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일까?
막내딸로 자란 나는, 언제나 가족의 '애기'였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언니는 나를 보호해주고, 가르쳐주고, 때로는 잘못했을 때 혼내주었다.
세 번째 생일날, 부모님이 캠코더로 정성스레 찍어준 영상을 보면, 내 생일인데도 나는 꽤 조용하다.
아버지가 나를
"애기, 애기"
라고 부르며 영상은 시작된다.
막 세 살이 된 나는 케이크에 초를 꽂는 게 신이 나서 들떠 있지만, 셋 중 하나만 내가 꽂고 나머지 둘은 언니가 하라고 아빠가 양보하라고 말한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케익이 손에 묻으면 쪽쪽 빨아먹어야 돼!”
갑자기 내가 신나서 외친다.
“아니야! 케익이 손에 묻으면 휴지로 닦아야 돼. 그치, 아빠?”
다섯 살 언니는 잘난 척하며 내 말을 정정한다.
“둘 다 맞아.”
아빠가 중재에 나선다.
그리고 나는 발음이 아직 서툰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케익이 손에 묻으면 먹어도 되고, 휴지로 닦아도 돼?”
“응, 그래.”
엄마가 다정하게 대답해준다.
내 주장이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게 기뻤는지, 나는 살짝 웃는다.
5분 남짓한 그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선, 언니가 생일 선물로 준 색종이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이 담겨 있다.
그 모습을 본 언니는 말한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수민아, 이거 봐봐. 정말 쉬워.”
그리고는 내 손에서 지갑을 가져가 자기가 접는 방법을 보여준다.
나는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 갔을 때 언니가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처음 타지 학교로 떠나는 날, 창밖을 보며 울던 언니의 새하얀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몇 달 후, 같은 창밖을 보며 웃던 언니의 얼굴도 함께 기억난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나의 첫 등교날은 떨림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나는 마른 눈으로, 걱정 없이 집을 나섰다.
늘 그래왔듯, 나는 언니를 따라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언니는 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온몸으로 짊어진 멋진 사람이었다.
그 책임감 덕분에 언니는 조선일보에 소개되기도 한 1등 모범생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언니와 달랐다.
그 ‘다름’만으로도 나는 종종 혼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도 나름의 ‘깡’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니는 대원외고에 진학했지만, 나는 아예 외고 지원서조차 내지 않았다.
중학교 친구들과 계속 함께 지내고 싶었고, 좋은 대학을 가는 데엔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일반고에서 성적도 안 나오고 놀기만 한다며 걱정했고, 결국 수를 써서 외고 특별 면접을 보게 만들었다.
면접관 중 한 명은 아버지의 친구였다.
그 앞에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외고에 갈 생각이 없어요. 부모님이 강제로 면접에 오라고 하셨어요.”
나는 그때 내 선택에 솔직했고, 당당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가족에게 진심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사랑이 담긴 걱정과 동시에, 못마땅함이 섞인 시선을 받았다.
가족과 거리를 두고 평온을 찾고 싶어 기숙사 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선 열 살 연상의 남자친구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을 때면, 늘 가족이 나를 못마땅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머니는 가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어렸을 때, 엄마가 식탁에서 슬퍼서 울고 있으면 네가 와서 손을 잡아줬어. 그때 엄마 기분이 마법처럼 나아졌단다. 수민이한테는 매직 터치가 있었어. 그렇게 밝은 에너지를 주던 우리 애기는 어디 갔을까…”
그건, 그 당시 내 기억 속에 남은 어머니의 유일한 칭찬이었다.
나는 우리 집의 ‘밝은 애기’였다.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전염시키는 어린 아이였다.
그래서 서른이 된 지금도, 나는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내 사명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미팅 자리나 프레젠테이션 때면 여전히 긴장한다.
사람들이 속으로 “저 애기가 뭘 안다고 말을 할까?” 라고 생각할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애기’가 아니다.
언니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결국 박사 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지금은 우리 곁에 없다.
여전히 통화를 할때면 언니는 나에게 온갖 조언을 다 해준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언니의 말을 따른다.
하지만 집 안에서 만큼은 내가 이제 우리 집의 장녀다.
내가 애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점점 더 깊이 깨닫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 입고 있던 배냇저고리를 벗고,
이제는 진짜 나를 찾으러 나설 시간이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