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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n 21. 2023

피렌체에 가기 전, 하체 운동 한 이유

두오모 성당, 코폴라, 조토의 종탑 그리고 463개의 계단

 남자는 하체가 생명입니다. 헬스장을 찾으면 하체 운동에 많이 신경 씁니다. 그중 스쿼트와 런지를 가장 선호합니다. 다리와 엉덩이가 불타서 없어진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 어떤 운동보다 힘들기 때문에 운동 후 성취감도 남다릅니다. 이번 유럽 여행을 앞두고 하체운동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463개의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서죠.

 천국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피렌체 관광의 핵심 ‘두오모 성당’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꽃의 성모마리아’라는 뜻을 담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라 불립니다.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게 화려한 대리석 장식과 웅장한 코폴라가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1436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대에 어떻게 멋지고 높은 건물을 만들었을까요? 르네상스 발상지이자,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가 충만합니다.

 공복 유산소를 좋아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공복 상태는 비인간적인 행위입니다. 두오모에 오르기 전 쫀득한 파니니와 이탈리아 국민 음료 아페롤 스프릿츠를 먹었습니다. 스프릿츠는 달콤한 맛이 매력적이었는데요. 한잔 더 마시려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까 봐 참았습니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무릎과 발목을 충분히 풀어주고 계단을 올랐습니다. 두오모에 오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생각보다 계단을 잘 올라가서 놀랐습니다. 뒤처지지 않게 속도에 맞춰 한발 한발 계단을 향해 내디뎠습니다. 경사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계단 폭이 좁았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입니다. 천장이 낮아서 키가 큰 외국인은 머리를 숙이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3분쯤 지나자 정체구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발소리만 들렸는데 어느새 거친 숨소리가 통로를 가득 채웠습니다. 사람들의 열기가 빠지지 않아서 더웠고요. 계단을 올라야 하니 체력 소모도 심했습니다. 작은 창문 앞에서 거친 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계단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사람은 외마디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저질 체력을 원망하는 듯했습니다. 꾸준한 운동과 철저한 식습관으로 체력을 쌓은 저는 쓰러진 사람들을 제치고 거침없이 계단을 올랐습니다.


 계단에 널려있는 사람들 속에서 한국인 커플을 발견했습니다. 여자친구는 난간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붉게 닳아 오른 얼굴엔 분노, 짜증, 원망, 피로가 가득했습니다. 미소로 둘러싸인 관광객들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웃으며 여자친구의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여자친구의 표정은 조금씩 풀렸고, 다시 일어나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계단을 오르는 저는 두 사람을 민첩하게 지나쳤습니다. 그 순간 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절대 눈물이 아닙니다. 땀입니다.

 좁은 통로와 끝없는 계단이 익숙해질 때 즘, 마지막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계단 경사가 가팔라졌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대성당을 정복하기 위해 클라이밍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바닥엔 앞사람이 흘리고 간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세계 각국의 된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CUPOLA DOME’이라 적힌 표지판을 만났습니다.


 463개의 계단을 이겨내고 만난 피렌체의 풍경은 심장을 더욱 빨리 뛰게 만들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피렌체 시내는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줄지어 서있는 빨간 지붕은 단순한 지붕을 뛰어넘어 예술적인 건축물로 느껴졌습니다. 성당, 궁전, 호텔, 상점 등 모든 건물이 우아한 스타일로 시간의 흔적을 안고 있었습니다.

 계단에서 흘린 땀을 식혀주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눈을 감고 바람에 실려온 것들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낭만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있다가 코폴라를 한 바퀴 거닐었습니다. 맑은 날씨와 잘 어울리는 시내 풍경은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발아래 두고 내려다보니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뚝 솟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토의 종탑’이 두오모 꼭대기에 있는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본 탑이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건물이 앙증맞았습니다. 흰색 외벽과 각이 살아있는 건축 양식이 피렌체의 멋을 한층 높여주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종탑 안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저도 손을 흔들어 화답했습니다.

 조토의 종탑에서 올려다보는 피렌체 대성당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종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싶었고요. 탑높이가 80m가 넘고 계단이 414개라는 걸 알고 난 뒤 마음을 접었습니다. 유럽에서 구급차를 부르면 돈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거든요.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시내 풍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높은 곳에 오르는지 이해할 것 같습니다.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으니 큰 성공을 거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도 벅찬 감정을 돋우는데 한 몫했습니다. 자신감과 용기가 샘솟았습니다.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용기가 가득했습니다. 퇴사 후에 느꼈던 불안감도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앞으로 마주할 어려움을 대성당 위에서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며 극복해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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