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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Aug 20. 2021

내가 장애인이라고요?

"왠지 기분이 좀 나빠요" vs "저를 배려해 준다는 거잖아요"

금옥초에서 만났던 너무나도  에너지 넘치고 밝았던 5학년 3반 아이들을 생각하며...


지난 6월 하순, 이틀에 걸쳐 서울 금옥초등학교에서 장애공감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대상 학년은 교육을 했을 때 강사 입장에서 가장 재미도 있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흥미를 주면서 접근했을 때 소위 티키타카가 좀 되는 4, 5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둘쨋날 5학년 세 반과 연속으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아이들이 자신들의 사전 경험과 가치관 등에 따라 이렇게도 다른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하였고, 우리 어른들에게도 이러한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글로 옮겨 보기로 하였습니다.


금옥초 5학년 3반 강의 사진


이제 5학년 정도 되었으면 아이들은 사실 다양한 경로로 장애이해 수업을 제법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장애에는 이런 이런 장애가 있어요', '장애인은 이렇게 저렇게 배려하고 도와줘야 해요' 같은 뻔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의 정신은 유체 이탈하여 바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갑니다.


특히, 저희 아이는 이런 뻔한 장애이해 연극, 장애이해 영상 등을 통한 교육을 받고 온 날에는 자신이 집에서 엄마 아빠를ㄹ 통해 경험하는 장애의 실체와 이런 교육에서 대상화하는 장애가 너무 달라 그 사이의 간극에 다소 불편해 하며 어이없어 하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연령 대 아이들에게는 장애라는 테마를 그들의 일상이나 관심사(여행, 스포츠, 첨단 기술, 과학,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등)과 연관 지어 이야기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또한, 5학년 정도 되면 사회과목을 어느 정도 심도 있게 배웠기 때문에 우리 나라 내의 시각이 아닌 국제적인 시각에서 장애를 정의하고 다루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잘 받아들여지는 편입니다.


이 날 역시 강의가 한참 재미있어지고 몰입감이 높아지는 중반부에서 저는 장애의 국가 별 다양한 정의와 분류, 의학기술 발전 및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게 된 장애, 사람들의 인식 및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 편입되는 장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장애에 대해 다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논의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장애라는 개념은 시대와 장소, 여러 문화와 인식의 차이 등에 따라 지극히 상대적이며 가변적인 개념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참 이러한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북유럽의 일시적 장애에 개념에 대한 예시를 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특정 북유럽 국가들에서 다치거나 하여 잠시 깁스를 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 불편함을 갖게 되는 기간 동안 일시적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 받아 완치될 때까지 장애인주차구역 이용 등의 다양한 편의를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북유럽 일부 국가들에 이민을 가서 그 나라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이것은 언어장애와도 같은 불편을 야기하게 되지요? 이에 대해서도 일시적 장애인의 지위를 부여하여 적절한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5학년 세 학급 아이들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아이들의 반응은 학급 별로 제각각 다양했습니다.


첫 번째로 강의했던 학급에서는 아 그렇구나 하며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두 번째 반에서 이야기 하니, 몇몇 아이들에게서 아래와 같은 반응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장애인이 된다고요? 어쩐지 기분이 나빠요."

“맞아요. 좀 기분이 좋지 않아요.”


아마도 이 아이들의 반응이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 및 시선과 가장 잘 부합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강의를 진행했던 세 번째 학급 아이들의 일시적 장애 개념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물론, 위의 두 경우와 전혀 다른 신선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죠?

제가 위의 일시적 장애 개념을 설명하자마자 세 번째 학급 아이들 중 몇 명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와! 짱이에요. 완전 좋은데요?“

