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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Jul 11. 2021

시각장애엄마의 비시각적 여수 여행기

[다양성컨설턴트 은진슬] 밤바다와 요트의 낭만이 함께 했던 여수여행

지난달 주말인 6월 19일에서 20일, 저희 가족은 오랜만에 1박 2일 여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랜 블로그 이웃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희 가족은 남편과 제가 모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행지 선택의 기준이나 여행 스타일에 있어 아무래도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예를 들면, KTX나 기차 등의 대중교통 접근이 가능한 곳을 선호한다든지, 아웃도어형 캠핑 스타일 보다는 호텔이나 콘도 등의 숙박시설을 좀 더 선호한다든지 이런 부분이죠. 이런 면에서 몇 년 전 KTX가 개통된 평창이나 여수 엑스포로 인해 교통이 좋아지게 된 여수 등은 저희 가족이 운전하지 않고도 편하게 접근하기 좋아서 선호하는 여행지입니다.


여수는 2년 전 여름 휴가로 2박 3일 여행을 한 적이 있는 곳이라 오랜만에 다시 찾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럼, 시각장애엄마 은진슬의 비시각적 여수 여행 한 번 떠나 볼까요?


1. 용산역에서 KTX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여수의 편리한 대중교통 접근성


저희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상황 통제나 아이 화장실 및 기저귀 가는 문제, 아이가 지루해할 때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도 넓은 편인 점 등을 고려하여 기차 여행을 즐겨 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남도 S트레인이나 서해 금빛열차 등의 특별 열차를 타면, 가는 길에 기차에서 족욕을 하고 다도를 경험해 본다거나, 온돌바닥에 앉아 보드게임도 하고 맛난 간식도 먹는 등의 특별하고 즐거운 기차 여행 또한 경험할 수 있어 매우 좋습니다. 이응이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등에는 기차 카페나 기차 식당이 있어서 나름 낭만과 운치가 있어 좋았는데, 약 3, 4년 전부터는 수익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코레일에서 운영을 중단해서 아쉽더군요.


몇 주 전부터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차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저희는 저희만의 기차티켓 구매 노하우를 동원하여 익산까지 가는 KTX를 구매하고 다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환승이 가능한 익산에서 여수까지 가는 새마을호 티켓을 구매해서 비슷한 시간 내에 목적지인 여수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익산까지는 KTX 전용 철도이기 때문에 매우 빠르지만, 익산에서 여수까지는 어차피 모든 기차들이 같은 길을 사용하기 때문에 KTX를 타나 새마을호를 타나 시간상의 큰 차이는 없거든요.


참고로, 다음 날 돌아오는 티켓 역시 경합이 치열하여 겨우 2시 58분 기차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어떤 때는 이렇게 빨리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게 마련이죠. 이럴 때 저희 가족은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과 달리 내 여행 시간의 주도권을 다소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점을 만회하기 위해 조금 늦은 시각의 티켓에 대기 구매를 걸어 두었다가 취소분이 발생하면 얼른 티켓을 잡아 둔답니다. 이번에도 이렇게 해서 오후 4시 30분 티켓 하나를 더 확보하여 안정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많이 하고픈 것이나 가고 싶은 곳이 없다면 예정대로 이른 티켓을 사용하여 집에 가면 되고,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보다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으면 조금 늦은 시각에 출발하는 티켓을 사용하면 되니 대중교통 여행자 입장에서 갖기 힘든 주도권을 조금 더 가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죠. 


물론, 내 여행 스케줄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임박해서 티켓을 다시 내려놓는 것에 따르는 1, 2천원 정도의 수수료는 내야 하지만 수수료 이상의 소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 너무나도 별로였던 오동도 카멜리아 회센터에서의 식사.


여수역에 도착하니 어느덧 12시 30분, 점심을 먹어고 오동도 산책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택시를 타고 오동도 입구까지 갔습니다. 역에서 오동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기본요금 정도의 택시비가 나옵니다.(3700원 결제) 오동도 내에는 카멜리아 회센터 하나밖에 선택의 여지는 없기 때문에 남편이 그곳에서 회나 먹자고 하여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평소 꼼꼼했던 남편을 너무 믿은 탓이었을까요? 남편이 뭔가 많이 조사했을 줄 알았건만, 안타깝게도 아니었더군요. 그냥 자리가 좋아서 그야말로 힘들이지 않고 대충 장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1인당 5만원짜리 회 세트를 시켰는데, 제가 아무리 여러 다른 보다 저렴한 곳에서 먹어 보았던 것에 비해 너무 질이 좋지 않고 나오는 음식들의 가짓수도 너무 적었습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35000원에서 4만원 정도의 회 정식을 먹어도 간단한 튀김이나 곁들이 반찬들이 잘 나오는 편인데, 여기는 여수라는 점을 감안한 젓갈이라든가 하다못해 게장 조각 하나라도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고, 아이들이 먹을 만한 튀김이나 콘버터 같은 음식도 전혀 없이 그냥 기본 반찬들 뿐이었습니다.


