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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림 May 31. 2023

[나의 응급실 이야기] 짜증나는 보호자.

지레짐작하지 말라.

 예수께서 산 위에 올라 앉으시고는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




 전자의무기록에서 환자의 신상 정보를 조회하면,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여느 신원 증명 서류에도 있을 법한 내용 외에도, ‘리마인더’라고 적힌 별도 슬롯이 있다. 이것은 이전에 환자를 진료한 적 있는 의료진이, 다음에 다른 의료진이 그 환자를 진료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진료 외적인 참고사항을 적어 놓는 곳이다. 예를 들면, 치매에 걸린 90세 노인이 스스로를 60세라고 알고 있다던가, 환자는 생물학적 자식이 아닌 양아들이지만 보호자를 친부모로 알고 있다는 것 등이다.


 예시로 든 사례들처럼, 리마인더에 적힌 정보들은 매우 민감한 내용인 경우가 많다. 의사나 간호사가 그런 개인의 민감한 신상 정보를 알아서 뭐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런 정보를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은 의료진이 환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꽤 중요하다. 가령 예시로 든 사례의 90세 노인과 면담을 하면서 기분 좋은 말을 해드린답시고 자기도 모르게 “더 젊은 분들도 지팡이 짚고 다니시는데 어머니는 정말 정정하시네요.”라고 했다고 가정해 보자. 환자는 자신이 60세라고 알고 있으니 의사가 자신을 놀리려는 것인가 하며 언짢아할 것이고, 그의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하여 사실은 90세라는 것을 굳이 알리지 않으려 했던 보호자 역시 매우 난처해할 것이다.


 리마인더에는 그런 민감한 개인정보 외에도, 직원 본인 및 다른 병원 직원들의 안전과 정신 건강을 위해 참고해야 할 사항들도 적힌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상대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종종 만난다. 폭력적으로 혹은 제멋대로 구는 환자를 상대해야 할 일이 간혹 있다. 그런 환자를 상대하느라 속앓이를 한 직원은, 다음에 그 환자를 상대할 직원더러 응대에 주의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리마인더 기록을 남겨 둔다.


 상대하기 어려운 환자를 만나는 일로 치면, 모르긴 몰라도 응급실이 제일 심할 것이다. 대기실에서 음식을 먹거나 응급 환자용 침대를 무단 점거하는 등 응급실의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걸핏하면 화를 내고 손찌검까지 하려 드는 등 폭력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실제로 허구한 날 폭음을 하고 응급실에 와서는 행패를 부리는 골칫덩이 환자도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의 리마인더에는 ‘성희롱 자주 함.’, ‘얼굴에 침 뱉음.’ 따위의 그가 저지른 만행의 기록들이 여럿 적혀 있었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병원 의료진들끼리는 그런 환자들을 ‘짱돌’이라고 불렀다. 리마인더에 기록을 적는 행위는, 그런 짱돌 환자들을 응대하는 데에 있어 주의하여 안전과 정신 건강을 챙기려는 직원들의 자기 보호 수단이다. 나 역시 진료실에 앉아서 환자를 불러들이기 전에 리마인더에 적힌 내용이 있으면 한 번 읽어보곤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인지, 리마인더에 무슨무슨 만행을 저지른 적이 있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면, 그 사람은 정말 한결같이 나에게도 그런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는 그 기록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소아응급실 주치의로 근무하는 날이었다. 아침이었다. 보통 아침의 소아응급실은 한산하다. 아이들이 대개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월급루팡의 여유를 만끽하던 중, 초등학교 고학년 내지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원했다. 환아가 호소하는 증상은 두통이었다. 환아는 보호자인 엄마와 함께였는데, 보호자는 매우 초췌해 보였다. 그는 초조한 듯이 입술을 물어뜯었고, 손으로는 쉴 새 없이 핸드폰 케이스를 벗겼다 끼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눈에 만만치 않은 사람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환아의 신상정보 하단의 리마인더를 열어보니 혹시나가 역시나. 그 엄마 보호자에 대한 경고가 한가득이었다.


‘엄마 보호자 짜증 엄청 심함.’

‘똑같은 설명 5번 넘게 해 줘도 이해 못 하고 다시 물어봄.’

‘무조건 원하는 대로 해야 직성 풀리는 분.’


 짱돌이었다. 제멋대로 구는 짱돌 보호자를 상대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나는 이 평온한 아침부터 짱돌이 웬 말인가 싶었지만,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긴장한 기색을 숨긴 채 환아를 면담했다. 환아에게 응급실에 오게 된 경위를 물으니, 아이는 어제 한숨도 자지 못하다가 아침이 다 되어서야 겨우 새우잠을 잤고, 두 어 시간만에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났는데 그때부터 두통이 생겼다고 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은 환아가 머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하자, 깜짝 놀란 보호자가 학교에 병가를 내고 곧장 응급실에 온 것이었다.


 유난이다 싶었다. 건강한 어린이가, 잠을 잘 자지 못한 다음 날 아침에, 이마와 한쪽 눈을 짓누르는 듯한 욱신욱신한 통증을 호소하는 상황.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팔이나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등의 신경 증상도 없었고, 의식과 지남력도 멀쩡했다. 머리가 아픈 원인은 뻔히 편두통일 것이었다. 물론 100%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수면 부족 때문에 편두통이 유발된 것이리라. 뭘 하다가 잠을 못 잔 것인지는 차마 묻지 않았지만, 그 또래 남학생이면 부모 몰래 밤새 컴퓨터 게임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애초에 정말 머리가 아픈 것 맞는지도 의문스러웠다. 그저 학교에 가기 싫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아이의 천진한 얼굴이 문득 의뭉스러워 보였다.


