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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규영 Jun 03. 2019

묘사 - 2

적절한 묘사

    기초적으로 묘사의 틀은 위 그림과 같다. 어떠한 낱말 내지 서술은 두 가지의 특성을 가지게 되는데, 표면적 성질과 그 외의 모든 성질인 비표면적 성질로 나눈다. 표면적 성질을 이용한 묘사는 다소 초보적이다. 낱말이 가진 이미지 그 자체를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데.


    A) 수박 같은 엉덩이

    B) 딸기코


    따위가 해당할 수 있다. 수박이 가진 크고 둥근 이미지를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한 이 묘사는 수박이 딱딱하고, 안에는 달콤한 과즙이 풍부하며, 모두가 나눠먹는다는 점에서 후덕할 수 있으며, 꽁지가 달려 있다는 세부적이거나 상징적인 요소는 딱히 신경 쓰지 않은 묘사다. '크다'라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 가져온 낱말이므로 그 이상의 기능은 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과장법을 사용해 상상하기 쉬운 이미지를 그려내는 데는 성공하는 것이다.

    B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볼록한 표면에 씨알(블랙헤드)이 촘촘히 박혀있는 모양이다. 이 또한 과일이 가진 긍정적인 면보다는 딸기의 표면만을 차용한 결과물이며, 이것이 내부적으로 상징을 할 겨를은 없다.1)


    그렇다면 '이외의 모든 성질'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표면'이라는 범주의 여집합이 될 텐데, 어떠한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내용이기에 '역'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가장 쉬운 것은 그 어휘가 가진 속성, 내면, 당연한 변화2) 따위가 쓰이지만, "인과적 쓸모"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게 요점이다. 우선은 이해하기 쉬운 것들부터 파헤쳐보자.


    어휘가 가진 속성이란 말도 너무 추상적이고 광범위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이는 내가 백과사전식으로 모든 요소를 나열할 수 없어서 생긴 말이니까. 이전에 썼던 '수박'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수박의 표면은 딱딱하고, 둥글고, 크다. 꽁지가 있고, 좁쌀여드름처럼 땅바닥에 콕콕 박혀 자라난다. 그 속성은 어떤가? 시원하고, 우람할 수 있고, 초록, 검정의 색 배열 때문에 청량할 수 있다. 내부는 과즙으로 가득하고, 곳곳에 뱉어내야 할 씨가 있으며, 빨갛다. 딱딱함 속에 달콤하고 부드러움이 있기도 하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쉽게 배부르다. 모두가 나눠 먹는다, 빨리 먹기는 힘들다.- 같은 제멋대로 식의 속성들이 튀어나온다. 저것들을 모두 사용할 수는 없다. 억지로 쥐어짜 낸 속성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훈련을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그 이유는 "인과적 쓸모"에서 언급할 수 있다.


    어휘의 내면은 속성과 거의 동일한 말이다. 생명체 내지 서술어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쓸 수 있겠는데, 이전에도 말했던 "쏜살같다"라는 말의 속성을 따져보자면, 직선 운동이며, 대상이 흐릿해야 할 것이며, 1초 이내의 즉발성, 단숨에 지나가는 서술이다. "고양이"라는 생명체의 내면을 들여다보자면,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귀엽고, 가끔 사나우며, 제멋대로이며, 그래도 주인을 필요로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주인 역시 그가 필요하며, 존재만으로 애교 넘친다.


    어휘가 가진 당연한 변화란, "그 단어라면 당연히 어떠하리라"라는 맥락의 특징이다. "모래먼지"는 흩어질 것이다. 눈은 내릴 것이며, 얼음은 녹는다. 고드름은 물방울을 톡톡 떨어뜨릴 것이다. 작은 쪽배는 출렁거릴 것이다. 개미는 부지런할 것이며, 과일과 시체, 고기는 썩는다. 식물은 시든다. 원숭이는 까분다


    이쯤에서 작가들은 눈치를 채겠지만,  이 설명에서 빠진 것이 있으니, "이걸 왜 해야 하느냐"이다.  "이 설명은 무언가 이가 빠져있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답하자면, 우리는 '잘 쓰기 위해' 묘사를 공부하는 중이며, 잘 쓴 글이란 다른 게 아니라 '주제'를 향한 글이다. 묘사로 주제를 내포한다. 즉, 완벽히 현실을 옮겨놓기만 하면 글은 풍부하지 못하고 맛이 없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묘사를 차용하게 되며, 묘사는 언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3) 그러나 인간의 언어 해석 본능상, 묘사를 읽으며 이미지를 상상하는 맛에 빠지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더욱 풍부하고 아름다워지며, 그것이 주제를 향하며 그 묘사는 완성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과적 쓸모"에 대해 배워야 마땅하다.


