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lind Englis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진슬 Dec 08. 2018

장애인들의 챔피언,
아버지 부시대통령을 기억하며

미국 공용라디오의 아침뉴스 번역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 CNN


지난 주 금요일,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 사망에 대한 기사까지 공부삼아 번역해서 올릴 생각은 없었지만, 사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시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는 미국 장애인법을 제정하여,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지양하고 인권 신장에 공헌한 것입니다.
 

저의 대학 시절, 우리 나라에서는 참고할 국내법조차 거의 없을 때, 시각장애 대학생들의 학습여건 개선을 위한 제안서를 작성하고, 다니던 대학에 시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를 만드는 데에 있어, ADA는 교과서나 성경 같은 존재였음을 부정할 수 없답니다.
 

역시, 미국 공용라디오의 아침 뉴스에서도 1990년, 미국 장애인법(ADA)를 제정한 아버지 부시대통령의 업적을 상세하게 기리고 있기에, 공유해 봅니다.
 

늘 그렇듯, 스크립트를 보지 않고 듣고만 한 번역이라,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 않음은 감안해서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금요일 94세로 세상을 떠난 Gorge H.W. Bush 대통령을 기리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침, 지금부터 몇 분 동안, 우리는 그의 제정법률 중 가장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했던 것 중의 하나였던 미국장애인법, ADA에 대해 돌아보겠습니다.


이 법은 수백만 미국 장애인들에 대한 고용 및 공공장소 접근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미국인들을 도왔는데요. 미국 장애인법 설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프리든씨는 자동차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후, 지금껏 휠체어를 타고 살아오면서 그 자신이 많은 차별을 겪어왔습니다. 그는 ADA는 도움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시민권에 관한 법률이라고 말합니다.


프리든: ‘ADA는 엄청난 제정법입니다. 이것은 장애인의 사회, 경제 생활의  모든 부분을 담아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의 전경을 바꿔 놓았지요. 나는 이것을 부시대통령의 리더쉽의 결과로 봅니다. 부시대통령은 언제라도 타협할 수 있었지만, 법 제정에 있어서 난관을 겪을 때마다, 그는 이 법은 원칙에 관한 문제라며 타협을 거부했어요.’


1990년 7월 26일, 부시대통령은 ADA 법안에 서명했고, 프리든씨는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프리든: ‘그 날은 워싱턴 D.C의 가장 더운 여름날이었어요. 백악관 잔디밭에는 20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초대되었고, 매우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제 생각에, 이는, 가장 큰 규모의 서명식 중의 하나였습니다.’


-행사 레코딩-

부시대통령: ‘희망의 기운이 퍼지는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행사레코딩이 Fade out 되며 프리든의 인터뷰-

프리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거의 모든 장애영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인지장애인, 지적장애인, … 정말 대단했지요.’


-행사레코딩-

부시대통령:저는 지금 막 미국장애인법에 아래와 같이 서명했습니다. <부끄러운 배제의 장벽이 마침내 와르르 무너지다!> 주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기를…’


-박수-

프리든: ‘그는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강한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그것에 감명 받았고, 언제나 그것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와 함께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건, 그가 휠체어 사용자가 된 이후이지요.’


지금까지 들으신 목소리는, 부시대통령이 제정한 ADA의 설계자인 랙스 프리든의 목소리였습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의 연대감을 위해 자진 삭발을 한 아버지 부시

지금부터는, NPR의 죠 슈피로가 함께 합니다. 죠는 ‘No pity!  People with disabilities forging a civil rights movements’의 저자이자, NPR 탐사보도팀 기자이기도 합니다.


죠,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레이첼!’


우리는 방금, 랙스 프리든으로부터, 부시대통령이 아니었다면, ADA는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것이 맞는 이야기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부시대통령이 없었다면, 1990년 ADA도 없었을 겁니다. 당시 ADA는 주로, Liberal Democrats 상, 하원 의원들에 의해 입안되었는데, 기업들은 이 법을 따르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는 법안을 폐기하려고도 했고, 이를 위한 캠페인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어 토론을 거치는 동안, 부시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일단, 백악관이 합류하자 공화당도 법안에 찬성하게 되었으며, 결국, 마침내, 큰 표차로 ADA는 상, 하원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부시대통령을 이 법안 제정의 강력한 지지자로 만든 것이죠?

