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매일 주문하는 택배, 그 작은 상자 하나가 내 손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됐을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질문이 결국 나를 Scope3라는 낯선 세계로 이끌었다.
물류와 운송 산업에서 탄소배출량 측정 업무를 하게 되면서, 나는 기업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거대한 탄소의 미로 속에 갇혀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나 사무실 전력 사용량 정도만 관리하면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숨겨진 거대한 발자국
Scope3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직접배출인 Scope1, 간접배출인 Scope2까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만, Scope3는 마치 끝없이 펼쳐진 거미줄 같았다.
기업 전체 탄소 배출량의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이 거대한 숫자 앞에서,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작은 부분만 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특히 물류와 운송 분야에서는 이 비율이 더욱 압도적이었다. 원재료가 채취되는 순간부터 제품이 고객의 손에 닿고, 최종적으로 폐기될 때까지의 모든 여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제조업체 담당자와 만났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공장 관리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했지만, 협력업체들의 생산 과정이나 원재료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에 대해서는 막막해했다. "우리가 직접 관리할 수 없는 부분까지 책임져야 한다니, 이게 과연 공정한 것인가요?"라는 그의 질문에서 많은 기업들이 느끼는 혼란과 부담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류업계의 복잡한 현실
물류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이 업계가 얼마나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매일 목격하게 된다. 한 개의 화물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안 거치는 수많은 단계들. 자사 차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협력업체에 의존하는 부분들, 화물 터미널에서의 대기 시간, 창고에서의 보관 과정까지.
최근 만난 대형 물류기업의 ESG 담당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이 Scope3 측정을 시작하면서 도입한 세 가지 방법론에 대해서였다.
첫 번째는 활동 기반 측정법이라고 했다. 실제 운송 거리와 화물 중량, 차량 연비 등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정확하지만 데이터 수집이 만만치 않다는게 문제였다.
두 번째는 지출 기반 측정법. 물류 서비스에 지출한 비용을 기반으로 배출량을 추정하는 방식이었다. 상대적으로 간편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세 번째는 이 둘을 적절히 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었다. 중요한 배출원은 정확하게,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부분은 간편하게 측정하여 효율성과 정확성의 균형을 맞추려는 현실적 접근이었다.
글로벌 무대에서의 압박과 기회
유럽연합의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이 2024년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유럽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의무적으로 Scope3 배출량을 측정하고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비슷한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K-택소노미와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통해 ESG 공시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5년부터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기업이, 2030년부터는 그 외 코스피 기업들도 의무 공시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규제의 압박은 거세지는 데 반해, 실제로 정확한 측정을 위한 인프라나 협력 체계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도 공급망 파트너들의 협조 없이는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모든 담당자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작은 걸음부터 시작하는 지혜
성공적인 Scope3 관리의 첫 번째 단계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5개 카테고리의 Scope3 항목을 모두 완벽하게 측정하려다가는 시작도 못 하고 포기하기 쉽다. 물류기업이라면 업스트림 운송과 유통, 다운스트림 운송과 유통, 그리고 비즈니스 출장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데이터 수집 체계 구축도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지 말고, 기존의 ERP 시스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부터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운송 데이터, 연료 소비량, 차량 운행 거리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할 수 있는 체계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트너들과의 협력이다. 일방적인 데이터 요구보다는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탄소배출량을 줄여가면서 비용도 절감하고, 경쟁력도 높일 수 있는 윈-윈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기술이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
최근 들어 AI, IoT, 블록체인 같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측정 솔루션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
IoT 센서를 통해 운송 차량의 실시간 연료 소비량이나 GPS 기반 운행 거리, 화물 중량 등을 자동으로 수집할 수 있다면 측정의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은 불완전한 데이터로부터도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도출해낼 수 있다. 과거의 패턴을 분석하여 미래 배출량을 예측하거나, 다양한 변수들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데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특히 신뢰성 측면에서 혁신적이다.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 데이터를 투명하고 위변조 불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중소기업의 현실적 고민
대기업과 달리 제한된 자원을 가진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절실하다.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의지는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기업들에게는 단계적 접근이 특히 중요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한두 개 카테고리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범위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업계 공통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류업계 협회나 정부 기관에서 제공하는 공통 측정 도구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초기 투자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때로는 전문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초기 시스템 구축 단계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올바른 방향으로 출발하고,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내부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측정을 넘어 실천으로
하지만 궁극적으로 Scope3 측정의 목표는 단순한 수치 산출에 있지 않다. 진정한 가치는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배출량 감축을 이루어내는 데 있다.
운송 효율화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경로를 최적화하고, 적재율을 높이고, 공차 운행을 최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배출량 감축 효과를 볼 수 있다.
친환경 운송 수단으로의 전환도 점진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과제다. 전기차나 수소차 같은 무공해 차량의 도입을 확대하고, 철도나 해운 같은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적은 운송 수단의 활용도 늘려나가야 한다.
공급망 파트너들과의 협력적 감축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주요 협력업체들과 공동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기술 지원이나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함께 배출량을 줄여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여정
물류업계에서의 Scope3 측정과 관리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복잡한 공급망과 다양한 운송 수단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ESG 규제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고, 탄소배출량 관리 역량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규제 대응으로만 바라본다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점에서 찾아진다. Scope3 관리를 통해 공급망의 효율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창밖의 하늘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노력들이 모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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