회는 다른 곳과 비슷하게 문어, 전복, 산낙지, 해삼, 멍게 몇 조각 정도와 광어가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쌈채소 조차도 없었다는 것 역시 충격적이었죠. 게다가 공기밥도 시킨 인분 수만큼은 대부분 그냥 주는 것에 반해 여기는 따로 추가 요금도 받더군요.ㅠㅠㅠㅠ 제가 먹는 것에 엄청 진심이고 까다로운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기준을 낮추고 바라보아도 제가 식당 리뷰 같은 걸 한 적은 없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더군요. 오동도 가시더라도 카멜리아 회센터는 절대 절대 네버 에버 가지 마시기 바라요.ㅠㅠㅠ


** 하도 카멜리아 회센터 음식이 허접해 사진도 찍을 생각 없었지만, 태어나서 제대로 처음 본 산낙지에 문화 충격 받은 이응이가 찍은 산낙지 사진.

3. 맛없는 점심 대신 아들과 둘이 오동도 산책하며 사진 찍기 놀이.


아들은 광어나 연어회 정도는 제법 잘 먹지만 스끼다시 없는 회 정식은 아직은 어린 이응이에게나, 회를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나 너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식사 시간은 길어지게 마련인지라, 식당에서 유튜브나 스마트폰을 보여주지도 않는 우리 집 상황에서 이응이도 너무 지루할 것 같았기에 (남편이 회와 매운탕에 청하 한 병을 음미하려면 시간이 제법 필요하겠다 싶어서) 아들과 저는 근처 오동도 숲길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잠시 근처 답사를 다녀온 이응이가 고른 곳은 식당 근처 맨발로 발 마사지하며 걸을 수 있는 숲길. 반대편 바닷가 길은 사람들도 훨씬 더 많고 어르신들이 너도 나도 사진을 찍으시느라 난리라고 하더군요. 아들이랑 단둘이 향긋한 숲 내음을 맡으며 걷기도 하고, 어디서 봤는지 자꾸 저더러 나무를 안아 보라는 둥, 나뭇가지를 잡아 보라는 둥 하면서 포즈를 취하라기에 엉뚱한 포즈로 사진 찍기 놀이도 했습니다.

** 오동도 숲길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들.


아들과 단 둘이 잠깐 산책 후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아빠 식사 마무리하고 다시 나와 셋이 오동도 숲길 산책을 했습니다. 숲길을 조금 더 걸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 오동도 바다 풍경.


바다를 보고 내려오면서는 아빠도 발 마사지 산책에 합류했어요. 저도 또 하라고 했지만 사양했습니다. 저는 정말 발이 아프더군요. 그래도 이응이는 밟고 나니 시원하고 좋다고 했습니다. 이응이는 마사지도 제법 잘 받고 제가 어디 쑤시면 거기가 어딘지 정확히 근육을 찾아 포인트를 잘 누르며 이런 것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마사지나 물리치료 같은 것에 소질이 있는 것도 같아요.(제가 이래뵈도 우리 나라 특수교육의 결과로 비록 장롱 면허이긴 해도 안마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아는데 근육의 기시, 정지, 위치도 모르는데 이응이 포인트 잡아내는 건 진짜 신기하거든요.)



** 아빠와 발마사지 산책 타임 사진.

너무 더워서 짧은 산책을 마치고는 오랜만의 바깥 나들이에 급 체력이 저하된 이응이에게 오동도 입구에 있는 소프트아이스크림 노점상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물려서 기운을 북돋우며 근처에 있는 베네치아 호텔까지 걸었습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 이 정도야 가깝지만, 다소 먼 곳을 걸어야 할 때도 많은 뚜벅이 여행자인 저희 가족을 위해 저는 항상 각자의 가방 안에 500밀리미터 생수 한 병을 얼려서 보냉파우치에 넣어 주는데, 이날도 지친 이응이에게 몸을 식혀 주는 아이스팩도 되었다가 목마름을 달래 주는 얼음물도 되었다가 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오션 뷰에 넓고 쾌적하며 조식도 맛있었던 여수 베네치아 호텔.