‘한 가지 이유는, 장애는 정당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부분의 법안 발의자가 Liberal democrats라고 언급했는데요. 예를 들어,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경우, 케네디가족은 지적장애인들의 옹호자였죠. 오하이오 상원의원인 톰 하킨의 형은 농인이었으며, 하원의원 토닉 펠로우는 뇌전증을 갖고 있었고,  스텐리 호이어의 부인 역시 뇌전증이 있었습니다. 또한, 공화당 쪽을 보면요, 밥 돌은 2차세계대전에서 총상으로 팔이 절단되었고, 부시대통령 역시 장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시대통령이 무척 좋아하는 외과의사 삼촌은 소아마비에 걸렸으며, 부시와 바바라는 어린 딸 로빈이 백혈병으로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지요. 바바라가 백악관에서 영부인으로서 문맹퇴치활동에 집중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이 역시,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녀의 아들 닐은 심한 학습장애로 인해 글 읽기를 깨치는 데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시대통령은 이 법안 제정에 있어서 뜻밖의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죠?

‘ 레이건-부시 행정부 초기로 돌아가 봅시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은 부시를 부통령으로 임명하고는, 정부 규제를 완화하라는 말과 함께 숙제를 줍니다. 규제개혁대상 중 가장 큰 두 가지 타겟은, 새로운 장애인권리법이었는데, 첫째는 최초로 장애아동에게  학교에 다닐 권리를 보장한 법이었고, 둘째는 장애인차별을 금지한 법으로, ADA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Section 504였습니다. 하지만, Section 504는 ADA와는 달리, 주로, 각 주나 지방정부 등 연방정부로부터 제정지원을 받는 기관들에 한해서만 장애인 차별을 금지할 것을 강제하는 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초의 법들 중 하나였으며, 부시대통령은 이 법들을 심의하는 위원회의 의장으로서 이러한 규제들을 완화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들, 특히 장애인 부모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규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매우 격분했고, 수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부시는 이들 중 일부를 만났고, 그들에게 감명 받았습니다. 그들은 부시에게 정부지원금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고,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법을 원했지요. 그는 이것을 잊지 않았고, 몇 년 후 대통령이 되고, 의회에서 ADA를 제정하자, 이 법안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전에도 조금 언급하셨지만, 부시가 이 법안을 지지하는 데에 있어 어떤 반대에 직면했는지 좀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의 스텝들 중 일부는 반대를 했고, 사실 스텝들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일부는 매우 강하게 이 법안을 지지했는데, 1981년 위원회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었어요. 또 다른 일부는, 이 법안은 고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통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죠.’


이쯤에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 이 법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장애인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글쎄요, 랙스 프리든이 언급했듯이, 이 법은 미국의 전경을 바꾸어 놓는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것에 대한 장애인 접근과 포용을 약속했습니다.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를 이용할 수 있고, 학교에 다니고, 직업을 갖는 등의 평범한 미국인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부시 자신이 좋은 본보기이기도 한데, 말년의 그 자신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되어 이동에 있어 도움이 필요했고, 파킨슨병을 앓았기 때문입니다. ADA는 부시의 휠체어가 턱을 없애고 경사로가 놓인 공공장소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부시의 비밀요원이 설치된 경사로를 통해 그를 출입 시킬 수 있었던 부시가 좋아했던 휴스턴의 영화관에서 랙스와 함께 영화도 볼 수 있게 해 주었지요. 또 다른 측면에서 ADA가 장애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장애를 가짐으로써 생기는 크나 큰 낙인효과를 지워 준 것입니다. 부시대통령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1975년에서 80년대, 90년대까지… 전투기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멋진 몸의 소유자였죠. 하지만, 생애 말년의 그는 휠체어를 탄 모습으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ADA가 장애에 대한 낙인효과를 지우는 데에 공헌했기에, 그 또한 장애를 숨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NPR의 죠 슈피로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문기사는 아래의 URL을 참고하세요 

https://www.npr.org/2018/12/03/672817727/remembering-george-h-w-bush-a-champion-for-people-with-disabiliti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