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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Jul 07. 2019

음악하는 장애엄마,
장애공감 Song을 만들다

‘자연의 맛, 바른 먹거리. 건강한 맛, 바른 먹거리. 내 몸이 좋아해요. 착하고 바른 먹거리. 야! …’


대형마트 두부와 콩나물 코너에 가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중독적인 그 노래.

유아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야채 한 번 더 먹여 보겠다고 식탁에서 오버하며 따라 불렀을 바로 그 노래다. 꼬꼬마들은 엄마의 숱한 애원과 잔소리, 야채를 귀신같이 숨기는 갖은 노력 보다는, 이 노래 때문에 싫어하는 당근 한 조각, 콩 한톨이라도 더 먹게 된다. 피아노 치는 엄마로서 모르던 바는 아니었지만, 음악의 힘을 새삼 느끼는 경험이었다.


나는 장애엄마가 된 이후, 내 아이가 엄마의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 때문에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져서 본격적으로 장애이해/공감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 강의 대상 역시 유치원에서 초등 저학년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다. 그런데, 교사연수와 아이들을 위한 강의를 준비하다 보니,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양질의 장애공감 교육 컨텐츠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에게 방송을 통한 다양한 교육 컨텐츠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EBS의 애니메이션이나 유아 프로그램 등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 봐도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제대로 소개해 주는 컨텐츠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로보카폴리의 ‘같이 놀자 포크’라는 에피소드 하나와 ‘<봉구야 말해줘>에서 어느 시각장애인 도서관장님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하나가 지난 6년간 내가 찾아낸 전부였으니까. 그나마, <봉구야 말해줘>의 에피소드의 경우, 주변의 시각장애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불편하고 맞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을 만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장애관점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내 아이의 성장에 맞추어 내 장애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미국의 유명한 유아/어린이 프로그램인 <Sesame Street> 및 다양한 애니메이션 등을 찾아 보여주기도 하고, 강의를 위해 아이들의 연령에 맞추어 직접 만든 다양한 체험과 공감 모듈 등을 활용해 왔다.


특히, <Sesame Street>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줄리아나 위탁가정에서 살고 있는 칼리, 집 없이 생활하는 릴리 등, 미국 사회 속 소수자들의 입장과 상황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매우 잘 대변하고 있어, 유아 대상 강의나 유치원 교사연수 강의에 자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한국, 우리 아이들은 한국어를 사용하기에, 영어로 된 컨텐츠를 가공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끔은 아쉽기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요로 수어를 소개하고 싶어도, 대부분의 수어 노래 영상이 어른들에게 적합한 곡으로 제작되어 있어 활용이 어려웠다. 반면, 외국 자료들을 찾아보면 게임형식 등의 좀더 유아 친화적으로 재미있게 생산된 컨텐츠가 많았기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올해 봄 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열광하는 상어가족으로 수어 노래가 제작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칼럼 작성을 위해 혹시나 하고 조사해 보니, 드디어 누군가 수어 버전 상어가족을 유튜브에 올렸다.


많은 유아/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장애이해/공감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이렇듯 익숙하고 Universal하면서도 인권 감수성에 입각한 교육 컨텐츠들이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양질의 컨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마트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두부를 사며 ‘바른 먹거리 송’을 듣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야채 싫어하는 꼬꼬마들이 야채를 먹게 만드는 위력을 가진 저런 ‘장애공감 송’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노자가 따로 없을 것이다. 나는 창조와 창작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집에 가서 평소 내가 사용하는 프리젠테이션 엔딩 부분을 읽고 피아노 앞에 앉아 흥얼흥얼 멜로디를 붙이니, 15분 만에 ‘장애공감 송’이 뚝딱 완성되었다.


* 원작자 허가 및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영리 / 비영리적 사용을 금지합니다*


작곡원칙은 아래와 같았다.


캠페인 송의 기능과 목적에 맞게 짧고 중독성 있을 것.

누구나 배우고 부르기 쉽게 멜로디는 순차진행을 위주로 할 것.

가사는 인권 감수성에 입각하되, 장애를 직설법보다는 은유와 비유를 사용하여 쉽고 고급지게 표현할 것.


얼마 전, 교사연수 인강의 교수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아들 포함 4명의 예쁜 아이들과 스튜디오에서 편곡과 녹음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이 노래를 매개로 학교에서 만나는 장애친구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놓았고, 그 모습이 참 예뻤다. 내 아이가 녹음실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니, 장애엄마로서 만감이 교차하며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모쪼록, 이 작은 노래가 ‘바른 먹거리 송’ 처럼 우리 아이들이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건강한 장애관점 확립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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