** 여수 베네치아호텔 바다 쪽에서 바라보고 찍은 사진.


2년 전에 남편 회사에서 휴가 지원 사업에 뽑혀 멋진 오션 뷰 객실과 호텔 1층에 있는 갓김치 선물까지 받으며 여름 극성수기에 단돈 12만원에 이틀간 묵었던 경험이 있었던 호텔이라 잘 알고 있어 다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선택한 옵션은 더블침대와 싱글침대가 있어 3인이 잘 수 있는 패밀리트윈룸에 2인 조식과 2인 요트 탑승권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이었고, 가격은 271400원 이었습니다. 토요일 투숙이라는 점과 요트 및 2인 조식 제공을 고려할 때 나쁘지 않는 딜이라고 생각합니다.


호텔 뷰는 크게 오동도가 보이는 오션 뷰와 여수의 명물인 빅오쇼를 공짜로 관람할 수 있는 빅오쇼 뷰가 있는데, 저희는 오션뷰로 선택했어요. 여기서 잠깐 빅오쇼에 대해 언급하자면... 사람들은 저게 뭐 별거겠냐 하지만, 저희가 여수 여행을 간다고 하니 남편 직장 동료 중 현지 출신인 분이 숨은 명공연이라며 추천해 주셔서 저희는 2년 전에 매우 감동하며 관람했습니다.


나름 여수의 바다를 중심으로 특산물을 활용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아 바다의 태동에서부터 환경 오염으로 인한 미래 바다의 암울한 모습,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던지는 스토리를 가진 매우 크고 임팩트 있는 조형물에서 압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과 불과 안개, 가슴을 울리는 엄청난 사운드의 음악까지... 매우 여운이 많이 남았던 공연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여수 여행시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정도는 꼭 관람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여수 빅오쇼(BIG-O SHOW)의 한 장면 영상.


호텔 내부는 3인이 사용할 룸답게 비교적 넓은 소파와 작지 않은 탁자에 더블과 싱글 침대가 트윈 형태로 놓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만들어진 호텔들은 바닥이 카펫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너무너무 좋아요. 개인적으로 서양 스타일 카펫 생활 너무 싫어하거든요. 여자들 머리카락도 엄청 많이 끼어 서식하게 되고, 물이나 이물질을 흘려도 골치 아프고, 먼지도 너무 많이 마시게 되는 것 같구요. 또,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작은 물건 같은 게 떨어졌을 때 떨어지는 반향음을 카펫이 먹어버려서 물건 찾기도 힘들고요. 아, 딱 하나 좋은 건 유리컵이나 휴대폰 같은 거 떨어뜨렸을 때 컵이 깨지거나 액정이 나갈 확률은 다소 줄긴 한다는 점 정도이려나요?ㅋㅋㅋㅋㅋ


** 호텔 방 내부 사진.


욕실은 샤워부스 형태이고,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어메니티를 따로 주지 않고 벽에 부착된 디스펜서 안에 샴푸린스 겸용 샴푸와 바디클렌저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샤워부스 수도꼭지 동작 방식은 아이들에게 매우 위험하고 어른들에게도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는 조이스틱 형태라 의도치 않은 혼동된 조작으로 급 뜨거운 물이 나오거나 원치 않은 방향에서 물이 쏟아지는 위험이 있어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주의하도록 지도해 줘야 할 것 같더군요. 그래도 좋았던 점은, 욕실에 턱도 없고 샤워부스 문의 넓이도 수동 휠채어는 어느 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 물리적 장애인접근성을 고려할 때 객실과 욕실의 접근성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욕실 비대 및 변기 물 내리는 등의 조작 버튼이 세면대 아래에 있었는데 별도의 양각 표기나 점자 표기 등이 없는 데다가 터치식이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은 사용할 수가 없는 점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 욕실 사진.



호텔 오션 뷰는 이렇게 보입니다. 바닷가에 정박한 요트나 전남대학교 실습선, 해양경찰선 등도 보이고, 이 근방에서 가장 비싼 상징물과도 같은 소노캄 호텔도 보이네요. 야경도 멋졌는데, 아쉽게도 소노캄 조명을 일찍 꺼서 멋짐이 약간 반감된 느낌이었습니다.

