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개의 계단을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불타는 허벅지를 치유하기 위해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왔습니다. 역시 운동 후엔 고기입니다. 부산하면 국밥이고, 피렌체하면 단연 ‘티본스테이크’입니다. 스테이크 1kg와 랍스터가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 트러플 파스타를 주문했습니다. 운동만큼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식당 모든 테이블에 티본스테이크가 있었습니다. 피렌체에서 스테이크가 유명한 이유는 가죽시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가죽시장은 스테이크만큼 유명합니다. 동물 가죽으로 제품을 만들고 나면 남는 건 고기와 내장입니다. 가죽은 시장으로 가고 고기는 제가 앉아있는 식탁으로 온 것이지요.
미디엄 레어로 조리한 티본스테이크는 육즙이 살아있었습니다. 고기가 두툼해서 안쪽까지 안 익었을까 봐 걱정했지만 씹는 순간 부드러움의 끝을 보여줬습니다. 레드와인도 살짝 곁들여서 풍미를 더했습니다. 함께 나온 트러블 소금에 찍어 먹으니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트러플 소금과 티본스테이크 조합은 최고였습니다.
식당을 나서자 피로가 쏟아졌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에 오른 후유증이 찾아온 것이지요. 햇살도 좋고 배도 부르고 거기다 레드와인도 연거푸 마셨으니 졸릴만합니다. 숙소에서 한 시간만 누워있다가 다시 나오기로 했습니다. 몽롱한 상태로 거리를 거닐다 바닥에 깔린 그림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림 파는 사람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바닥에 있는 그림을 밟은 모양입니다.
알고 보니 그림을 강매하는 수법이라고 합니다. 골목 입구나 인도에 일부러 그림을 깔아 놓습니다. 밟는 순간 달려와 돈을 요구하는데요. 아름다운 피렌체 거리를 오염시키는 치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멀리서 경찰이 보이자 황급히 그림을 챙겨 어디론가 도망쳤습니다. 피렌체 시내를 찾는 분이 있다면 이런 사기꾼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속소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숙소 침대에 잠깐 누웠는데 어느덧 한 시간이 흘러있었습니다. 꿀잠을 자서인지 몸 전체가 상쾌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시 계단을 오를 만큼 충분히 에너지가 충전되었습니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다시 피렌체 시내로 나갔습니다. 따사로웠던 햇빛은 지나가고 거리엔 노을이 내려앉아있었습니다. 숙소와 가까운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피렌체 노을을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도시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인 만큼 경사도 제법 가팔랐습니다. 이번 피렌체 여행은 높이와의 싸움이네요.
광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노을을 담기 위해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도 있었고, 난간에 올라 휴대폰 카메라를 치켜든 사람도 보였습니다. 운 좋게 난간 귀퉁이에 자리가 나서 그곳에 몸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노을이 깔린 피렌체는 낮에 봤던 모습과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의 도시는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었습니다. 불긋이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은 피렌체 대성당과 만나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늘을 따라 길게 펼쳐진 노을이 아노르강에 닿자 잠들어 있던 가로등이 눈을 떴습니다. 멀리 보이는 건물도 하나 둘 불을 밝히며 밤을 맞이했습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버스킹 공연장에 모여 낭만을 즐겼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 가사였지만 청춘을 노래하고 이 순간을 즐기자는 내용 같았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피렌체 야경을 바라보며 오롯이 지금을 느꼈습니다.
피렌체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멧돼지 동상’의 코를 만지면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문의 주인공인 동상을 찾아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에 다시 오고 싶어 하나 봅니다. 멧돼지 동상 코가 반질반질했습니다. 저도 아름다운 피렌체에 꼭 다시 오고 싶어서 코를 정성껏 쓰다듬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알려드릴게요. 멧돼지 입에 동전을 넣은 뒤, 동전이 바닥의 동전함으로 떨어지면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단, 기회는 한 번 뿐입니다. 동전이 다른 곳에 떨어졌다고 다시 시도하면 행운도 안 올뿐더러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야유를 받습니다. 줄이 엄청 길거든요.
저에겐 과연 행운이 찾아올까요? 멧돼지 입에 동전을 넣고 손을 뗐습니다. 동전은 깔끔하게 동전함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행운이 올지 궁금합니다. 피렌체에서 아름다운 야경도 보고 티본스테이크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맑은 날씨 덕분에 두오모 성당에서 피렌체 시내를 온전히 내려다볼 수 있었고요. 이보다 더 좋은 행운이 찾아오길 기대하며 피렌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베키오 다리’로 향했습니다.
다리 위엔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었습니다. 노래에 맞춰 리듬도 타고 난간에 걸터앉아 강물에 비친 야경을 감상했습니다. 이상하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면 숙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들어가면 이번 여행에서 피렌체는 마지막입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어 다리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도시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내딛는 곳마다 평화로웠던 피렌체와의 이별이 쉽지 않았습니다.
베키오 다리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숙소 침대에 누워 피렌체에서 보낸 시간을 되뇌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루였습니다.‘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멧돼지 동상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동상의 코도 만졌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동전 넣기도 한 번에 성공했습니다. 찾아올 행운은 아마도 피렌체에 다시 오는 일이 아닐까요? 행운이 꼭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