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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n 26. 2022

워라밸만 챙기는 '욕심쟁이' 요즘 것들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요. 내 집 장만은 꿈도 못 꾸고요. 결혼은 힘들 것 같아요. 아기 낳아 키우는 건 상상도 못 하죠. 이런 우리에게 ‘욕심쟁이’라고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네요. 정말 욕심쟁이는 그 말을 내뱉은 사람들이잖아요.”


 퇴근 시간이 30분이나 지났다. 모두들 숨죽여 눈치만 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나긴 침묵을 깬 건 A였다. 오늘 해야 할 일도 다 했고, 퇴근 후 약속도 있었다. A가 가방을 챙기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동료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장에게 향하는 A 뒤로 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장은 고개만 끄덕이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퇴근을 맞이한 A와 동료들은 빠르게 문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부장이 혼잣말로 직원들의 뒷덜미를 잡았다.     

 “에휴, 그놈의 ‘워라밸’만 챙기는 욕심쟁이 요즘 것들”     


 퇴근하던 직원들은 부장의 한 마디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혼잣말이었지만 모두가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퇴근 시간이 30분 지났어도 먼저 퇴근하는 부하직원들이 아니꼬웠다. A는 회사 밖을 나서며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자신이 ‘워라밸만 욕심내는 걸까?’, ‘오늘 행동이 잘 못 된 걸까?’ 부장이 툭 내뱉은 한 마디에 하루가 망가졌다.     


 “할 일이 끝났잖아요. 그럼 가야죠.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A가 겪은 회사 생활을 듣고 화가 났다. 상사보다 먼저 가거나 칼퇴하는 부하 직원에게 눈치를 주는 관리자가 있었다. 할 일 끝나서 집에 가는 건데, 그것도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다. 뭐가 그리 잘 못 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회사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우리 세대에게 ‘워라밸’만 챙긴다고 하는 상사들이 은근히 많다고 해요. 그런데요. 우리가 진짜 ‘욕심쟁이’인가요?”


 나는 퇴근하는 부하 직원을 나무라는 상사 모습에 화가 났지만 A는 아니었다. 그는 부장이 말한 ‘욕심쟁이’란 단어가 꺼림칙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A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린 평생 벌어도 집을 살 수가 없어요. 교통도 불편하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인데 몇 십억이래요. 결혼도 어려워요. 둘이 벌면 된다고들 하죠. 두 사람이 있으면 쓰는 돈도 두 배에요. 막막하지 않아요?” 


 “그러네요. 몇 십억 짜리 아파트를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집을 대출해서 사면 30년 동안 갚아 나가야 해요. 대출은 그냥 갚나요?”

 함께 이야기 나누던 A와 나는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다면 평생 일해야 한다. 30년 동안 일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평생 믿고 일할 회사가 없다. 지금 세대는 정년을 채우며 회사를 다닌다. 우리는 훗날 그 나이까지 일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씁쓸했다. A는 말을 이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요. 내 집 장만은 꿈도 못 꾸고요. 결혼은 힘들 것 같아요. 아기 낳아 키우는 건 상상도 못 하죠. 이런 우리에게 ‘욕심쟁이’라고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네요. 정말 욕심쟁이는 그 말을 내뱉은 사람들이잖아요.”


눈시울이 붉어진 A는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그 사람들은 집도 있고 차도 있고요. 결혼해서 자녀도 있어요. 회사에서 많은 봉급을 받으며 정년까지 보장받았고요. 반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꿈꾸지도 못해요. 20년 뒤, 30년 뒤 지금 상사들처럼 계속해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 가능한 이야기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요즘 것 들은 워라밸만 챙기는 것이 아니다. ‘워라밸’만이라도 챙기려는 것이다. 그거 말고는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암울한 현재와 막막한 미래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


 “부장까지 올라갔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해 먹으려고 갖은 아부와 아양을 떨죠. 자신의 성과를 위해 앞 뒤 가리지 않고 부하직원을 쥐어짜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요. 그게 진짜 ‘욕심’ 아닌가요?”


 A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렇다. 진짜 욕심쟁이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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