"그래요? 왜 좋을까요? 다른 반 친구들의 반응은 불편해 하기도 하고 여러분들과는 조금 많이 다르던데요?“

"그거 절 배려해 준다는 뜻이잖아요? 엄청 좋은데요?“


사실, 저도 이 아이들의 이토록 수용적이며 긍정적인 반응에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또래 아이들에게 같은 개념을 이야기했지만, 한 번도 장애에 대한 이 정도의 수용성과 긍정성을 보여준 친구들은 없었거든요. 물론, 피상적으로 와 저 나라는 참 복지가 잘 되어 있구나 이 정도의 반응은 있었을지 몰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세 번째 학급 아이들이 일반적인 대다수 아이들과는 달리 장애라는 개념에 대해 이렇듯 긍정적이며 수용적인 반응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우선, 이 아이들이 속한 학급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 밝고 자기표현 및 질문에 매우 관대한 교실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ㅣ들이 제가 수업 준비를 하는 쉬는 시간에 저를 보더니 선생님 진짜 장애인 맞아요? 어디가 장애에에요? 장애인 같지 않은데요 등등, 정말이지 장애라는 단어를 무슨 금기어 다루듯 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거침없이 내뱉고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무척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제가 여러 학교, 여러 학급에 들어가기 때문에 저는 일단 그 학급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태도나 담임 교사와의 상호 작용 스타일 등을 보면 아 이 학급은 어떤 분위기인지, 이 선생님은 어떤 가치관과 철학으로 아이들을 대하는지 어느 정도는 보이거든요.


아마도 학급 아이들의 기질적 특성과 담임 교사의 지지와 노력 등이 합쳐져서 이러한 액티브하고 밝은 학급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둘째, 신기하게도 이 학급 아이들은 여러 아이들이 장애인 가족과의 관계를 가지고 장애와 매우 가깝고도 일상적인 직접적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각 자신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장애나 사례가 나오면 여기 저기서 이런 소리들이 들려왔지요.

제가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나 보조기기들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도 제 모습을 보고도 대체 이 사람이 무슨 장애를 가졌다는 거야 하다가 제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벌써부터 "선생님, 저희 할머니가 시각장애인이셔서 저기 나오는 컴퓨터 화면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셔요.“라는 말이 들리더니,


미국 수어로 노래하는 게임으로 수어를 배우는 수업 내용이 나오자 또 다른 아이가 "선생님, 저희 할머니는 청각장애인이신데 미국에 살고 계세요.", 이러더군요.


또, 세사미 스트리트 속에서 자폐를 가진 줄리아라는 친구와의 생활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나오자 차분하게 한 아이는 "제 동생이 자폐라서 같은 학교 특수반에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하더라구요.


심지어, 초등학교 강의에서는 처음으로 장애인 접근성이라는 단어까지 제게 말하는 학생마저 나타나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좀 신기해서 장애인 접근성이라는 말은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으니 책에서 보았다고 하더군요.


이런 이야기가 제 강의 중에 지속적으로 나오자 저는 아이들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죠. '역시 선생님이 학급에 등장했을 때부터 여러분들이 너무 친근해서 남 같지 않더니만, 이 반에는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거나 장애와 가까운 친구들이 많군요.‘


다른 두 학급의 아이들과는 달리 이 학급 아이들은 장애를 좀 더 일상적이며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다루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보통 장애를 피상적이며 간접적으로 접하고 어른들과 미디어 등으로부터 부정적인 장애 관점을 체득하게 되는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달리 장애를 좀 더 중립적이며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지역의 여러 학교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아무래도 저 자신이 엄마인지라 모든 아이들이 제 아이같이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고 저에게도 에너지가 되는, 소위 끌리는 학급 아이들이 종종 있는데요.

이번 학기에는 충남 당진 대덕초등학교 1학년 2반 친구들에 이어 금옥초등학교 5학년 3반 친구들이 제게 큰 힘을 주고, 묵묵히 이 일을 해 오고 있는 동기와 의미를 잊지 않게 해 주는 매우 고맙고 기억에 남는 멋진 친구들이었답니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역시 우리 아이들이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서 서로 어울리며 건강하고 긍정적인 장애 관점을 갖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들이 먼저 건강하고 긍정적인 장애 관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을.


또한, 너무나도 멋진 장애 관점을 가지고 있어 저를 깜짝 놀라게 했던 금옥초등학교 5학년 3반 친구들과 같은 아이들이 좀 더 많아지기 위해서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비장애 친구들 간의 학교 및 지역 사회 기반의 직접적 교류와 일상적 관계 맺음이 자연스럽게 더 자주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곧 2학기가 시작되겠네요.코로나 상황이 점점 나빠져서 전면등교도 어려울 것 같고, 아이들을 만나기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만, 그럼에도 또 이렇게 예쁘고 멋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늘 그렇듯 저는 좀 더 열심히 재미있고 즐거운 강의를 준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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