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물류센터 근처를 지나다가 문득 멈춰 섰다. 끝없이 펼쳐진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내뿜는 배기가스와 우리가 매일 받아보는 택배 상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의와 속도를 추구하는 현대 생활 뒤편에는 늘 이런 풍경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게를 지구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것을.
물류와 운송 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한 상품이 문 앞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2024년을 맞이하며, 이 산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과학기반 탄소감축목표, 즉 SBTi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과학이 제시하는 희망의 언어
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처음 이 용어를 들었을 때는 복잡하고 따분한 규제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본질을 알게 되면서,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발상인지 깨달았다. 기업들이 더 이상 추상적인 구호나 막연한 다짐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구체적인 약속을 지구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파리협정이 채택된 2015년 이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SBTi는 이 거대한 도전 앞에서 기업들이 각자의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돕는 나침반이 되었다.
물류 기업들에게 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화물 운송부터 창고 운영, 포장재 사용까지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꼼꼼히 측정하고, 이를 줄여나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한 후 처방전을 쓰듯, 지구의 건강을 위한 치료 계획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2025년, 변화하는 기준들
올해 SBTi의 변화는 더욱 세밀하고 포괄적이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Scope 3 배출량에 대한 요구사항이 강화된 것이다. 이는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시설에서 나오는 배출량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와 고객사, 나아가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너무 가혹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기업이 어떻게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모든 배출량까지 관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책임감의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지구 온난화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각자의 영역에서만 머물러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결과인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단기와 장기 목표를 모두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의 중간 목표와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한 장기 계획을 함께 세워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닌,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요구하는 것이다. 마치 등산을 할 때 정상까지의 전체 경로와 함께 중간 지점들을 미리 파악해두는 것처럼,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업종별 맞춤형 가이드라인도 더욱 세분화되었다. 해상운송과 항공운송, 육상운송과 창고운영 각각의 특성을 고려한 감축 방법론이 제시되고 있다. 획일적인 기준이 아닌, 각 분야의 현실을 반영한 섬세한 접근이 인상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진심어린 약속
세계적인 물류 기업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희망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일이다. DHL이 2030년까지 직접 배출량을 2017년 대비 42퍼센트 줄이겠다고 다짐한 것, FedEx가 2040년 탄소중립을 위해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홍보가 아님을 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전기 배송차량 도입과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UPS가 2035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세우고, 2050년 넷제로를 향한 장기 전략을 수립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계획서를 읽다 보면, 숫자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CJ대한통운과 현대글로비스 같은 주요 물류기업들이 SBTi 가입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 상용차 도입, LED 조명 교체, 물류센터 태양광 발전 설치 등 다양한 노력들이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목표 설정, 그 섬세한 과정들
SBTi 승인을 받기 위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치밀함에 감탄하게 된다. 첫 번째 단계인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부터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현재의 배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감축 목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Scope 1 배출량은 자사가 직접 운영하는 운송수단과 지게차, 보일러 등에서 나오는 직접 배출량이다. Scope 2는 전력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이고, Scope 3는 협력사 운송과 직원 출장, 폐기물 처리 등에서 발생하는 기타 간접 배출량을 의미한다. 각각의 범위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탄소발자국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감축 시나리오 개발이다. 1.5도 또는 2도 목표에 부합하는 감축 경로를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해 설계하는 과정이다. 이때 업계 평균 감축 속도와 기술적 실현 가능성, 비용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와 치료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 수립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액션 플랜과 투자 계획, 성과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SBTi에서는 단순한 목표 선언이 아닌 실행 가능한 구체적 계획을 요구한다. 이 부분에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지만, 동시에 가장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실천 가능한 희망의 전략들
물류 운송 분야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탄소감축 전략들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운송 효율성 개선이 그 첫 번째다. 최적 경로 설정과 적재율 향상, 공동 배송을 통해 불필요한 운행을 줄이고 연료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친환경 운송수단 도입도 점점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전기 트럭과 수소 연료전지 차량, 바이오 연료 사용을 통해 직접적인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특히 단거리 배송에서는 전기차의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이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물류시설 에너지 효율화는 또 다른 중요한 축이다. 창고와 물류센터에서 LED 조명을 사용하고, 스마트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하며,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런 변화들은 환경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운영 비용 절감에도 기여한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다. AI 기반 수요 예측과 IoT를 활용한 실시간 모니터링,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최적화는 탄소배출 감축에 큰 도움이 된다. 기술의 발전이 환경 보호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주의 깊게 걸어야 할 길
SBTi 승인 과정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지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의 과학성이다. 단순히 업계 평균이나 경쟁사 수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후과학에 기반한 감축 경로를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SBTi에서 제공하는 섹터별 가이던스를 충분히 검토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목표의 포괄성 또한 중요하다. 물류기업의 경우 전체 배출량 중 상당 부분이 Scope 3에 해당하는데, 이를 제외하고는 의미 있는 목표 설정이 어렵다. 따라서 공급망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통한 통합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 기준점 설정도 신중해야 한다. 기준년도는 최근 3년 이내로 설정하고, 목표 연도는 최소 5년 이상의 충분한 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너무 짧으면 실질적 감축이 어렵고, 너무 길면 중간 목표 설정이 복잡해질 수 있다.
정확한 측정, 모든 변화의 시작점
SBTi 목표 설정의 첫걸음은 언제나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이다. 물류기업의 경우 배출원이 다양하고 측정 방법론도 복잡해서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운송 부문만 해도 연료 종류와 차량 유형, 운행 거리와 적재량 등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GHG 프로토콜이나 ISO 14064 같은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제3자 검증을 받는 것이 좋다. 측정 데이터의 투명성과 추적가능성을 확보해야 SBTi 검토 과정에서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미래를 향한 긴 여행
SBTi는 앞으로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다.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이 커지면서 목표 설정 기준도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물류업계에서는 이미 주요 고객사들이 협력업체에게 SBTi 승인이나 이에 준하는 탄소감축 목표 설정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투자자들과 금융기관에서도 ESG 평가의 핵심 지표로 SBTi 승인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환경적 책임을 넘어서 비즈니스 경쟁력과 직결되는 이슈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물류업계에서는 탄소중립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SBTi 승인을 받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소 물류기업들도 대기업과의 거래 유지를 위해서는 탄소관리 역량을 키워야 할 시점이다.
물류기업들이 SBTi를 통해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여정이다. 정확한 측정부터 과학적 목표 설정, 그리고 체계적인 실행까지 각 단계별로 전문적인 접근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어제 새벽 물류센터에서 본 그 풍경이, 언젠가는 전기트럭들과 태양광 패널로 가득한 친환경 물류단지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변화의 중심에 SBTi가 있고, 수많은 기업들의 진심어린 약속들이 모여 지구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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