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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May 10. 2019

자의식 강한 8세 남아의
좌충우돌 피아노 레슨기

환희의 송가 때문에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다!

드디어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를 수 있게 된 이응이 !!



들어가면서...

아이는 작년 7월부터 장장 10개월간 천신만고, 악전고투, 애걸복걸, 사정사정, 사탕발림, 고진감래, 적반하장, 버럭버럭,...그야말로 온갖 인간의 감정들을 뒤섞은 멜팅팟을 허우적대며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


나는 피아노 치는 엄마로서 아이와 함께 이 끈적한 진탕을 헤매면서, 아들에게, 그것도 자의식 강한 8세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내 아이를 가르치는, 보다 동물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깨달은 ‘유초등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 한번 쯤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개인적으로 정리해 두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피아노 치는 엄마다.
보통, 엄마가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는 일에 아이도 일찍 노출시켜 잘 가르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만 보아도 그것은 극과 극,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 아예 내 전문분야 근처에도 안 왔으면 하는 부류와, 일찌감치 원대한 목표와 포부를 갖고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조련하는 두 부류가 양극단에 존재한다.


난 전자의 부류에 속했고, 아들 역시 내가 일 때문에 어쩌다가 멋진 클래식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주제곡 등을 제법 그럴싸하게 연주해 주어도 도통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나의 음악적 유전자를 물려받지는 않은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맘 편히 지내던, 아이 일곱 살의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피아노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6세까지는 거들떠도 안 보던 그것을 말이다. 뭘 하고 싶어서 피아노를 만져보냐고 하니,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유치원 코앤코 뮤직에서 환희의 송가를 들었는데, 속이 뻥 뚫리게 시원하고 멋져서 나도 쳐 보고 싶어. 나 피아노로 쳐 보게 엄마가 알려줄 수 있어?’


오호! 그렇단 말이지?ㅋㅋㅋㅋ 
그래, 뭐든 잘 하면 좋지. 게다가 나와 깊이 교감할 수 있게 악기 하나쯤 배우면 얼마나 좋아? 멋지잖아?


음악에는 여섯 평생 전혀 관심도 없던 아들이 갑자기 관심을 보이자, 엄마 욕심이 스멀스멀 비집고 나오려 했다.
워워워워!
이응이엄마 일단 진정진정!ㅋㅋㅋㅋ
슬슬 아이가 원하는대로 미끼만 던져 줘 보자구.


그렇게 해서 아이는 내게 환희의송가 계이름을 열심히 배웠다. 한 두 마디씩 물어보면 쳐 주면서 계이름을 말해 주는 정도. 아이가 원하면 가끔 듣기 좋은 버전으로 환희의 송가를 쳐 주기도 했다.


물론, 환희의송가 오케스트라버전 원곡을 지휘자가 지휘하는 모습까지 담긴 멋진 유튜브영상으로 보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미파솔 솔파미레 도도레미 미레레 미미파솔 솔파미레 도도레미 레도도...’


아이는 조금씩 각 음가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과 다른 박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런 상태에서 인지적으로도 가능한 연령이니 악보를 가르칠까 하는 유혹도 있었으나 그것은 갑자기 조금이나마 생긴 음악에 대한 아이의 관심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릴 것이 자명했기에 시도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 시점에서 악보를 가르치는 대신, 아이가 쉽게 자신이 친근하게 듣던 익숙한 튠들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게임하듯 따라하기만 하면 손쉽게 구현해낼 수 있는 자극을 조금 제공해 보았다.
떴다떴다 비행기, 나비야 나비야, 무엇이무엇이 똑같을까, 험티덤티 등등...


사실, 이 부분은 내게 있어서는 매우 모험적이며 위험한 시도였는데, 우리 아이는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등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자기가 들었던 동요들이 소리로 재현되는 것을 보며, 나름의 흥미와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팀의 응원가의 계이름을 물어가며 뻔질나게 피아노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오, 롯데 이대호, 오오 롯데 이대호오...’
 ‘어, SK 로맥 응원가가 환희의송가네.’


흠, 덕분에 나는 숱한 팀의 응원가 튠을 아이에게 계이름으로 알려 주어야 했고, 아이는 나 몰래 피아노 건반에 위치를 찾기 쉽도록 네임펜으로 작게 건반이름까지 적어가며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나날을 이어갔다.
이러면서 어느덧 8세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그런데, 아이는 갑자기 내게 선포하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아무래도 나 피아노를 좀 배워야겠어. 나도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곡을 연주하고 싶어. 선생님 좀 집으로 불러 줘.’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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