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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림 May 31. 2023

[오늘의 생각] 발달해 가다.

하루하루 '발달'해 갑니다.

 요즘은 아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보는 재미로 삽니다. 처음으로 혼자 일어선 날이나 아빠라는 단어를 처음 말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두 돌을 훌쩍 넘겨서는 이제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는 혼자서 책을 읽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미끄업틈(미끄럼틀)을 타고, 레고 블록을 조립하고, 뽀끄에이(포크레인) 장난감으로 땅을 파는 시늉을 하고, 꼬마 자전거를 끌고 다니고, 자기 주관도 뚜렷해졌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을 익혀 가는 모습이 대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소아 발달단계 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별 탈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특정 연령이 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과 아직 할 수 없는 행동을 연령대 별로 정리해 놓은 표입니다. 7개월이 되면 뒤집기를 하니, 12개월이 되면 혼자 설 수 있니 하는 것들이 전부 이 발달단계 표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학생 때 소아과학을 배우고, 소아과 실습을 돌고, 전공의가 되어 소아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수도 없이 소아 발달단계 표를 접했지만 내내 실감은 못 했습니다. 그러다 아들을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은 그 발달단계 표의 내용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 조그만 생명체는 얼핏 보아서는 늘 놀고 먹기만 할 뿐 공부는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아들의 조그만 뇌가 매일 학습하는 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들은 엄마와 아빠가 책의 글자를 읽으면 그 소리와 글자의 형태를 연결시키려 하고, 말소리를 들으면 사람의 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고, 레고 블록들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지, 중장비 장난감의 관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탐구하고, 자전거를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허리와 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끝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배워 가고 있습니다. 어른인 우리 눈에야 너무 당연한 것들이지만, 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연령에 맞는 발달단계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그만 뇌를 쉴 새 없이 굴리고 팔과 다리를 부단히 움직이면서 한 단계 한 단계를 수료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살아 보니, 아이들의 성장 과정뿐 아니라 어른의 삶에도 발달단계 표와 비슷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삶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다음 단계가 찾아와 또 처음부터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른들의 발달단계 표는 아이들의 것과는 달리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전공과 직업에 따라, 그리고 같은 전공과 직업을 가진 사람 사이에서도 개개인의 삶의 목표와 방식에 따라, 각자가 서로 다른 발달단계 표를 가질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응급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의,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작가로서의 발달단계 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계단계 수료해 가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학생과 대학병원 전공의라는 발달단계를 거쳐 최근에는 공중보건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나 혼자만 책임지면 되는 독신의 삶에서부터 발달하여, 한 사람의 연인이 되었다가 이내 배우자가 되었고, 지금은 아빠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던 시절로부터 성장하여, 보다 깊은 생각을 정제된 방법으로 표현하는 작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발달단계 표를 수료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인생은, 그것을 살아가는 인간이 결코 한 가지 삶의 방식에 안주할 수 있게 두지 않습니다. 하나의 시기를 지나면서 그 시기의 발달단계를 수료하면 필연적으로 다음 시기를 마주해야 하고, 고생 끝에 그 시기를 넘기면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해야 합니다. 아기가 뒤집기를 할 수 있게 되면 다음엔 일어서야 하고, 일어설 수 있게 되면 다음엔 걸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 또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배워 왔고,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 같습니다. 결코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이었지만, 그러한 경험과 배움이 나를 성장시켜 왔음은 분명합니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 Friedrich Nietzsche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치 아이가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한 뒤 그것을 익숙히 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배운다는 것이 힘든 이기에, 인간이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 배움이란, 저를 제가 하는 일에 정통하게 만들어 그 자체로서 제 삶을 지탱하는 무기가 됨과 동시에, 작가로서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 또한 제공합니다. 저는 요즘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제 지견넓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더 '발달'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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