** 호텔 룸에서 본 오션 뷰 낮과 밤 사진.


참! 그리고 베네치아 호텔에는 멋진 루프탑 수영장이 있어서 바다를 보면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답니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루프탑 수영장에서 신나게 오랜 시간 수영을 하며 반나절을 보냈었지요. 그 생각이 나는지 이응이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물놀이나 수영장에도 간 적이 없다 보니 은근히 가고 싶다는 의견을 표현했었지만, 마음이 아파도 코로나에 취약하고 위험이 높은 시설이니만큼 잘 타일러 다음 기회를 기약했답니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물러나고, 백신 접종도 마무리 되어 아이들이 마음 놓고 모여서 놀고, 하고픈 물놀이와 여럿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구기종목 등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루프탑 수영장을 못 간 아쉬움을 2년 전 사진으로나마 달래 봅니다.


** 2년 전 베네치아 루프탑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들.


5. 여수 밤바다를 보며 여수 해상 케이블카 타기.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조금 쉬다가 부실했던 점심을 만회하고자 아이 입맛에 맞추어 배달앱을 통해 돈까스정식을 시켜 먹고는 야간 케이블카를 타러 나갔습니다. 2년 전에는 낮에 케이블카를 탔기 때문에 이번에는 버스커버스커가 그렇게 열심히 읊조리던 노래 속 여수 밤바다 야경을 보기로 했거든요. 케이블카 탑승장에는 다른 곳보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밀도가 높아지니 긴장이 되었지요. 코로나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티켓팅을 하고 탑승장에서 대기하며 QR코드를 찍고 여수 야경을 보면서 기다린 시간이 한 30에서 40분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은 탑승장 같은 곳에서는 QR코드 리더기 위치를 찾기도 힘들고, 또 아이의 경우 수기로 작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한데, 이응이가 얼른 찾아서 휴대폰 두 대 들고 가서 QR 찍고 수기로 적을 것은 적고 하느라 정신없었을 거예요.ㅋㅋㅋ 두 부자는 지난 번에 타고 싶었던 크리스탈 캐빈(바닥이 투명해서 발 밑에 바다가 뻥 뚫린 것처럼 보이는 케이블카)을 내심 타고 싶어 하였으나, 제가 밤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보이며 아슬아슬 스릴 있고 무서운 임팩트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지적하며 대기 시간과 금액을 고려할 때 다음 번 낮에 와서 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며 설득해서 일반 케이블카로 결정하여 탑승했습니다.


냉정하고 분석적인 제 결정에 두 부자는 못내 아쉬워하는 듯하더니만, 케이블카를 타고 나서 몇 분 지나니 남편이 그러더군요. 엄마 말 듣길 잘했다, 엄마는 역시 똑똑하고 다 계획이 있다고... 그래서 저도 한 마디 했죠. 거봐라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ㅋㅋㅋㅋ 크리스탈 캐빈이 아니어도 여수 야경을 바라보며 타는 케이블카는 너무 멋지고 좋았습니다.

** 케이블카에서 찍은 야경 사진들.


코로나 때문에 케이블카 탑승 인원이 4인 이하로 축소되는 바람에, 저희 가족은 3인이라 가족 끼리만 케이블카를 타는 호사도 누렸답니다. 덕분에 이응이는 유튜버 중계방송 모드로 영상도 찍었는데요. 내리기 직전에 이응이가 찍고 있던 영상에서 썰렁한 남편이 우리를 웃겨 주었습니다.


** 케이블카에서 울려 퍼진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ㅋㅋㅋㅋㅋ


두 남자에 따르면 베네치아 호텔 조식은 맛있었답니다. 이응이는 호텔 조식을 엄청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전날 일정이 피곤했다 하여도 이응이는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 부지런히 7시 30분이면 일어난다죠? 호텔 패키지는 2인 조식이 포함되어 있고 아이는 19000원 추가 요금 결제를 하면 셋이 식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마침 호텔 1층에 위치한 투섬플레이스 기프티콘이 있었던 관계로 그것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실은, 저는 장애 특성 때문에 호텔 조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뷔페식으로 구성된 음식들을 구분하기도 어렵거니와 일일이 부탁을 해서 먹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죠.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되도록 사람들이 적어서 직원들이 저를 도와주기 편한 이른 시각에 조식 라운지에 가서 호텔 직원에게 부탁을 하고 디저트 및 커피 포함 3회 이내로 식사를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답니다. 


