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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규영 May 26. 2019

묘사 - 1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여태 우리가 언급한 것들은 비교적 비-과학적인 얘기였다. 오묘한 서술로 만사를 포함하고 은유할 수 있는 언사를 썼지만, 서론에서도 적어뒀듯 '세련된', '심미적' 같은 단어는 애매하다. 학습서에 등장할 만한 단어가 아니라는 말이고, 나온대도 방법으로 나올 말은 아니다.

    1장과 2장을 읽으면서 많이 답답했을 그대들에겐 미안하다. 그러나 분명히 하고 갈 것은 있는데, 문학은 예술 활동이다 보니 당신의 정신개조를 담당하는 데에서는 아무리 나라도 모호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대충 쓰지 마라.'라는 말이 그렇다. 그 점은 자가 반박이 되어 미안하다. 그러나 필수적인 말이었다. 대충 쓰진 않으니까. 이제 실무를 맡아보자.

    우리가 문장으로 적을 독백들의 80%는, 과장하자면 거의 모두는 묘사다. '철수가 학교에 간다.'도 묘사고, '빨간 딸기'도 묘사고, '두루마리 휴지'도 묘사다. 당신의 기존 상식과는 다를 수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대화체 서술도 일종의 묘사다. 내 문체와 서술방식으로 인해 당신은 은연중에 '대화하는 장면'내지 '상황'을 무대로 이 책을 읽고 있고, 나는 그걸 노리고 쓰고 있다. 묘사란, '나타냄'이다. 혹은 '보여줌'이자, '드러냄'이다. 무엇을? '정보'를. 이제 우리는 묘사의 세계로 간다.


    이번 <묘사>라는 대단원은 글을 못 쓰든 잘 쓰든 습득에 큰 문제가 없다. 왜냐면 사전 지식이 전혀 필요 없기 때문인데, 묘사법을 정갈하게 이론으로 배우지 않은 내가 새로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내 이론은 다른 작법서에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근데 확실한 건, 그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책에서 묘사를 말하기로는, 순수하게 현상학적, 쉽게 말하면 작품이 있고 나서 그걸 이론가들이 분석해서 나온 것이다. 직접 묘사니, 간접 묘사니, 은유니, 직유니 하는 것들. 그것들은 나도 사용한다. 남을 가르칠 때만 쓴다. "여기선 은유를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고. 근데 우리 작가님들, 당신들은 글 쓸 때 "여긴 은유야!"하고 쓰나? 결과물을 분석해서 나온 이론은 작가에게 큰 쓸모가 되지 않는다. 퇴고할 때도 1년에 한 번 쓰면 다행이다. 왤까? 그건 '묘사'를 하려는 본능 자체가 '잘 쓰려는 경향'에 있기 때문이지 묘사 자체가 기술이고, 우리가 그 기술들을 기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작가 내면의 변화와 착안 방식에 근거한 설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묘사의 첫걸음! 어휘의 맛

    모든 어휘에는 출신 성분과 속성, 성질 따위가 있다. '보편적인 상징'도 있는데, 그건 다루지 않는다. '물'이 죽음, 생명, 활기 따위를 상징한다는 미신적인 이야기인데, 탈레스부터 이어온 전통이니까 문학적으로 수용하든 말든 당신의 선택일 따름이다.

    어휘의 맛이란, 가장 기초적으로는 언어학적인 맛이 있다. 된소리가 사용된 강하고 거센 말이라면 읽을 때 끊어질 것이고, 나름의 강조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어감이 색다르게 적용된다. 아주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니지만, 문장이 자연스럽게 읽혀야만 하는 부분(빠른 전개, 속도감 상승)에는 조금 유념할 부분이다.


    1)"그녀는 깜빡 잊은 것이 있다" vs "그녀는 잊은 것이 있다."

    2)"그게 그리 싫어?" vs "그것이 그렇게 싫어?"


    1) 문장 사이에 "깜빡"을 넣어 "그녀"를 조금 귀엽게 만들었다. 된소리로 된 형용은 약간의 경박성을 지니고 있다. 2) 후자는 문어체에 가깝거나 노인의 대사에 가깝다.


    그다음으로는 명사나 동사가 가진 성질이 '맛'이라 할 수 있다. 주어, 목적어에 들어가는 명사나 서술부에 있는 동사, 형용사 자체가 가진 성질을 알아야 예쁜 형용이 가능하다. 쉽게, '명사'와 '동사'로 줄여서 말하겠다.


    1) 명사를 잘못 해석한 것: "(저 먼 곳의 산불의) 불타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아주 소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김인숙

    2) 동사를 잘못 해석한 것: "그는 미로를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1) 불타는 대상이 몇십 킬로미터 밖에서 난 '산불'이다. 산불은 해당 장소에 가서 들어도 '터진다'라는 말을 쓸 정도가 아니다. '터진다' 역시 일회성, 혹은 갑작스레 등장하는 효과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은연중에 발견한 산불은 터지지 않는다. 2) '쏜살'은 쏜 화살이다. 주로 직선 운동을 설명하거나 대상의 움직임이 화자에게는 '점멸' 수준으로 재빠를 때 사용하는 것이다. 눈으로 좇았을 때 모습이 흐릿할 정도로 빠른 것이다. 교실 창문으로, 복도를 뛰어다니는 아이를 볼 때는 쏜살같지만, 학교 옥상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는데 우사인 볼트가 100m 세계 신기록을 세워도 쏜살이 아니다. "미로"라는 어휘를 직접 언급해서 전체적인 형상을 제시했으니, 그 속의 알맹이는 빛의 속도가 아닌 이상 쏜살이 아니다.


    3) 명사의 성질을 응용한 묘사: "그녀의 입술은 앵두 같다."

    4) 동사의 성질을 응용한 묘사: "파도가 부서졌다."


    3) 앵두가 가진 생동감, 붉음, 탱글탱글한 표면을 입술에 적용시킨 묘사다. 4) 파도는 본체가 없는 파동임에도 불구한데도 입자가 흩어지는 모양이 유리 같은 고체가 부서지는 것과 같다. '부서졌다'라고 표현하기에 이미지가 비슷하다. 일회성이고, 어질러진다는 느낌이 맛을 잘 표현한 예시다. 관용적인 표현들이 대부분 깔끔한 묘사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단어의 맛, 문장 자체의, 문법의, 시제의, 문장 순서의 맛도 모두 우리의 표현욕을 채워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졸음이 쏟아지는 작가님이 있을 테다. 그래, 이것 또한 결과를 분석한 것에 불과하다, 이번 소단원에서는 내 묘사는 다른 학자들의 묘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짚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하나하나 예를 들어주며 방법을 도출할까? 그건 쉽지만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묘사의 원리를 말하고자 한다.

    다음 장부터 우리는 '이미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 단순 '잘 쓰고 싶은 욕구'만 있으면 된다.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어떤 묘사도 도출해낼 수 있다. 마법의 원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단원은 '묘사'의 서론에 해당하는데, 그래도 알아갔으면 좋겠는 것은, 어휘에는 반드시 어떠한 뉘앙스, 성질, 성격, 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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