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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림 Jun 07. 2023

[나의 응급실 이야기] OOO아기.

너희들의 첫 호흡이 누군가의 기쁨이기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운 일이며, 축복받아 마땅하다. 요즘같이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이 적은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는 첨단 문명을 누리게 된 요즘 세상에서도, 여전히 그렇게 응당 받아야 할 축복을 받지 못하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응급실로 구급차 하나가 밀고 들어왔다. 밀고 들어온다는 표현은, 구급차가 사전 연락 없이 무작정 급히 온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구급대원들이 데리고 온 환자는 병원 근처 낙후된 동네에 사는 젊은 여성으로, 곧 아기가 나올 것 같다며 구급대를 부른 상황이었다. 환자는 부풀어 오른 배를 감싸 쥐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서둘러 침상으로 옮긴 후 의무기록을 열어 보니 우리 병원에 처음 온 환자 즉, ‘쌩신(생짜 신규 환자)’이었다. 환자에게 어느 산부인과를 다녔냐 물어보니 산부인과는 고사하고 병원 자체를 다닌 적이 없다고 했다. 자기 임신 주수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함께 온 보호자도 없었다. 누구 올 수 있는 사람 없냐고 물어보니 아무도 없다고 답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결혼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분만은 보통 응급의학과 의사의 일이 아니다. 분만과 관련된 문제를 호소하는 환자는 구급대에서 어련히 알아서 산부인과가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고, 산부인과 의료진에게 사전 연락까지 돌린다. 사전 연락 없이 그렇게 밀고 들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산부인과 당직 의사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했다. 산부인과 의사 역시 당황스러워하면서도 곧장 내려오겠노라 답했다. 그가 다급하게 움직이며 내는 소음이 수화기 너머로 끼쳐 왔다.


 나는 환자의 활력 징후를 살피며 산부인과 의사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이런 환자는 그야말로 응급실을 ‘거쳐만 가는’ 환자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를 데리고 분만실로 올라가기만 하면 내 손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전화를 마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환자가 목청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더니 아기가 이미 나온 것 같다며 의사를 찾았다. 나는 그냥 진통이 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환자의 회음부를 진찰했다. 그런데 환자가 옳았다. 이미 양막이 터져서 침대 시트가 양수로 흥건한 것은 물론, 아기의 정수리 또한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산부인과 의사를 기다릴 수 없었다. 당장 분만을 마저 해야 했다. 이미 크라우닝(Crowning, 머리 출현)이 된 이상, 나머지 과정은 삽시간에 이루어질 것이었다. 설령 분만장으로 이동하더라도 다리 사이에 아기의 머리가 빠져나온 채로는 어차피 분만 전용 침대로 옮기지도 못한다. 환자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직접 아기를 받기로 했다. 대뇌 한 구석, 장기 기억 창고의 가장 깊은 곳에 (영영 쓸 일이 없을 줄로 알고) 저장해 둔 학생 시절 배운 것들, 정상 질식 분만 순서, 어깨가 나오지 않을 때 해야 하는 술기, 아기가 나오고 나면 해야 할 것들이 동시에 떠오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교수님을 호출했다. 인턴을 시켜 깨끗한 린넨을 있는 대로 가져오게 했다. 환자에게 다리를 벌린 자세를 유지하게 하고 간호사님이 다리를 잡도록, 응급구조사님이 자궁저부 압박을 하도록 했다. 분만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기는 손에 쥔 비누가 빠져나가듯 미끄럽게 산도를 통과했다. 머리를 돌리니 어깨를 누르니 하는 술기도 필요 없었다. 산모가 두어 번 밀어내는 힘을 주었을 뿐이었다. 아기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아기의 소아과 기록지를 열어보니 32주 정도밖에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기가 체온을 잃지 않도록 린넨으로 감싸 안았다. 성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아주 작고 못생겼으며, 양수와 태지 때문에 무척 미끄러웠다는 것만 기억난다. 출생 직후 아기가 건강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APGAR 점수를 매겨야 하는데, 평가해야 하는 항목이 무엇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그 소란을 보고 온 것인지, 환자를 둘러싸고 선 의료진 틈에서 다른 환자 때문에 응급실에 와 있던 소아과 의사가 등장했다. 그는 어디선가 가위와 켈리를 얻어와서는 능숙하게 탯줄을 잘라냈다. 그리고 이제 아기는 자기가 맡겠노라 하고 데려갔다. 산부인과 의사도 몇 분 뒤 도착해서는 산모를 데려갔다. 탯줄과 태반은 분만장에서 제거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 아기와 나의 인연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그 짧은 사이 온몸이 땀에 흠뻑 젖고 말았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또 한 건 해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오늘도 우리 응급실에서 적어도 한 사람, 어쩌면 두 사람의 목숨을 살린 셈이었다. 다만 줄곧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긴박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이제 엄마가 된 환자가 아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일을 겪은 뒤 나는 가끔 산모의 이름을 따 ‘OOO아기’라는 이름으로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아기의 의무기록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 두 달이나 일찍 태어난 것치고는 별다른 합병증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듯했다.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나친 간섭이라 생각하여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 소아과 전공의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직접 아기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아기 이야기를 꺼내자, 그 친구는 “아, 그 친구도 불쌍하지.”라면서, 보호자가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친구는 민감한 이야기라면서 자세한 사정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환자 정보 누설 금지 조항 때문이다. 어쨌거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소아과 전공의 친구는 ‘그 친구’라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물으니, 그런 아기들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 걸 영아 유기라고 한단다. 몇 달에 한 번씩은 꼭 있다나. 엄마가 종적을 감추면 경찰이 수배를 시작하지만 찾을 길이 없고, 아빠는 아예 누구인지도 모르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친구의 말로는 그런 아이들은 대개 신생아실 혹은 신생아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하고 죽거나, 유기된 영아들을 맡아 기르는 일을 하는 아동복지센터로 보내진다고 했다.




 나이지리아 속담 중에,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직접 육아를 하면서 나도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요구하고,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하마이다. 원래도 그랬지만, 요즘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이지 않은가.


 응급실에 함께 올 보호자도 한 명 없이, 심지어 자기 임신 주수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별다른 대책 없이 아기를 낳은 그 여자의 상황이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는 아기를 책임지고 사느니 경찰에 쫓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으며, 법률 외적인 측면에서도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아기의 얼굴 한 번을 보러 오지 않은 그 여자가 모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여자가 처한 상황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가 성범죄의 피해자인데 차마 생명을 낙태할 수는 없어 그간 책임감을 갖고 키워 왔다거나 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글을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불행 포르노가 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다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면, 앞으로 그 아기가 마주하게 될 냉혹한 현실만큼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나는 모든 아기들이 성인과 다름없는 권리를 갖고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로부터 이름조차 받지 못한 채 OOO아기로 살다가 떠나는 것은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이 좀 더 책임감 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이미 수년 전의 기억이다. 지금은 그 아기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자신을 사랑으로 양육해 줄 누군가를 만났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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