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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Jun 11. 2021

의도치 않게 6년째 식물 집사가 된 이유

육아로 만나는 새로운 것들과 취향 변화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세상의 다름을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다양성컨설턴트 은진슬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육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 때문에 육아 이전엔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것들을 접하기도 하고, 이전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되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아이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수풍뎅이 같은 애완 곤충을 키워 본다거나, 몬테소리 유치원이나 숲 체험 등이 많은 자연친화 유치원 같은 곳에 다니면서 집으로 스멀스멀 전달되어 오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식물들을 어찌할 바 몰라하며 키우기도 하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요즘 들어 베란다에서 자라고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 같이 동·식물 친화적이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화분을 정성껏 돌보며 부담스럽게 체크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더군요.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을 너무나도 부담스러워하며 멀리하던 제가 엄마가 되어 살아있는 것들을 돌보게 된 경이로운 변화에 대해 끄적여 보기로 했습니다.


결혼 후 단 하나의 화분조차 없었던 건조하고 상막했던 우리 집에 초록 식물이 처음으로 입성하게 된 것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된 6년 전(이응이 5세 때)부터였습니다. 가톨릭계 몬테소리 유치원이었던 이응이 유치원에서는 부활절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아이들에게 예쁜 병아리 인형까지 꽂아서 작은 화분을 하나씩 선물로 주셨는데요. 다섯 살 첫 번째 화분은 카랑코에였습니다.


대학생 때도, 혼자 살던 싱글 때도 로즈마리나 바질 같은 허부류를 좋아해서 시키는 대로 하면서 물도 주고 키워 봐도 늘 몇 주 지나지 않아 신의 손도 아니고, 늘 하늘로 인도하는 저였기에 아이가 소중히 여기는 이 화분을 어떻게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을지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인터넷 검색을 하고, 매일 화분을 들여다보면서 물은 마르지 않았는지, 잎새의 성장이나 모양 변화, 구멍은 나지 않는지 등을 유심히 살피며 카랑코에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거라 생각했던 카랑코에는 다행히 쑥쑥 잘 자라더니, 2년째 되자 예쁜 꽃을 보여주더군요. 정말이지 제 손으로 죽이지 않고 키워낸 첫 화분이었기에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6년간 잘 자라 2020년 봄, 꽃을 활짝 피웠던 카랑코에


하지만, 안타깝게도 6년 여간 이응이와 함께 성장해 오던 소중한 카랑코에는 지난 겨울 죽게 되었어요. 한편, 여섯 살 부활절에는 다육이를 받았는데, 그냥 두기만 해도 잘만 큰다던 다육이는 제가 물을 좀 잘못 주었는지 몇 달 가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7세 부활절에는 시클라멘을 받았는데, 정말 하늘하늘 꽃이 실크처럼 예뻐서 잘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 때문에 잎이나 줄기 등에 물이 닿지 않게 물을 주는 '저면관수'라는 말까지 배워가며 열심히 키워봤지만, 시클라멘 역시 여간 까다로운 아이가 아닌지 몇 달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죠. 하지만, 유치원 때 이응이와 함께 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와 함께 살아 남은 친구들도 있답니다.


7세 여름 유치원에서 과학관 견학을 갔다가 이응이가 받아 왔던 테이크아웃 커피잔에 심겨져 왔던 아기 고무나무는 2018년 초반 추위에 시달려 이파리가 딱 두 개 남았기에 이게 살까 못 살까 고민하며 버리려다가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키웠더랬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쑥쑥 건강하게 잘 자라 주어 너무 고마웠답니다.

우리 집에 온지 5년째 되는 커피 테이크아웃잔에 심겨 왔던 고무나무

7세 여름쯤 유치원에서 몬테소리 연계과제로 화분 하나를 엄마 아빠랑 골라서 키우는 활동이 있어 아빠와 꽃집에 가서 데려왔던 백운각은, 초반에 부러지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부러진 측면에서 다시 새로 선인장이 자라 주었고, 그것이 너무 무거워 잘라주어야 할 지경에 이르러 이렇게 잘라서 다시 심어 준상태랍니다.


하지만, 백운각은 저렇게 높이 자라고 길게 자라서 항상 부러짐에 위험이 있는 것 같아요. 실은, 며칠 전에 물 주다가 저도 끝을 살짝 부러뜨리고 말았거든요. 그 새 새끼도 하나 더 있어서 아주 작은 아이도 이렇게 심어 주었는데 제발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네요.


이응이 7세 때부터 우리 집에서 꺾이고 부러지는 역경을 이겨내고 자라 주고 있는 백운각 선인장.