    우선 드러내고 싶은 주제를 정하자. 그 주제로 묘사를 해보자. '첫사랑이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구나'를 주제로 해보자. 주제만 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제를 실행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나'로 하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찌질하고, 연애 초보이고, 어느 정도 못생겼고, 키도 작고 내성적이라고 하자. 첫사랑은 어떤가? 똑같이 연애를 처음 하는 아이였지만, 배려심 넘치고 착하며, '나'의 실수들을 많이 넘어가 준 인물이라고 하자. 긴 머리를 가졌다고 하자. (정말로 무작위로 지껄이는 중이다. 나는.)  바지보다는 치마를 좋아하고, 초코케이크를 좋아하며, 영화는 독립영화를 좋아하고, 새것보단 헌 것을 좋아하며, 작은 것에도 크게 기뻐할 줄 아는 친구라고 하자. 토끼상에 덧니는 그리 드러나진 않았다.

    왜 헤어지게 되었나? 첫사랑이니, 그리 큰 이유는 아니어도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공의 실수인 편이 좋겠다. 청춘 때에 가장 많이 겪는 트러블인, 성관계 문제로 가보자. 헤어지기 가장 쉽고, 남자의 실수가 유발되기 가장 쉽다. '나'는 너무나도 많이 관계를 요구했고, 점점 매너의 문제로 불거졌으며, 첫사랑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것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여자는, (이름도 정하자, 음-, 메리?) 메리는, (아니, 한국 이름이 좋겠다. '나'가 정이 남아있으니까 유정이로 하자.) 유정은,  도가 넘어섰다고 판단해서 화를 내려했지만, 그녀의 배려심은 그것을 막아섰다. 그녀는 화를 꾹꾹 참게 되었고, 그것은 '나'가 틈틈이 놓쳐버린 힌트들이 되었을 것이다.

    묘사하려는 게 무슨 장면인가? 10년 정도가 지난 '나'는, 취준생이 되어 자소서를 쓰다가 지난 포트폴리오를 뒤적거리게 된다. 이내 미처 정리 못한 료들을 발견했고, 거기서 '유정'의 흔적을 찾게 된다. 대학시절의 모든 자료를 모은 앨범이었는데, 그중에는 유정과 함께 찍은 것이 남아있었다고 하자.


    긴 밑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이걸 묘사할 때마다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묘사를 하기 위해 이미지가 필요하고, 그 이미지란 장면의 일부이며, 장면이란 이야기의 티끌이자,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 그리하여 묘사를 가르치는 데 있어 이러한 밑 작업은 필수가 아닐 수가 없다.


    우연히 발견한 전 여자 친구의 흔적이란, 주인공의 마음을 갑자기 뒤흔들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될 필요가 없다.(=흔들림은 곧 '그리움'이다. 이는 주인공의 내면이 곧 주제에 근접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나'는 앨범을 펼치면서 마음에 동요가 일어야 하고, 그 변화는 갑작스레 일어나 꽤 길게 유지될 것이다. 마음이 무엇처럼 뒤흔들리는 게 좋을까? 갑작스레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꽤 오랜 시간 지속되는 것이 뭘까. 지진, 푸딩, 진자, 괘종시계 등 비슷한 '표면'이미지를 차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간 떨어질 뻔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마음의 급격한 변화란 대체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 후 그 여진이 남아있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다. (지진이라는 말을 벌써 써버려서 미안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100만큼의 충격을 받고 난 뒤 10만큼의 고통이 지속되는 현상에 대하여 말하지만, 10이 100처럼 느껴지는 것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불, 바늘, 쥐어짬, 염증, 멍, 두통, 손톱 뽑혀나감, 소중한 사람을 잃음, 고문 등 차용할 것들이 생겨났다.


    예상되는 문장이란, "앨범을 열자 그만 유정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활짝 웃는 그녀는 내게 안겨 있었고, 나는 ____듯했다." 정도가 될 거다. 여기에 '비표면적 이미지'를 사용해 점수를 매겨보자. 마음의 고통이란 내면에서 시작해서 표면으로 퍼져나가는 작용이니까, 손톱, 쥐어짬, 바늘, 고문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탈락한다. '불'이라는 말도 내면에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자칫 다른 의미로 해석될 경향이 있다. 60점짜리 재료쯤 될 수 있다. '염증'은 20점 정도에 머무르는데, 신경 쓰지 않았던 앨범을 확인해서 불거진 것이니 거의 다른 이미지를 가졌다 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잃어버린 여인'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급격한 변화'를 말하는 중이다. '멍'은 나름 괜찮은 느낌이다. 멍은 평소에 신경 쓰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지만, 한 번 짓눌리게 되면 고통이 느껴지니까. 50점 정도다. 아쉽지만 퍼져나가는 느낌은 없다. 두통은 괜찮을 것 같다. 머리가 아프면 온 몸의 회로가 비틀어져 꼬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의욕은 줄고, 허탈해지며,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너무 지속적이기만 한 터라 '급격한' 변화에는 좀 맞지 않는다. 50점 정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나마 근접하다고 평가한 '불'을 사용해보자.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묘사들을 주로 나열해보면,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띵해졌다." 같은 게 있는데, 이런 말은 병원에서나 사용하길 빈다. (이 세 가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을 찾을 수는 있을까.)


