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서른.

by 글림스

멀게만 느껴졌던 나이 서른에 다달았다.

어쩌면 이렇게 시간은 빠르고도 느린 것일까?

대단한 성취는 없지만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이 느껴진다.

다채로웠던 나날의 색이 섞이고 또 섞이며 나의 영혼은 이제 묵직한 쥐색이 된것 같다.


내게 발생했던 안좋은 일들이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 내가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일들이 있었어야 했어."

안좋은 사람과 상황에 얽매어 지냈던 시절은 시간낭비가 아니라, 내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내 자신을 달랜다.


모든일에 감사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걸어왔던 길들, 다녔던 학교, 회사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 평생 내 곁에 있어주셨던 우리 부모님.

아직 내가 걸어갈 길이 걸어온 길보다 더 길다는 것 역시 감사하다.


부랴부랴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한다.

나에게 우리나라 외교부가 이뤄내준 혜택을 누릴 시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서른이 되어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이 많이 들어간다.

어디를 갈지 부터, 밥벌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스물이었으면 아무 생각없이 어디나 가서 무작정 살아남았었을텐데.

내 자신을 챙기고, 앞가림을 하며 보호해주는 모습이 스스로 뿌듯하다.


내가 워킹홀리데이에서 돌아올 즘이면 우리 부모님은 더욱 늙으셨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들때면, 부엌에 들어가서 오늘의 저녁식사는 내가 직접 만들어 대접한다.

그리고 함께 먹으며 행복을 느낀다.


나의 서른은 대체로 행복하다.

10년 넘게 나와 함께 해줬던 친구들을 되돌아보며 행복하고,

나의 앞날을 상상하면서도 행복하다.

이런 면에서는 아직 내 안의 소녀가 남아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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