 보호자는 연신 핸드폰 케이스를 벗겼다 끼우기를 반복하면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 달라고 내게 주문했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뇌 MRI 검사를 희망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증상으로 뇌 MRI까지 찍는 것은 과도한 검사일 수 있다고 주의를 주면서도, 뇌출혈이나 모야모야 병과 같은 중한 병이 아니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고,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면 뇌 MRI까지도 고려해 보겠노라 말씀드렸다. 원하는 답변을 얻은 보호자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환아가 대기실에서 진통제를 맞으며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이전 의무기록들을 살펴보았다. 과연 환아의 엄마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는 복통과 팔꿈치 통증에서부터 등이 굽은 자세나 다리를 떠는 습관에 이르기까지 환아가 조금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도 병원에부터 데려왔고, 응급실이나 소아과, 정형외과, 정신과 외래 등을 전전하면서 온갖 검사를 받게 한 듯했다. 나보다 앞서 이 환아를 진료했던 사람들은, 과도한 검사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며 모든 검사를 다 해 달라는 보호자의 요청을 거절했을 것이고, 그게 마음이 들지 않았을 보호자는 막무가내로 검사를 하게 해 달라며 의료진과 싸웠을 것이었다.


 의무기록 검토를 마친 나는 반쯤, 아니 99%쯤 확신했다. 이번에도 검사 결과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었다. 보호자가 별 것 아닌 증상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혈액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동네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과 유사한 성분의 진통제 주사 하나를 맞은 후, 환아는 두통 또한 씻은 듯이 나았다고 얘기했다.


 이쯤 되면 환아가 아니라 보호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상황이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아동학대로 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나는 환아와 보호자를 진료실로 불러 혈액 검사에 이상이 없고 증상도 좋아졌으니, 괜히 수십만 원씩 들여가며 오늘 당장 검사를 하기보다는, 영상 장비를 갖춘 동네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으시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설명드렸다. 그러자 보호자는, “아까는 찍어준다고 해 놓고 왜 얘기가 달라지냐.”며 격분했다. 나는 그런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MRI를 진행하기로 했다. 뇌 MRI 정도야 환아에게 별다른 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쨌거나 리마인더에 왜 그런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다행히 검사실에 여유가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MRI를 찍을 수 있었다. 평일 아침 정규 시간이었기에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영상 판독 소견 또한 곧바로 들어왔다. 결과는 예상대로 정상이었다. 나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검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환아와 보호자를 진료실로 호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보호자에게 건강염려증이 의심된다는 점까지도 분명히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들은 보호자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정상’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난데없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말 뇌종양 없는 것 맞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 갑작스러운 반응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럽게 울 일이며, 갑자기 웬 뇌종양? 나는 뇌종양 같은 건 없으니 안심하시라고 답변드렸고, 그러자 그는 조금 전보다 더욱 큰 소리로 울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고, 보다 못한 환아까지 나서서 보호자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하라고 말한 후에야 울음을 그쳤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보호자에게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라고 형식적인 위로를 건넸다. 그는 이제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과민 반응을 했는지 설명하려 했고, 나는 도대체 어떤 대단한 사연이길래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었는지 듣기로 했다. 그러면서 정신병의 일종인 건강염려증이 의심되는 환자의 말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나의 경계심은 단박에 무너져 내렸다. 그의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며칠 전 그의 첫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4년 전, 환아의 형이자 그 보호자의 첫째 아들이었던 아이가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정상적인’ 보호자였던 그는, 별 일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는 타이레놀을 먹어 보자며 약국에서 약을 사 왔다. 첫째 아들은 약을 먹고는 두통이 훨씬 나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두통은 매일매일 계속되어 약을 먹으면 가라앉고 약 기운이 빠지면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두통이 나을 기미가 없자 그는 아들을 데리고 소아과 의원을 찾았는데, 진찰 결과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챈 소아과 의사는 큰 병원 방문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아과 의사의 권유를 받아 오게 된 대학병원 소아과 외래에서 아이는 Malignant glioma 곧, 뇌종양의 일종인 악성 뇌교종을 진단받았다. 기대 여명이 2년이 채 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뇌종양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 점차로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얼마 전에는 의식을 잃었고, 식물인간이 된 채 소아중환자실에 누워 지내던 중 며칠 전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는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으로 최근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 피로 때문에 예민해져 있던 것이라며 나와 다른 의료진들에게 무례하게 군 것을 사과했다. 그의 하나 남은 자식인 둘째 아들도 형을 떠나보낸 슬픔으로 뒤척이느라 잘 자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결코 게임 따위로 밤을 지새운 것이 아니었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지냈으니 편두통이 생겨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형이 두통을 겪고는 그렇게 무서운 병을 진단받았으니, 자신에게 두통이 시작되었을 때 그 어린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허망하게 첫째를 떠나보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이제는 둘째 아들이 두통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글을 읽은 분들은 내가 리마인더 몇 줄과 단편적인 첫인상만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상황을 지레짐작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셨으리라 생각한다. 이 일은 나 스스로도 과거의 나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는 안 됐다.


 선입견이라는 것은 정말 무섭다. 우리는 가끔 너무 쉽게 타인의 상황과 입장을 판단해 버리곤 한다. 그게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면 더욱 쉬이 그렇게 한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내비치는 모든 언행을 그 선입견에 맞춰 해석해 버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은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슬픈 것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상황이 어렵고 그로 인해 마음이 무너져 있다고 해서, 의료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의사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필요치 않은 검사를 수도 없이 받게 만든 것 또한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사정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속사정을 알고 나면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음을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그렇게 짜증을 냈던 이유를, 똑같은 설명을 몇 번씩 해줘도 되물었던 이유를, 무조건 원하는 대로 해야 했던 이유를,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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