제가 이렇게 생각보다 마음 써가며 열심히 화분을 키우고 있다는 걸 아신 이응이 유치원 원장수녀님께서는 제가 강의를 갈 때면 매해 부활 즈음인지라 그 해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신 화분을 저에게도 주시곤 한답니다. 재작년에는 꽃기린을 받았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머무는 사이 그만 본의 아니게 죽이고 말았답니다. 올해는 원장수녀님께서 다른 유치원으로 보직 발령을 받으셔서 옮겨가셨는데, 며칠 간 강의를 갔더니 마지막 날에 이렇게 예쁜 클레로 덴드론을 주셨네요. 소중히 잘 키워서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어요.


올해 마리나 수녀님께 선물 받은 클레로 덴드론


이응이는 이렇게 유치원에서 화분들을 많이 접하고, 텃밭도 가꾸고 해서인지 식물 돌보고 베란다에 들락거리며 관찰하기를 4학년이 된 지금도 좋아한답니다. (사실 사랑이 너무 각별하여 물을 지나치게 자주 주어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요.) 지난 4월 말쯤 오랜만에 아이와 한적하고 호젓하며 사람들과도 부대끼지 않아서 우리가 좋아하는 서천 여행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개인이 운영하는 분재박물관에 갔었거든요. 아이가 너무 예쁘다며 스노우볼이라는 다육이를 직접 심어서 데려왔답니다. 벌써 한 달 사이에 눈에 띄게 자라는 모습이 보이는데,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멀리 서천에서 기차로 조심조심 데려온 스노우볼이라는 다육식물


혹시 여러분들 초등학교 때 자연(우리 때는 과학 아니고 자연이었음) 수업에서 강낭콩 키우기 했던 걸 기억하시나요? 이응이도 이번 4학년 1학기에 그걸 하더라구요. 전 학교 때도 강낭콩 싹이 샬래 속에서 날까 안 날까 고민도 안 하고 그저 교실에서 선생님이 하는 냥을 지켜 보기만 했던 어린이였던 것 같은데 말이죠. 등교 수업이 제한적이라 집에서 강낭콩 키우기를 해야 했던 탓에, 아이 강낭콩 싹이 안 날까봐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매일 몇 번씩 들여다보며 키웠는지 몰라요.


다행히 세 개 정도 싹이 나는 데 성공해서 큰 화분에 심었더니 생각보다 아주 늦게 포기할 때쯤 떡잎이 올라오고 이렇게 자라고 있답니다. 과연 콩깍지가 몇 개라도 나올까요?


이응이 4학년 과학 활동으로 관찰일지 써가며 키우다 이제는 내가 키우고 있는 강낭콩


아이 덕분에 생명이라면 무엇이든 부담스러워 하고 멀리 하려 했던 제가 서툴지만 본의 아닌 식물 집사(?)가 되었습니다. 식물 하나 하나의 이름을 찾고, 어떻게 해야 잘 살게 할 수 있는지 정보들을 찾고, 흙은 말랐는지, 잎은 갈라지지 않았는지 세심히 살피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베란다 환기를 하며 화분들의 안부를 체크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해요.


이렇게 식물들과 가까이 지내며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일과 식물을 키우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예민하고 세심히 살피며 그 필요를 채워 주고, 너무 지나친 관심과 과잉 보호는 삼가며,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되더라구요), 조금 더디게 자라거나 힘들어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지켜봐 주는 일 등등 말이죠.


사실 코로나로 오랜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와 갈등이 생기거나 힘들 때, 마음을 가라앉히려 베란다에 가서 화분들을 쓰다듬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아, 화분 키우는 것처럼 아이 키우는 것도 물만 주고 볕만 들게 하면 눈에 보이게 이렇게 쑥쑥 잘 자라듯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라고요.


이응이 덕분에 식물들에 관심을 갖고 키우기 시작한 지 어언 7년째. 제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안 했을 일 중의 하나가 식물 키우기 아니었을까 해요. 그런데도 이렇게 식물 하나 하나에 대한 추억과 소중함을 간직하며 최선을 다 해 키우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을 보며 가끔은 조금은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합니다.


식물이라면 키우는 족족 하늘나라에 보내기 바빴던 엄마가 제법 식물들을 소중히 여기며 잘 키우려 노력하는 초보 식물 집사가 되는 일, 이것이 바로 힘들고 고되며 쉽지 않은 육아가 주는 뜻 밖의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동물이라면 너무 부담스럽고 무섭기만 한 제가 코로나로 고립된 외로운 외동아이인 이응이를 위해 반려동물 분양을 준비하며 몇 달 째 공부까지 하고 있다는 건 어찌 설명해야 할지...


조만간 반려동물 입양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지도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우리 집 식물 친구들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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