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의 종착지
너를 처음 만난 그 순간, 새로운 나라를 가보는 마음으로 탄 비행기보다 더 떨리고 벅찼다.
9개월도 채 채우지 못한 너를 그렇게 갑자기 만났다.
“안녕 아가야,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너를 만남으로써 엄마로서의 삶도 시작이라 떨리지만, 너만큼은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도록 노력할게.”
그렇게 생각했다.
태어난 아이의 얼굴은 제법 아빠를 닮았고, 그 모습을 보고 신랑과 나는 눈을 맞추며 푸스스 웃음이 났다.
행복한 너의 날이었다.
앞으로 축복받을 너의 생일.
2박 3일, 짧은 입원을 마치고 조리원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너는 심한 황달로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바로 오지 못했고, 일주일이 되어 갈 때쯤 너를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너와 함께 집에 돌아온 첫날.
세 시간마다의 유축, 수유, 너의 수면.
내 핸드폰은 수유 시계 앱만 쉴 새 없이 돌아가고,
그렇게 너의 잠을 위해 나의 잠은 사라졌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단어만 붙들며 힘을 냈던 것 같다.
하지만 너는 100일이 지나도 힘이 없어 직수를 하지 못했고, 잠도 여전히 짧게만 잤다. 그리고 나는 3시간마다 유축하는 생활을 그 뒤로도 6개월까지 이어갔다.
그렇게 잠을 2시간도 채 못 자는 날들이 계속됐다.
하루는 유축을 하다 새벽에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깜빡 졸아 병을 쏟아 모든 걸 다 버린 그날,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너무 피곤해서. 힘들어서.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드는 내가 너무 너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그리고 어느새, 너는 참새처럼 입을 벌리며 조금씩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오물오물거리며, 냠냠냠 소리도 내기 시작했다.
“음마아, 빠바바…” 하며 옹알이도 시작했다.
처음으로 ‘엄마’ 비슷한 소리를 들었을 때, 동영상을 찍지 못한 게 아쉬워서 그 뒤로는 이유식을 먹일 때마다 촬영을 쉴 새 없이 했다.
그때 찍은 영상이, 너의 ‘엄마’와 ‘아빠’ 소리를 들은 마지막 기록이 될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더 많이 찍어둘 걸… 지금도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12개월이 되었을까?
맘카페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은 스스로 앉기도 하고, 빠른 아이들은 이미 서서 걸음마까지 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여전히 배밀이로 기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괜찮아, 걷는 게 느릴 수 있대~”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14개월이 되었을 때, 그때조차 아이는
스스로 앉을 수도, 서서 걸을 수도 없었다.
“언니, 치료를 받으러 가봐야겠어.”
친하게 지내던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뒤,
나는 밤낮없이 주변 센터와 치료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느린 아이’, ‘걸음이 느려요’, ‘아이 걸음마’, ‘아이 걸음 치료’…
내 검색 기록은 온통 그런 단어들로 가득했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한 센터를 추천받아 상담을 받으러 가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는 오랜만이네요.”
센터에 도착해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너의 첫 치료가 시작되었다.
끝이 어딘지 모를 치료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