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의 미래를 그리며, 탄소발자국을 생각하다

by GLEC글렉

어느 새벽, 물류센터를 둘러보며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트럭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창고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내뿜는 보이지 않는 탄소들. 우리가 편리하게 받아보는 택배 하나하나에는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이 담겨 있을까.


물류업에 몸담은 지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산업의 변화를 몸소 경험했고,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업계의 화두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중에서도 배출권거래제는 우리 업계에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영어로는 Cap and Trade라고 하는 이 제도를 처음 접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탄소를 돈으로 사고판다니,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얼마나 치밀하고 현실적인 접근법인지 깨닫게 되었다.


정부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상한선을 정하고, 기업들이 그 범위 내에서 배출권을 할당받아 사용하거나 남은 것을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시장 기반의 정책. 전 세계 73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제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15년부터 전국 단위로 시행해 현재 3차 계획기간을 진행 중이다.


물류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업계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천 중 하나라는 사실을. 트럭이 도로를 달릴 때마다, 선박이 바다를 건널 때마다, 물류센터의 불이 켜질 때마다 발생하는 탄소들. 이제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비용으로 계산되는 시대가 왔다.


현재 국내 배출권거래제는 발전, 제조업, 건물, 폐기물, 항공 등 다섯 개 부문을 대상으로 한다.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12만 5천톤 이상이거나 사업장별로 2만 5천톤 이상을 배출하는 업체들이 의무 참여 대상이다. 물류업계 중에서도 대형 물류센터나 운송업체들은 이미 이 대상에 포함되어 있고,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가 물류업계에 미치는 첫 번째 영향은 운영비용의 증가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는 배출권 구매 청구서를 볼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든다. 새로운 비용 항목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배출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면, 장기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비용 압박은 오히려 혁신의 동력이 되고 있다. 배출권 구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 차량 도입,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초기 투자비용은 만만치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확보의 열쇠가 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공급망 전반에 걸친 효율성 추구이다. 탄소배출량이 직접적인 비용으로 반영되면서, 운송 경로 최적화와 적재율 향상, 공동배송 확대 등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고객사들도 이제는 저탄소 물류서비스를 당연하게 요구한다. 지속가능성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무엇보다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직접배출과 간접배출을 정확히 산정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 이것이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다. 운송수단별, 구간별 배출량을 정밀하게 계산하고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이제는 기본 인프라가 되었다.


기술적 대응 방안으로는 친환경 운송수단 도입이 가장 직접적이다. 전기트럭이나 수소트럭, CNG트럭 같은 대체 연료 차량들을 실제로 현장에서 운영해보니,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성능이나 효율성 면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송 경로 최적화 시스템이나 AI 기반 배송 스케줄링, IoT 센서를 활용한 실시간 모니터링 같은 디지털 기술들도 효과가 크다.


물류센터와 창고에서의 에너지 효율 개선도 빼놓을 수 없다. LED 조명으로 교체하고, 고효율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하며, 건물 단열을 개선하는 것은 기본이고, 태양광 패널 같은 재생에너지 활용도 점차 늘리고 있다. 처음에는 투자비 부담이 컸지만, 몇 년 운영해보니 전력비 절감 효과가 상당하다.


최근 들어 공동물류와 협업 물류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러 기업이 함께 배송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차량을 공유하면 전체적인 운송 효율성이 크게 높아진다. 경쟁업체와 손잡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도로 운송에서 철도나 해운으로 일부 물량을 전환하는 모달 시프트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장거리 운송의 경우 철도나 해운이 단위당 탄소배출량이 훨씬 적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화물들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 자체도 하나의 전략적 고려사항이 되었다. 배출권 가격 변동을 예측하고 적절한 시점에 구매하거나 판매하는 것이 이제는 경영진의 주요 관심사다. 국제 탄소크레딧 시장 활용도 검토하고 있는데, 아직은 복잡한 부분이 많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다.


국제적으로는 EU의 배출권거래제가 해운업에도 확대 적용되면서 더욱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024년부터 EU 항구를 출입하는 대형 선박들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니, 해상 운송을 담당하는 물류기업들은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앞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탄소국경조정제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수출입 화물의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무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정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소 물류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직접적인 의무 대상은 아니지만, 대형 화주기업들이 협력업체에게도 탄소배출량 보고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예외는 없다. 모든 기업이 탄소배출량 측정과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다행히 정부도 물류업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친환경 운송수단 도입 보조금, 물류센터 에너지 효율 개선 지원, 탄소배출량 측정 시스템 구축 지원 등의 프로그램들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확대는 분명 물류업계에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 증가와 운영의 복잡성이 늘어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물류 생태계를 구축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체계적인 탄소관리 역량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기회다. 어려운 길이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매일 아침 물류센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오늘도 수많은 화물들이 전국 곳곳으로 배송될 텐데,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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