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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Aug 01. 2023

바티칸 시국 최고의 작품 '미켈란젤로'

로마, 바티칸 투어, 라오콘, 토르소, 천장화 그리고 최후의 심판

 로마의 밤은 고요하면서도 화려했습니다. 나이아드 분수는 거리의 야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하늘의 별이 분수 위를 뛰어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시에나를 거쳐 로마로 달려온 터라 피곤에 찌들었지만 조용히 밤거리 풍경을 감상하며 로마와의 첫 만남을 맞이했습니다.

 로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설레는 이유는 바티칸 투어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티칸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진정한 로마를 본 것이 아니다’라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예술의 메카’입니다.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 중 가장 만나고 싶었던 작품은 단연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가 그리고 글까지 잘 썼던 천재 미켈란젤로. 그의 영혼과 천재성이 담긴 작품을 영접하기 위해 바티칸 시국 성벽 앞에 섰습니다.

 이른 아침 도착한 바티칸 시국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투어 가이드에게 바티칸 역사와 주요 작품 소개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작가는 당연히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이 천재 예술가를 빼놓고는 바티칸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웅장한 성벽 뒤편엔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바티칸 시국에 입장했습니다.


 건물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춰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렌즈가 향한 곳을 바라보자 역동적인 조각상이 나타났습니다. 바티칸 시국 대표 작품 ‘라오콘 상’입니다. 트로이 전쟁 때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산 라오콘은 큰 뱀에게 감겨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모습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인데요. 고통스러워하는 라오콘의 표정과 몸을 감싸고 있는 뱀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만 같았습니다. 특히나 가닥가닥 표현한 수염과 머리카락, 세세한 근육은 디테일의 정점이었습니다.

 라오콘 상이 완벽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라오콘을 발견했을 땐 오른쪽 팔이 없었습니다. 이름 있는 조각가를 불러 모아 오른팔 모습을 추측했는데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친 모습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의견이 달랐습니다. 등 근육의 모습을 보며 팔을 굽히고 있는 형태라고 주장합니다. 다수결에 밀린 미켈란젤로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손을 뻗친 모습으로 복원됩니다.


 그 후 수백 년 뒤, 라오콘의 오른팔 조각이 발견됩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미켈란젤로가 말한 것처럼 팔을 굽히고 있는 조각입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조각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또 한 번의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한 작품은 ‘토르소’입니다. 탄탄한 승모근과 넓게 펼쳐진 광배근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몸은 다 이런가 봅니다. 빈약한 등근육을 가진 저는 작품을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토르소는 360도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등판 못지않게 허벅지와 복근도 갈라져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며 경건해졌고, 작품이 가진 골격근량을 보고 겸손해졌습니다.

 토르소는 앞서 관람했던 라오콘과 달리 부러진 팔과 다리를 복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도 미켈란젤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멋진 근육을 가진 조각상을 복원하라고 합니다. 당연히 미켈란젤로에게 지시하죠.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복원 작업을 완강히 거부합니다. 지금의 불완전한 모습으로도 이미 완벽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미적 감각과 탁월한 예술 철학을 가진 미켈란젤로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발견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모습 자체로도 완벽하다. 참 멋진 말이네요. 직장상사가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할 때, 미켈란젤로처럼 당당하게 말해야겠습니다. 앞으로 있을 직장 생활 대처법을 기억하며 유서 깊은 박물관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바티칸 바닥을 수놓은 모자이크 타일을 지날 때마다, 감히 밟아도 될지 주저하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진정한 예술과 역사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입장을 앞둔 이곳은 바티칸 시국의 대표 관광지 ‘시스티나 성당’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를 당대 최고의 화가로 만들어 준 작품인 ‘천장화’를 ‘천지창조’로 부르곤 합니다. 이는 일본식으로 번역한 표현입니다. 천지창조가 아니라 ‘천장화’라 부르는 것이 알맞습니다.

 예배당으로 들어서자 고요함이 주변을 채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마침내 저도 세계적인 명작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영접했습니다. 은하수를 마주하면 이런 기분일까요.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운 작품이 천장을 아름답게 뒤덮고 있었습니다.

 성경 속 9장면과 340여 명이 그려진 천장화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담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이 손가락을 뻗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을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는 미켈란젤로의 플렉스가 숨어있습니다. 아담에게 다가가는 하나님과 천사의 모습을 보면 마치 사람의 두뇌 단면처럼 보입니다. 조각, 그림뿐만 아니라 해부학에도 능통하다는 걸 천장화를 통해 표현한 것이지요. 정말이지 미켈란젤로는 확신의 육각형 천재입니다.

 천장을 바라보던 시선은 예배당 정면에 멈췄습니다. 30대에 천장화를 그린 미켈란젤로가 60대의 노인이 되어 다시 한번 시스티나 성당 내벽에 물감을 칠합니다. 약 5년간의 작업 끝에 탄생한 이 작품은 ‘최후의 심판’입니다. 천공으로 우러나는 화려한 색감과 조화로운 비례감은 인간의 영혼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줬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진수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명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야멸차게 거절합니다. 최고 권력자인 교황의 명령인데도 말이죠. 그 이유는 천장화를 그리며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려야 하니 허리와 무릎이 망가졌고요. 지긋지긋한 관절염에 시달립니다. 물감이 눈에 떨어져 시력까지 나빠집니다. 그림 PTSD가 생긴 미켈란젤로는 도망 다니며 명령을 거부합니다.

 직급으로 찍어 누르면 누구도 당할자가 없습니다. 천재 미켈란젤로도 어쩔 수 없이 교황의 명령을 받들어 다시 붓을 듭니다. 안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인데 여기에 방해꾼까지 등장합니다. 체세나 추기경은 작업 중인 미켈란젤로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무자를 괴롭히는 상사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품을 그려나간 미켈란젤로는 끝내 멋진 복수를 이뤄 냅니다.

 ‘최후의 심판’에는 391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인물 대부분이 미켈란젤로가 아는 사람들로 채워집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 그림에서 본인에게 호의적이었던 사람은 천국에 그리고요. 적대적이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지옥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악덕 상사 체세나 추기경은 어디에 있을까요. 당연히 지옥에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치욕스러운 모습으로요. 축 처진 가슴과 당나귀 귀, 그리고 뱀에게 성기를 물린 지옥의 사신 ‘미노스’로 표현합니다. 예술가다운 멋진 한 방으로 자신을 괴롭힌 상사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립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단순히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담아낸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천재’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바티칸 시국의 드넓은 광장 오벨리스크를 바라봤습니다. 맑은 하늘과 맞물린 광장은 미켈란젤로의 작품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천장화, 최후의 심판, 피에타를 작업하던 미켈란젤로도 이 광장을 바라보며 잠깐 휴식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괜스레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천재의 작품 세계를 떠나며 깊은 감동과 감사함이 남았습니다. 놀라운 재능과 예술적 역량이 담긴 작품을 실제로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어쩌면 바티칸 시국 최고의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머물렀던 그 시간이 아닐까요. ‘바티칸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진정한 로마를 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살짝 바꾸며 투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미켈란젤로 작품을 만나지 않았다면 진정한 바티칸 시국을 본 것이 아니다’


* 시스티나 예배당에서는 사진촬영이 불가합니다.
* 천장화, 최후의 심판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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