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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l 10. 2023

시에나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만지아의 탑, 캄포광장,시에나 대성당, 카타리나 그리고 카리나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하던 중 잠깐 들린 도시는 시에나입니다. 로마로 곧장 가기엔 뭔가 아쉬웠는데요. 짧은 시간이지만 시에나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번 시에나 투어 컨셉은 ‘맘 가는 대로 발 닿는 대로’입니다. 태생이 P인데 그간 너무나 계획적인 여행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습니다. 조그마한 소도시 시에나는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맘대로 멋대로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켰습니다. 어플을 보고 두 번 놀랐습니다. 도시가 거미줄 마냥 작은 골목이 많았습니다. 미로 같은 시에나의 길을 보고 한 번 놀랐고요. 구글이 이런 어려운 길까지 정확히 표현한다는 점에 두 번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역시 글로벌 기업 구글입니다. 카카오, 네이버 주주로서 마음 아픈 순간이었습니다.

 대략적인 길만 숙지하고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길로 가던 ‘캄포 광장’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언젠가 만나게 될 광장을 떠올리며 골목을 누볐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답게 ‘유럽’하면 떠오르는 거리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집일지도 모를 건물을 향해 촬영 버튼을 눌렀습니다. 유럽적인 분위기를 담은 골목을 걸으며 아름다운 문화가 깃든 건물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매혹적인 골목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방향을 따라갔습니다. 역시나 시에나의 자랑 ‘캄포 광장’이 펼쳐졌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물은 우뚝 솟은 ‘만지아의 탑’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종탑으로 높이가 무려 102m나 됩니다. 건축 기간은 1325년부터 1348년까지입니다. 위엄 있는 모습으로 광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탑 아래엔 드넓은 캄포 광장이 많은 사람을 품고 있었습니다. 부채 모양의 광장은 마치 사람들을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광장에 안긴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있거나 더러는 누워서 자유로운 휴식을 취했습니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앉았다가 현지 경찰의 제지를 받은 트라우마가 있는 저는 주변 눈치를 살피곤 조심스레 광장 바닥에 앉았습니다.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인근 마켓에서 구매한 마카롱을 먹으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광장’이라 하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이곳 캄포 광장은 여유롭고 잔잔했습니다. 친구와 카페에 수다 떨러 들어왔는데, 다들 공부하고 있는 느낌. 딱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축제 때는 난리 난다고 합니다.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에는 ‘팔리오 축제’가 열립니다. 중세시대 복장을 한 사람들의 퍼레이드와 전통 경마 경기가 펼쳐집니다.


 광장에서 일어나 또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골목을 가득 채운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중식당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볶음밥과 중국식 제육볶음을 주문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중식은 어떤 맛일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꼬들꼬들한 볶음밥의 식감과 불향 가득한 고기볶음의 맛은 즉흥 여행의 분위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계획하지 않고 끌리는 대로 들어왔는데 이렇게 맛있다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맘 가는 대로 발 닿는 대로’ 가는 여행의 매력이 이런 게 아닐까요. 

 좁은 골목을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만났습니다. 붉은색으로 가득한 시에나에 하얀색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채로운 건물을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외벽과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이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 건물은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시에나 대성당’입니다. 성당 정문 기준으로 왼편에 있는 흑백 줄무늬 탑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자로 잰 듯 한 정교함과 고풍스러운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흑백의 단순함으로 화려함을 만들어 내다니 넋을 놓고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의도치 않게 만난 시에나의 눈부신 건축물 앞에서 반가움과 경이로움을 한껏 느꼈습니다.


 주차장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걸어왔던 길이 아닌 옆 골목으로 걸었습니다. 지도를 보니 어느 길로 가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에나 골목길입니다. 붉은 벽돌집 사이를 지나고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자 맑은 하늘이 환하게 펼쳐졌습니다. 그 아래로 구름을 살포시 덮고 있는 건물이 보였습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산 도메니코 성당’입니다.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유해를 모신 곳이라고 합니다. 멀리서 봐도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카타리나’는 제가 좋아하는 에스파 리더 ‘카리나’의 세례명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맘 가는 대로 발 닿는 대로’ 시작한 시에나 여행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아무런 계획없이 다녔지만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시에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조그마한 소도시를 여행할 땐 아무런 준비 없이 아름다움을 만날 가능성만 열어두고 여행에 임해야겠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 안에 담긴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시에나를 떠나 이번 유럽여행의 마지막 도시 로마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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