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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림 Jun 12. 2023

[오늘의 생각] 시골 살이.

느리고 여유롭게.

 휴일을 맞아 친구가 일하는 보건지소에 다녀왔다. 회포를 풀기 위해 오래간만에 모이기로 한 것이었다. 자가용으로 3시간을 달려야 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우리 둘 다 그 흔한 버스 하나 잘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몇 개의 고속도로를 지나고 산길을 넘었다. 이윽고 친구가 사는 마을로 들어서자 이름 모를 언덕들 사이에 자리 잡은 평원이 나를 반겼다. 초여름 햇빛 아래 생기를 내뿜는 산과 논밭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흡사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듯했다. 한국에도 아름다운 곳이 적지 않구나 싶었다.


 새로운 멋진 장소를 발견한 기쁨을 더욱 만끽하고 싶었다.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음악을 바꿨다. 하나는 국산 RPG 게임 Blade & Soul의 삽입곡 중 하나인 ‘길’이라는 곡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The Witcher 3의 확장팩 Blood and Wine의 삽입곡 ‘The slopes of the blessure’. 게임을 잘 하지 않는 아내도 극찬한 곡들이니 관심이 생긴다면 들어 보시길. 둘 다 게임 속 주인공이 좁은 숲길 혹은 산길을 넘어 드넓은 평야로 접어들면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음악이다. 나의 흥을 돋우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차를 몰아 친구가 지내는 보건지소로 향했다. 도로를 공유하는 차가 한 대도 없는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직원들이 퇴근하여 한산한 보건지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멀리서부터 내가 오는 걸 보고 있던 친구가 관사에서 내려와 나를 맞이했다. 다른 친구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날 저녁에는 친구들과 함께 보건지소 옥상에서 바베큐 파티를 벌였다. 고추장찌개와 김치볶음밥과 최고급 한우로 위장에 기름칠을 하는 사이 어느새 해는 저물어 땅거미가 내렸고, 이내 별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낮의 풍경과는 또 다른, 절로 황홀감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점차로 어두워 가는 하늘의 순간순간 모습들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아름다웠다. 근처 산으로부터 이따금 들려오는 개구리와 멧비둘기 울음소리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기억에 남을 만한 밤이었다.




 시골 생활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생필품을 살 곳도 마땅치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려 해도 트럭이 들어오기 힘들다는 이유로 배송비가 만 원씩 더 붙기 일쑤이다. 변변한 헬스장이나 문화 시설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다. 같은 보건지소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한 두 마디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 요즘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 예전보단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일이다.


 친구도 나도, 흔히 도서산간이라 불리는 시골 마을에서 일하고 있다. 일차의료의 최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공중보건의사들이 일하는 곳이 죄다 그렇다. 그런 격오지에 병원이나 약국을 세우려는 사람이 없으니 공중보건의사들을 배치해 두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골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치면 불평할 거리가 수두룩하고, 때문에 공중보건의사들의 처우 개선 또한 시급하다. 그래도 불평할 생각은 없고, 이 글도 그런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니다. 사람 얼굴 하나 보기 힘든 이 시골에서의 삶이 나는 꽤 마음에 든다.


 나는 시골 마을의 풍경과, 마을 주변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의 영향일 것이다. 내가 유년기를 보낸 곳은, 전라남도 해남군에서도 가장 남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우수영이라는 동네이다. 흔히 땅끝 마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 있었던 울돌목 바로 옆, 진도로 넘어가기 직전인 육지의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에서 서울로부터의 거리가 가장 먼 동네 중 하나이다. 나는 거기서 10년에 가까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수영은 해변 동네이면서, 숲이 우거진 언덕과 농작물을 키우는 전답도 많았다. 덕분에 나는 거기서 자라는 동안 밤낮없이 해변과 언덕을 뛰어다니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찡한 느낌이 들면서 아련해진다.


 나는 5학년이 되던 해에 도시로 이사했다.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그 이래로는 20년 이상을 전투적으로 살았다. 시골과 도시는 무척 달랐다. 환경뿐 아니라 사람도 달랐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탓이다. 도시에서 새로 어울린 친구들은 모두 어느 학원을 다니니, 어느 컴퓨터 게임이 재미있느니 하는 '도시스러운' 이야기만 했다. 친구들이 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일으키는 급류에 휘말려 나 역시 맹렬하게 달렸다. 교과서에서는 개미 관찰이나 나무 타기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수학과 영어를 배워야 했고,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동화책 대신 수능에 나올 만한 고전 문학을 읽었다. 쉴 때도 집 밖으로 나서기보다는 컴퓨터 앞에 붙어 있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좋은 대학을 다니고 괜찮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잡초가 무성히 자란 밭두렁길을 걷거나, 부서지는 파도 알갱이를 관찰하거나, 흙냄새를 맡으며 토끼풀을 엮거나, 귀뚜라미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를 만끽할 틈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오랜만에 돌아온 시골에서의 삶이 주는 만족감이 작지 않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새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 시골 마을의 풍경을 보며 감상에 젖어 있는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나서면 거리마다 향긋한 물과 흙과 풀과 나무와 꽃의 냄새로 가득하다. 저녁이 되면 산새와 귀뚜라미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 어두워지면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난다. 환경이 이러하니 마음조차 여유로워진다. 오늘의 존재 의의를, 내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현재를 그 자체로서 즐기는 여유를 누리고 있다. 그런 게 좋다. 행복하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현대 사회의 주요 키워드는 속도와 효율이다. 사람들은 느리거나 효율적이지 않은 것을 죄악시한다. 실제로 느리거나 효율적이지 않은 것은 경쟁에서 밀리기 마련이고, 그러면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조차도 공중보건의사 시절 3년을 어떻게 보내야 나의 미래에 가장 도움이 될지 계산을 멈추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다.


 그러나 그런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가,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을 훼손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지난 20년을 빠르게 달리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의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친 듯하여 그게 그렇게 못내 아쉽다. 잡초가 무성히 자란 밭두렁길의 정취를 느끼거나,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여유를 만끽할 틈이 없었다. 인생의 짧은 시기이나마 다시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다음 주말에는 아들을 데리고 물과 흙과 풀과 나무와 꽃을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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