 꽉꽉 눌러 찍느라,

참치크렌베리샐러드유부초밥, 아몬드초코칩쿠키, 생크림떡볶이, 차돌박이오일파스타, …

헉헉헉!


심봉사임당 현대모터스튜디오 나들이는, 사실, 거의 사고에 가까운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제가 예약을 진행하는데, 장애인 할인을 요청하는데 안된다는 거지 뭐에요.

왜 안 되냐니, 장애인 할인의 취지는, 장애인은 아무래도 어디 가나 도움이 필요하니까 그것을 감안해서 할인해 주는 것인데, 아동들은 성인 장애인의 보호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장애인 할인 요금을 적용해 줄 수 없다는, 정말 어처구니 대상실의 실언을 하시더라구요.

헐!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래서 제가 말했죠.

우리는 이 아이들의 부모이고, 이 아이들, 우리가 돈 안 내고, 우리가 안 데리고 나가면,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라고.

정말이지 모멸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도, 작가님은 일의 진행보다는 의리에 불타셔서는, 방송 생각 마시고, 소신껏 결정하시라고, 모터스튜디오 나들이 안 하고 싶으시면 안 하셔도 된다고, 다른 대안도 괜찮다고 말해주셔서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요. 그렇다고 그럴 수는 없죠. 어차피 방송과 상관 없이 늘 해 오던 일이었고, 우리 가족만 놀러 가는 거라면 그냥 확 지르고 따지며 인권위라도 갔을테지만, 그러기에는 타이밍과 상황이 난해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방송은 아직도 권력은 권력이더군요.

실은, 제가 예약 당시 촬영협조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기 전이었는데, 홍보팀에 촬영 협조를 구하고 나니, 태도가 확 바뀌더군요.

입장료도 다 무료로 해 준다고 하고(뭐, 입장료가 큰 금액은 아니지만), 운전면허 소지자가 없으면 예약도 안 되어서, 우리 가족은 한 번도 타 보지도 못했던 리무진도 태워 준다지 뭐에요.

그러면서 촬영협조 크레딧 넣어 달라는…ㅋㅋㅋㅋ

에이! 더러운 세상.ㅋㅋㅋㅋ

방송국이 끼니까, 뭐 해달라고 안 한것도 다 해준다네요.ㅋㅋㅋㅋ

당연한 결과겠지만, 우리 심봉사임당은, 입장료는 내고 간다고 사양했다지요.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제대로 된 어른이자 부모로 존중해 주지도 않는 기업인데, 입장료까지 면제 받고 들어간다는 건, 도저히 저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우리 심봉사임당으로서는, 이 일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향후 대응책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는데, 나중에 인권위 진정 등의 후속 조치를 하는 경우, 입장료 면제의 호의(?)를 받아들이면 문제가 될 소지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심봉사임당 나들이 촬영 나오셨을 때, PD님께서, 사실은 시각장애인 가족 다섯 가족이 애들까지 이렇게나 많이 데리고 괜찮을까,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나와서 직접 보니 그렇지 않았다며, 이런 것도 편견이었던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뿌듯했답니다.

강의는, 뭐, 늘 하는 거라, 학교 측에서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고,

일상촬영은, 정말 힘들더라구요.

확실한 건, 이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인이와 친근하게, 최대한 자연스럽고 좋은 영상을 뽑아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 주신 PD님과 작가님께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우리 김유리 PD님, 쉬크한 경상도 아가씨인데, 볼수록 매력있고 귀여우시더라구요.

쿠키 만드는 씬 찍으면서, 한 판 굽고 나머지 한 판 분의 반죽이 더 남아 있었는데, 본인이 촬영하면서 보니 재미있을 것 같다며 직접 해봐도 되냐셔서,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며 쿠키 구우셨다는 거 아니겠어요?ㅋㅋㅋㅋ

파스타 할 땐, 치즈그레이터로 파마산치즈도 가시고…ㅋㅋㅋㅋ

무엇보다도, 모든 촬영에 있어, 김유리PD님과 장소은작가님은, 단 한번도 무언가를 설정해 주기를 요구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그냥, 부지런히, 소리 없이 한 순간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으시며, 본인이 더 움직이면서 촬영을 하셨습니다.

저는, 직업적 특성 및 여러 이유로 카메라를 다루는 분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정말 고수들은 어떤 작위적이며 어설픈 설정도 요구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제가 이런 쉬크하고 담백하고 멋진 분 딱 세 분 뵜습니다.

제가 장애인 입장에서 너무 감사해서 PD님께 말씀 드리니, 사실, 방송사 타겟 시청층 평균을 중학생으로 보고 제작하기 때문에 설정을 하면 본인은 훨씬 편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자연스럽고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거라더군요.


감동!

original_7.png?type=p50_50


제가 확실히 사람은 잘 보는 것 같죠?

작가님도, PD님도 이런 마인드로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셨으니, 담백하고 쿨한 내용, 울 엄마가 바라는 대로,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것도 제법하네가 아니라, 잘하는 거 잘 한다고 말해주는 내용, 기대해도 될 것 같아요.


2.jpg ⓒ KBS 사랑의 가족 홈페이지


많이 고심하고, 정말 오랜만에 진행했던 방송 촬영이었어요.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편견이나 시선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그래도, 이렇게라도 장애부모의 부모됨이 좀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만 있다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성격상, 엄청 부끄럽고 오글거리지만…

제 글과 강의, 이야기에 공감하셨던 이웃님들은,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보시면서, 장애인의 부모됨,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셔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ㅠ뭐, 저로서는, 제 일상이 공개되다 보니, 이웃님들의 환상이라면 환상을 확 깨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제가 뭐 쓰는 걸 봐서나, 일하는 걸 봐서나, 워낙 건조하고 담백해서, 큰 괴리는 없을 거에요.

그저, 저도 우리 아이도 예쁘게, 편견 없이 바라봐 주시길 부탁 드려요. 보시고, 공감 댓글도 많이 달아 주시면, 제가 강의를 하거나 칼럼을 쓰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포스팅을 빌어, 이렇게 멋지고 쿨내 풀풀 나게 촬영하고 써 주시고 만들어 주신 김유리PD님과 장소은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작가님과 PD님 같은 분들을 방송계에서 더 많이 뵐 수 있길 바래 봅니다.

original_8.png?type=p50_50


그나저나, 방송이, 목요일 1시 KBS1TV라, 여간해서는 시청하기 쉽지 않으실 듯 하긴 해요.ㅋㅋㅋㅋ 뭐, 상황 되시는 대로, 인터넷 다시 보기로라도…ㅋㅋㅋㅋ

그럼 전 이만…쓰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빨개지네요.

총총총총!

https://youtu.be/v8OJvgG447M


blank.gif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각장애인 점자투표보조도구의 문제 제보, 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