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몰라서 더 도전적이고 희망찼던 순간으로
백수인 나를 표현하려면 직업이 아닌 자기소개서 스펙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젠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아니니 명문대 졸, 학점 4.0이상, 오픽 AL 같은 짜잘한 스펙들로 구질구질하게 나를 표현한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졸업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OO대학교 합격을 축하합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합격자 조회를 눌렀을 때, 합격했다는 문구가 반겨줬던 그 날이 기억난다. 나는 그동안의 노력이 생각나 눈물을 흘렸고, 엄마아빠는 날 부둥켜안고 오랜만에 듣는 들뜬 목소리로 축하해줬다. "장하다 우리 딸, 이제 고생은 끝났어!"
그 땐, 명문대에 입학만 하면 뭐든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대학교 입학은 고생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대학교 학벌이 밥 먹여줄거라는 생각은 우리 부모님 시대에나 가능했던 얘기였다. IMF 이후 최악의 구인배율(*1999년 구인배율 0.23, 2025년 구인배율 0.28)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고학벌이 인생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한 직무당 한 명만 뽑는 취업난 속에서 뽑히려면 자신만의 차별화된 무언가를 무기로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학교 시절의 나는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고생 끝에 들어온 대학인만큼 학벌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느정도 책임져줄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4년을 보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한건 아니었다. 몇 개의 대외활동과 봉사활동, 교환학생, 우등 졸업까지. 참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주어진 것에만 최선을 다한 것이 문제였다. 그 시간 속에서 난 내가 무얼 진정으로 진정으로 하고 싶고, 그걸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깊이 있게 고민하고 경험하지 못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딱 한 번만 돌아갈 수 있다면, 난 스무살로 돌아가 내 인생을 다시 살 것이다.
내 처지를 바꾸는 데 아무런 소용 없는 비겁한 변명이지만 대학교 시절, 집안 사정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건설적인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그 땐 하루하루가 벅찼고 살기가 버거웠다. 내 인생 중반, 후반, 앞으로의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계획이 없었고 그래서 미래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한 번도 나의 진로로 생각해본 적 없었던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야속하게도 불경기가 심화되어 내가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부터 채용시장이 죽어갔다. 인사 직무로 한 시즌에 60개가 나오던 대기업 공고가 이젠 중견기업을 합해도 30개가 채 나오지 않았다.
인사 직무로 지원하는 사람은 한 공고에 기본 300명이 넘는데, 자리는 하나뿐인 극한의 상황.
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누르며 인턴 생활과 정규직 취업 준비를 병행했고, 그렇게 1년간의 시간이 흐른 후 운 좋게 어느 대기업의 인사 직무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것 역시 해방이 아닌 족쇠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