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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Jul 17. 2020

카카오 저금통이 시각장애인에게만 알려주는 정보가 있다?

본의 아닌 정보접근성 과잉의 아이러니에 관하여...

최근 모바일뱅킹의 편의성이 극대화되면서 카카오뱅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나 역시 소소한 재미와 편의성 때문에 카카오뱅크를 자주 이용한다. 특히, 카카오뱅크 앱의 경우, 시각장애인의 앱 정보접근성이 타 모바일뱅킹 앱에 비해 좋은 편이라 더욱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새로 시작한 카카오 저금통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앱 정보접근성 문제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제법 크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되어 글로 옮겨 본다.

카카오 저금통은, 연결된 내 계좌에서 입출금이나 카드 소비 등을 하면서 소소하게 생기는 백원 단위 이하의 동전들을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동 모으기 기능을 통해 가상의 저금통에 모아 주는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우리가 실제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을 때처럼 내가 얼마나 모았는지는 알 수 없게 하면서도 어림 짐작할 수 있는 다양한 힌트 아이콘들을 제시하여 궁금함과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함으로써 자투리 돈 모으는 재미를 주려는 것이다.

219일째 카카오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고 있는 내 저금통 현황을 카카오뱅크는 아래와 같이 알려주고 있다.

'친구와 피맥' 이라는 텍스트와 피자/맥주 아이콘과 함께 며칠 간 저금통에 이 금액을 모아왔는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카카오 저금통은 시각장애인인 나에게만 살짝(?), 몰래(?) 한 가지 정보를 더 알려주고 있다.

그것도 가장 핵심적인 정보를.

그건 바로...

.

..

'40,572원'

바로 내 카카오 저금통의 현재 잔액이다.

몇 개월 전, 이 문제를 발견한 나는 혼자서 자조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시각장애인들은 늘 인터넷 및 앱 정보 접근에 있어서 불편함을 느끼며, 부족한 정보 접근성에 목말라 있다. 비밀번호 입력 키패드를 안 읽어준다, 결제버튼이나 확인버튼이 안 읽힌다, 

아이폰의 보이스오버나 컴퓨터의 센스리더와 같은 시각장애인 화면읽기 프로그램이 각종 앱과 웹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각종 시각적 정보를 비시각적 정보로 변환하여 적절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정보들에 대체 텍스트를 달고, 웹과 앱 디자인 초기부터 국제 표준의 웹 및 앱 접근성을 준수하며 홈페이지나 앱이 제작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이러한 지침이 우리 나라에서는 잘 지켜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앱으로 쇼핑하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각종 민원 처리도 하는 편리한 세상 속에서 시각장애인의 독립적 일상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늘 제공되는 정보의 접근성이 낮다거나, 정보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칠 수 밖에 없는 시각장애인인 내가, 숨어 있는 대체텍스트를 아이폰 보이스오버가 읽어 주는 바람에, 비장애인들은 모르는 현재 저금통 잔액을 알 수 있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인가?

이번 만큼은 늘 정보 접근에서 소외된 시각장애인인 내가 비시각장애인들보다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카카오뱅크가 이것을 의도하지 않았음은 자명하며, 이러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본의 아니게 카카오뱅크는 자신들이 설계한 서비스의 재미를 나와 같은 시각장애 고객들에게서 앗아가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나는 동전들이 얼마나 모였을까 궁금해 하는 돼지저금통의 설렘을 맛보고 싶었는데...

카카오 저금통이 나한테만 살짝쿵 남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알려준 건 고맙지만, 나는 많은 앱 및 웹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적어도 딱 비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질과 양 만큼만 정보 접근이 가능하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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