    "앨범을 열자 그만 유정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활짝 웃는 그녀는 내게 안겨 있었고, 나는 가슴에 불이 붙은 듯했다."


    역시나, 이건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야기 흐름상 문제는 없다마는, 이미지가 나름 괜찮다. 확 불이 붙어- 달아올라서 멈출 수 없고, 자제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된다. 70점짜리 묘사. 나는 여기서 다르게 해석되는 느낌을 지우고 싶다.


    "나는 쓸데없는 그리움에 가슴에 불이 붙은 듯했다."


    뭔가 추가하니까 목적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문장이 글러먹었다. "그리움이 다가와", "그리움이 찾아와", "그리움으로" 정도로 바꾼다고 해도 너무 길다. 문장이 길면 묘사는 힘을 잃는다.**(중요하다.)


    "내 가슴은 쓸데없는 그리움으로 불이 붙었다."


"쓸데없는"이라는 말은 들어가 주는 것이 맞다. 그리워해 봤자 의미가 없으니까. 주어를 앞으로 빼고, 서술어를 단정 짓는 말로 바꾸니까 읽기 편안해졌다. 이 정도면 차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취향에 따라 조금 더 바꾸자면,


    "내 가슴에 쓸데없는 그리움이 달아올랐다."


    아까 '불이 붙다'라는 말에 있던 뉘앙스 중, '달아올라 멈출 수 없다'라는 이미지를 데려왔다. 그렇다면 이런 묘사들을 모조리 불러와보자.


    A) 내 가슴은 쓸데없는 그리움으로 불이 붙었다.

    B) 내 가슴에 쓸데없는 그리움이 달아올랐다.

    C) 내 가슴에 그리움이 타올랐다.

    D) 내 가슴은 쓸데없는 그리움으로 달아올랐다.


    뭐 문장과 비슷한 단어, 그에 맞는 서술어를 바꿔가면서 Z까지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작가, 당신의 취향에 맞는 선에서 채택하면 된다. 나는 A를 채택하고자 한다.


    "앨범을 열자 그만 유정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활짝 웃는 그녀는 내게 안겨 있었고, 내 가슴은 쓸데없는 그리움으로 불이 붙었다."


    까먹은 게 있다. 유정을 발견하는 행위가 '우연성'이 짙으므로, 고의성을 많이 배제하는 게 좋다.


    "앨범을 열자 그만 유정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활짝 웃는 그녀는 내게 안겨 있었고, 내 가슴은 쓸데없는 그리움으로 불이 붙어버렸다."


    가볍게 예시를 들었지만, '퍼져나간다'라는 표면적 이미지와, '멈출 수 없다', '제어할 수 없다' 같은 것, 심지어는 '땔감이 있기에 불이 붙을 수 있다'라는 개연성을 이어주는 이미지까지 주며, '불'이 고통을 준다는 것까지 해서 여러 비표면적 이미지를 끌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대충 쓰지 마라' 안에 포함되긴 하는데, 묘사의 기초를 말하자면 대강 이런 식이다. 표면적 이미지가 비슷한 것을 몽땅 끌어다가, 명사를 바꿔보고, 그에 맞는 서술부(동사/형용사)를 채택해서 바꿔보고, 명사 지워보고, 서술부 바꿔보고, 비 표면적 이미지가 가장 근접한 것으로 채택해서 다시 바꿔보고, 여러 예문을 만들어서 데스매치를 시켜버리고, 최종 승자를 채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묘사가 탄탄해질 수밖에 없다. 초보 글쟁이들이 하는 모든 변명은, "이런 묘사를 하는 건 참 천재인 것 같다."라는 말인데, 아니, 그냥 아는 단어 총동원시켜놓고 월드컵을 진행한 결과물일 뿐이다. 그 기준이 '표면'과 '비 표면'일뿐이지.


다음 장에는 이 과정을 조금 더 도식화해서 보기 좋게 바꿔 이해를 돕도록 하겠다. 어려운 내용이라 점점 쉽게 이야기해볼 테니, 파이팅!






1) 외부적으로 상징을 넣을 수는 있다. 딸기코를 가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먼 훗날 자식의 코가 딸기코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미묘한 씁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은 외부적인 상징을 담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상징성이 있다는 것은 이전에 설명한 '보편적인 상징'과는 거리가 멀다. 이 또한 [상징] 파트에서 다룰 거지만,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가 내부적인 특징을 잘 살린 축에 속한다. 쉽게 바스러지고, 모든 것을 태웠으며, 버려진, 쓸모가 제한된, 그런 추상적인 이미지를 주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을 내부적 상징이라 한다. 그 낱말의 세밀한 속성이 곧 상징이 되는 것이다.


2) 해당 낱말이 당연히 할 것. 사시나무는 당연히 떨 것이다. 새는 자유롭게 날아오를 것이다. 시체는 썩고.


3) 딸기코는 코에 딸기가 달려있는 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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