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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Jul 24. 2017

영어는 공부하는 것이 아닌,
소통하는 것

눈 감고 영어 배우기

덧붙이는 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이 어려운 텍스트들을 읽다가, 머리를 좀 식히고자 평소 영어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줌마로서 생각해 오던 바를 끄적끄적 적어 봅니다. 제 블로그 섹션에 Blind English라는 파트가 있는데, 그만큼 제가 영어를 좋아하며 관심도 많아서, 평소 영어를 좋아하고 제법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아줌마 입장에서, 영어에 대한 제 생각들이나, 영어를 잘 습득하는 노하우 등을 글로 남겨 보고 싶었는데, 게을러서 잘 안 되더라구요. 그런데, 갑자기 너무 비생산적인 하루, 집중이 잘 안되는 시간이 왔기에, 끄적끄적 몇 자 적어 봤습니다. 


** 지적 도전을 즐기는 비현실적인 부부 이야기.

지난 주 토요일, TOEIC 시험을 보았다남편이의 제안으로 남편이와 10만원을 걸고 TOEIC Battle을 한지 거의 2년 만이다.


남편과 나의 영어실력에 차이가 있어 서로 별도의 다른 목표점을 설정해 놓고는 시험을 쳐서 목표치에 더 가깝게 도달한 사람에게 10만원을 주는 Battle이었다그 때의 난, TOEIC 문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가서 시험을 보았는데다행히(?) 남편이를 이겨서 10만원의 짭짤한 용돈을 득템하여 평소 나를 위해 뭐든 잘 사지 않는 아줌마가 그걸 보태 필요한 무언가를 샀던 기억이 난다.


남편과 나는 아이 재우고 나면 각자의 학습공간에서 문을 열어 놓고는 띄엄띄엄 대화도 하면서 책 보고 공부하며 이런 걸 즐기는조금은 독특하고 비현실적인 부류의 사람들이다남편이나 나나 이 나이에 취업을 할 것도 아니며남편 회사에서도 국외 지사로 나가는 계획이 있지 않고서야 TOEIC 따위를 절박하게 봐야 할 이유도필요도 없는 아저씨 아줌마인데ㅋㅋㅋ


왜 이런 뻘짓을 하는 건지때로는 스스로도 의문스럽다참고로남편이는 아이 낳고도 방통대 농업과를 들어가서 졸업했고유기농업기사 자격증도 땄으며지금은 방통대 법대에 적을 두고 있다가히 학위와 자격증 홀릭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반면우리 아드님은이러한 강력한 면학분위기에도 불구하고공부에 대한 체질적인 알러지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니이런 건 유전이 안 되는 모양이다.ㅋㅋㅋ


** 영어는 공부가 아닙니다.


나의 다소 특이한 취미 중의 하나는영어로 뭔가를 하는 것이다내게 있어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취미이자 즐거움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여기 저기서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이를 낳자마자 암선고를 받고이 따끈따끈 여리여리한 아기랑 내가  세상 속에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아니더 정확히는내가 살아 남아서 이 아이를 평균적인 엄마들만큼 키워 낼 날이 올까 노심초사 두려움에 떨 때도아이가 15 개월쯤 되어 이제 겨우겨우 좀 살만한 느낌이 오자마자 찾아왔던 거대한 자존감의 붕괴 위기 때도...


그렇게도 낮잠이 없었던 아이어쩌다가 낮잠이라도 한 번 자 줄라 치면 29분 알람을 달고 있던 아기가 밤에 잠들면어김없이 미국 공용라디오 방송과 TED를 한 두 시간씩 들었다. (아인이는 낮잠을 안 자는 대신나 수술 받으러 간 동안 아이 케어해 주실 엄마 힘들까봐 100일부터 했던 밤중수유 끊기 덕분인지그나마 밤엔 통잠을 자 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번역해 보고 싶은 기사나 강연이 나타나면생짜로 그 강연을 들으면서 번역을 하곤 했다누가 시킨 것도 아니요그걸 하면 예전처럼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가학에 가까운 행위였을지도 모를 일.ㅋㅋㅋ 하지만그 땐 그거라도 해야 했다.


초보엄마로 육아의 늪에서 허덕이는 아줌마에게, NPR TED를 듣고번역하는 행위는육아와 건강상의 문제로 일과는 영영 이별하게 될 것만 같았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불안감과 자괴감의 사이클을 끊어내는 주술 같은 의식이었기에


또한피아노를 쳤던 나는 알았다아무리 내가 출중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피아니스트가 손가락이 굳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연습곡과 스케일 등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과 같이 영어를 다루지 않으면내 영어기술은 곧 연기처럼 증발해 버리리라는 것을


이런 이유로나는 지금까지도육아 때문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는 날이나일을 하거나 글을 쓰다가 잘 안 풀릴 때공부를 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져 집중이 안 될 때면 영어 뉴스나 강의를 듣거나 영어책을 보는 습관이 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나는 내가 영어로 하는 그 무언가를 영어공부라고 지칭하지 않는다이건 그 목적과 패턴이 공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언어를 공부로 배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아기를 키워 본 부모들은 공감하겠지만아기들 중 그 어떤 아기도 공부하면서 언어를 배우지 않으니까그저 말하고 싶으니까엄마 얘기를 알아 듣고 싶으니까옹알거리다가 어쩌다 엄마라고 한 마디만 해도 온 세상의 찬사를 다 받는 게 기쁘고 신나니까

굳이 말하자면이런 게 아가들의 언어학습의 동기부여 요소가 아닐까?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모름지기 아기처럼 순수하게 소통하고 싶은 내적 동기다시 말해 상대방의 말을 알아 듣고 싶은 강한 욕구옹알옹알 나불나불 내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그 느낌 등이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전술한 Motivation의 종류는 다를 수 있다.

나의 경우를 살짝 언급만 하자면,

시각장애 때문에 좋아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자막을 읽을 수 없는 게 너무 답답해서, 
외국 여행을 가서 맥도널드 로컬버거라도 먹으려면 메뉴판을 볼 수 없으니 물어보고 정보를 획득해야 해서,한국어 화면읽기프로그램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영어 화면읽기 프로그램을 사용해서라도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어서, …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어서영화를 보고 싶어서이런 건 대단히 생활 밀착형 욕구들 아니던가?

결국이런 강력한 동기들로 인해 영어를 하게 되면영어를 공부로 느끼기도 힘들다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고컴퓨터를 사용하는 좀 더 편리한 삶을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것은성적을 잘 받기 위해취업을 위해스펙을 높이기 위해, TOEIC 900점을 맞기 위해 하는 영어배우기와는 그 출발과 몰입도부터 질적으로 달라진다.  영어실력은 이런 이유로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일 뿐이다.


오늘의 결론은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것

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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