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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규영 Aug 12. 2019

원고지냐 키보드냐

To key or not to key

 

글, 그리다 집필은 뜯어 쓰는 종이에 끄적인다.


   많이 고민해본 문제일 것이다. 글을 키보드로 바로 치느냐, 원고지에 적었다가 타이핑을 하느냐. 나도 고민해봤고. 썩 나쁜 고민도 아니다. 개인의 스타일을 정하는 거니까.

    연세 지긋하신 작가분들 중에는 글을 원고지로 쓰지 않으면 글에서 똥내가 난다는 사람이 종종 있다. 서술력을 기르기 위해 원고지, 손글씨로 훈련을 해야 좋다고 한다. 어쨌든 손이 뇌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뇌-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으니 반박은 못 하겠지만. 백일장을 준비하는 중학생이 아니고서야 뇌의 성장을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까! (게다가 키보드도 손을 쓴다) 단지 더 오래 걸리고, 손이 아프고, 보관도 힘들다는 게 다르다. 번거롭고.

    원고지 감성, 만년필 감성을 가져온다고 해서 엄청난 글을 쓸 수 있다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소설가 굿즈를 사는데 혈안이 되기도 한다. 부작용인 셈이다. 쓰려고 사는 게 아니라 보려고 사게 된다.

    그래서 키보드, 컴퓨터로 쓰는 게 더 좋은가? 꼭 그렇다고 말하기도 뭐하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 보관도 용이하고, 타이핑 과정이 없고, 맞춤법은 바로바로 고치고, 결과물(A4, 국배판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모르는 것도 찾으며 쓸 수 있다.

    현대의 작가라는 묘한 멋을 창출해내기도 한다. 멋은 개인 취향이니 별 수 없지만. 여하튼 최대의 단점이 있다면, 빠르다.

나는 모나미 만년필과 라미 사파리 만년필을 쓴다. 감성을 좀 흉내 내 봄.

    원고지에 대해, 컴퓨터에 대해 이리저리 끄적여뒀지만, 사실 두 방법론의 차이점은 하나다. 아날로그냐-디지털이냐. 아날로그라서 느리고, 번거롭고, 힘들다. 디지털이라서 편하고, 빠르다. 돈을 얼마나 쓰느냐, 뭐가 더 맞느냐는 개인의 차이다. 근데 그 '속도'라는 것이 작가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큼 중요하다.

    내 경우에는 써야 할 말이 줄줄 흘러나온다고 표현하면 좋을 만큼 '사고'의 속도가 빠른 편이다. 독백 대사를 적으면 우유부단하다고 느낄 만큼 잡스런 말이 많아지고, 템포가 빠르다. 때문에 그 속도에 맞춰서 키보드로 '치게' 되면 횡설수설하게 된다.

    나는 그 속도감 때문에 일부러 사고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있다. 손글씨가 그런 역할을 맡는다. 큰 틀을 보게 해 주고, 부사, 접속사 다시 보고, 문장 구조도 다시 본다. 손을 쉬게 하면서 내 글을 다시 읽는데, 처음과 중간을 다시 읽은 뒤의 '끝'은 조금 더 질서 정연하다. 아마 원고지를 선호하는 작가의 대부분은 이게 원인일 것이라 본다. 침착, 다시 보게 됨, 그런 것들. 타이핑하면서 또 보고.


    (아니면 한 문단을 꾸리는 체력/호흡이 원고지로 하면 딱 맞는 경우가 있겠다.)





    애초에 침착하고, 체력이나 호흡 같은 거에 굴하지 않는 강철멘탈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차분하게, 단어를 골라내며 적는 게 몸에 배어있고, 사고 속도가 느린 사람은 키보드가 편할 수 있다. 글쓰기에 피로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도 키보드가 좋겠다. 손글씨는 글을 쓰고, 타이핑으로 옮기는 과정이 있지만 컴퓨터는 그럴 필요가 없다. 육체피로가 많이 차이 나겠다.


    줄이자면, 원고지는 번거롭고 힘들지만, '머리야, 나대지 마.'라고 제약을 걸어주는 도구다. (별로 못 줄였는데?- 그냥 느리게 쓰도록 돕는다고 할까- 라는 독백을 적지 않도록 돕기도 하듯이.)

    키보드는 '사고의 속도'와 '글을 쓰는 속도'가 일치하거나 손이 더 빠르다. 머릿속이 횡설수설하지 않아서 그대로 옮겨 적어도 괜찮다면 탁월한 선택이다.


    (글의 90%는 퇴고에서 만들어진다지만, 미래의 내가 조금이라도 덜 피로하려면 초반부에 잘해두자.)


    마지막으로, 원고지 쓰는 법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신경 쓰지 말고 써라. 찾아보고 규격에 맞춰서 쓰면 좋기야 좋다. 그러나 원고지는 "내가 글을 얼마나 썼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글자 수만 확인할 수 있다면 똥 휴지에다 적든, 식탁에다 적든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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