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진슬 Jan 01. 2020

어느 모범생 출신 장애엄마의
육아권태기? 육아위기?

                                                                                                                                                                          


어제 구운 쿠키는 이렇게 포장하여 오늘 아침 아들 손에 들려 학교로 갔다. 


사실, 내가 이 어처구니 없는 눈으로 베이킹을 시작한 단 하나의 이유는, 

장애부모로서의 육아에 대한 내 진정성과 책임성, 성실성을 잃지 않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자, 

장애부모는 이러이러해서 아이를 키우기에 적절치 않다는 세상의 편견에 대한 나 나름의 부드럽고 달콤한 항변이었다. 


실제로 내가 유치원 파티 등에 베이킹을 해 갔을 때도 선생님은 당연히 이모님이 만들어 주셨을거라 단정하고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물어봐서 아이를 비분강개(ㅋㅋㅋㅋㅋ)하게 만들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책임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해 오던 내 견고했던 육아의 성이 최근 들어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하필이면 학교 석면 공사로 앞으로 2개월 몰입육아를 해야 하는 이 시기에 말이다.

최근 몇 개월간 까다롭고 예민한 9세 남아의 육아가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나는 화를 교양있고 있어 보이게 표현하고 싶어서 글을 열심히 쓰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정 표현,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불편해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40년간 못 높여본 목소리 데시벨을 한꺼번에 높일 생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 톤이 높아지곤 한다. 더욱이, 내가 종종 아이에게 사용하는 어휘를 점검하면 문득문득 나 조차도 놀랄 정도로 부정적이고 아름답지 않은 어휘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나를 워워워 하며 브레이크걸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남편 역시 대부분의 상황에서 내 상황을 공감하기 때문인것 같은데, 아이 입장에서는 잘잘못을떠나 외롭고 아픈 일일 것 같다.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좋은 부모는 적당히 말썽도 피워 보고 해야 될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나나 남편이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도 잘 하고 말썽이 될 일 근처에도 가지 않은, 그야말로 천상 재미 없는 모범생 출신이다.


아마도 우리 둘 다 장애아이로 세상에 그 존재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았기에,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은 좀 더 사랑 받을만 하게, 좀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아이로 여겨지도록 자기 보호를 위해 자신을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억제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우리의 기준은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더라도 더 높고 더 갑갑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내 육아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많아 논점이 다소 근본적이며 먼 곳까지 가버렸지만...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얼마 전 내 알량한 쿨한 엄마 코스프레의 밑바닥을 본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특별히 사교육을 받지 않고 우리와 하루 과목당 20분 정도씩 받아쓰기라든가 수학 단원평가 같이 필요한 공부를 해왔다. 주로 100점 95점을 받아 왔다.


그런데 지난 11월 단원평가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85점을 받아 왔고, 그 때는 좀 더 꼼꼼하게 풀라며 쿨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결국 지난 주 단원평가 직전에 공부를 하다가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85점은 안 받았으면 좋겠어.’
그렇다. 내 알량한 쿨한 엄마 코스프레의 한계는 기껏해야 90점 까지였던 것이다. 


보통의 부모들도 어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이에 대한 기준과, 아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미성숙함과 발달 과정 사이의 부조화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장애부모, 그것도 모범생 출신 장애부모라면 자신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아닌지, 사회에 보여지는 모습에 지나치게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요즘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도 내 육아 철학이나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 역시 내 높은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갑갑함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다.

이런 상태로 과연 나는 2개월의 몰입육아를 잘 해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하는 장애엄마, 장애공감 Song을 만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