물론, 나올 때 도움을 받은 직원에게 팁을 주는 것도 잊지 않죠. 외국에 나갈 땐 가끔 팁과 함께 한국 미니 약과나 전통 주전부리를 함께 드리기도 한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지간히 가까운 지인이 아니고서는 함께 뷔페식당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워요. 그나마, 남편은 저보다 시력 정도가 낫지만, 어쨌든 엄마 아빠 둘 다 시력이 좋지 않으니 셋이 접시 들고 다니며 이응이가 설명하랴, 집어 주랴 자기도 먹으랴 정신 없어 보이는 게 안됐어서 저라도 좀 짐을 덜어줄까 하는 맘도 들고요.


근데 의외로 이응이는 뷔페식당에서 음식 설명하고 구경하고 서빙하는 걸 재미있다고 말해 주는데, 아마도 제가 미안해 하는 걸 아니까 속 깊게 그렇게 말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암튼, 남편과 이응이의 전언에 따르면, 조식 제공되는 라운지도 엄청 넓어서 밀집도도 낮았고, 보통 평균적인 호텔보다 메뉴가 다양하고 맛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응이는 셀프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와플이 있어 좋았다네요.


6. 체크아웃 후 호텔 2층의 레트로 느낌 물씬 풍기는 게임존에서 놀기.


체크아웃 후 요트 탑승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호텔 2층에 있는 레트로 느낌 흠뻑 풍기는 게임존에 갔습니다. 다트놀이, 당구대, 농구게임기, 인형뽑기, 하키게임 등등을 할 수 있는 추억 돋는 게임장이었죠. 닌텐도나 유튜브, 온라인 게임 등에 과몰입하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 이런 게임장에 가서 물리적으로 아빠 엄마 어릴 때 추억도 이야기해 주면서 가족끼리 게임 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이응이와 아빠의 게임하는 모습.


바닷바랍을 가르며 속이 뻥 뚫리게 시원했던 요트 체험. 요트를 탄다고 하면 흔히 외국 영화 같은 곳에서 나오는 멋진 요트에 파티도 하는 상류층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저는 이응이 1학년 때 제가 이끌고 있는 시각장애 부모 가족 모임인 심봉사임당 나들이 때 안산 시티투어를 하면서 애들은 갈매기한테 새우깡 주고, 어른들은 믹스커피 마시면서 탔던 요트 체험 생각이 납니다.


이번에는 베네치아호텔 패키지로 제공되는 요트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탔던 요트에 비해 규모가 커서 작은 유람선 같은 느낌도 나는 정도의 요트 치고는 제법 큰 요트였습니다. 정해진 시각에 선착장에 가니, QR코드 찍고 인적사항 등 적고 요트에 탑승했어요. 요트가 커서 구명조끼는 입지 않았습니다. 요트가 출발하니 시원하게 바닷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리니 속이 뻥 뚫리는 듯했습니다. 오동도도 보이고, 다른 바나나보트나 레저용 보트들도 보이고, 호텔도 보이고... 매우 멋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여름의 햇볕은 따가왔지만, 바람이 시원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실 밖에 앉아 사진도 찍고 얘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탑승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였는데, 그 시간 동안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기분이고, 유람선과는 다른 약간의 와일드한 매력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요트 탑승시 이응이가 찍었던 사진 및 동영상들.


가슴이 뻥뚫리는 듯한 기분으로 요트에서 하선하는 것으로 우리 가족의 1박 2일 여수 여행은 막을 내렸습니다. 1박 2일은 너무 짧고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요트 선착장에서 여수엑스포역까지 열심히 걸어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여행지로는 9월 초 평창 대관령 양떼목장을 중심으로 하는 산에 콕 박혀 자연과 함께하는 평창 투어를 계획 중입니다. 이렇게 여행기를 써 보니, 저에게는 너무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네요. 어쩐지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글투에, 어색함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니... 아무래도 장애 특성상 사진을 보면서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글을 끄적이는 스타일의 블로깅이 불가능하기 때문인 점도 있는 듯합니다.


정말이지 리뷰 블로거들에 이어서 여행 블로거들도 존경합니다. 두서 없고 어수선했지만, 그럼에도 저의 비시각적 여수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특히, 같은 장애를 가진 가족들의 여행 준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 꼼꼼하게 작성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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