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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상처, 지금의 우리, 그리고 시간

구름과 빗물처럼 그렇게 스며드는 거야

by 윤슬

나는 어릴 때 우리 집을 행복한 가정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아빠는 점점 더 집을 비웠고, 가끔 돌아오는 날이면 밥상이 날아다녔다.

깨진 그릇과 싸늘한 침묵만이 남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고,

엄마는 그런 우리를 키우기 위해 밤낮 구분 없이

일을 나가셨다.


텅 빈 집에서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엄마의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맣게 무언가를 적었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을.


나중에 성인이 되어 낡은 전화번호부를

다시 펼쳤을 때,

그곳에는 나의 어릴 적 외로움이 적혀 있었다.


“날 사랑해 주는 건 아무도 없어.”


그래서인지 뱃속에 네가 생겼을 때,

너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고

외롭지 않게 아껴 줘야지, 애틋했더랬지.


네가 태어난 날도 나는 그랬다.

힘든 것보다는,

품에 안은 네가 너무 따뜻하고

너의 심장이 뛰는 게

마치 내 심장 같았다.


너는 자라면서 점점 더 아이가 되고

나는 자라면서 점점 더 엄마가 되어 간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특별한 네가,

엄마라고 나를 한 번도 불러 준 적 없는 네가,

가끔은 나를 사무치게 외롭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외로움을 껴안고,

다시 너를 품에 안는다.




하나, 구름이 하늘에 스며들듯

너도 그렇게 스며든다.


둘, 빗물이 바닥에 스며들듯

나도 그렇게 스며든다.

그리움 또한 그렇게 빗물이 된다.


셋, 눈물이 빗물에 녹아들듯

마음도 무뎌지고

외로움도 그렇게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어느새 나는 그렇게 스러진다.


그렇게


이렇게


어느새


흩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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