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물류 현장에서

CBAM이란 새로운 녀석을 만났다

by GLEC글렉

어느 가을날, 부산항을 바라보며 서 있던 기억이 있다.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며 세계 곳곳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 모든 움직임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물류업계가 이렇게 급격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2023년 10월, EU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일명 CBAM이 시행되었다.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라는 긴 이름 뒤에는 지구 환경을 향한 인류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그저 또 하나의 규제 정도로 여겼던 이 제도가, 1년여가 지난 지금 물류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물류업계에서 일하는 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30년 넘게 이 업계에 몸담아온 그는 "이렇게 큰 변화를 겪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과거에는 단순히 화물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옮기는 것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배출량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EU로 수출되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제품들을 취급하는 물류업체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각 제품이 생산되는 순간부터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과정의 탄소발자국을 추적해야 하니 말이다.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세세한 기록과 추적이 필요해진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변화에 대응하는 업계의 양상이다. 대기업들은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전담팀을 꾸리고 첨단 시스템을 도입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반면 중소 물류업체들의 사정은 다르다. 한정된 자원과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하고 있다.


어느 중소 물류업체 대표와 나눈 대화가 인상 깊었다. "솔직히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탄소배출량이라는 게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생존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의 눈빛에서 절실함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첫 번째 여정은 측정과 관리에서 시작된다. 운송 수단별로, 거리별로, 화물 종류별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가계부를 쓰듯 세심한 기록이 필요한 작업이다. IoT 센서와 GPS 추적 시스템, 연료 소비량 모니터링 장비들이 이제 물류업체의 필수템이 되었다.


두 번째 변화는 운송 수단 자체의 혁신이다. 전기트럭이 도로를 달리고, 수소 연료전지 차량이 등장하며,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는 선박들이 항구에 정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래가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초기 투자비용은 상당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탄소세 부담을 덜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다.


효율성 극대화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물류 현장에 스며들면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교통 상황과 날씨, 화물의 특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최적 경로를 찾아주는 시스템을 보면서, 기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이다. 물류는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여러 주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다. 화주기업과 운송업체, 창고업체가 함께 손을 잡고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디지털 전환도 가속화되고 있다. 종이로 된 서류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모든 정보가 클라우드 상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데이터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확보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고 있다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중소 물류업체들을 위한 지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CBAM 대응 컨설팅 지원과 친환경 장비 도입 보조금,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업계 차원에서도 공동 플랫폼을 구축하고 정보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들이 돋보인다.


글로벌 무대를 바라보면 더욱 흥미롭다. DHL, 페덱스, UPS 같은 세계적인 물류기업들이 이미 몇 년 전부터 탄소중립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전기차 도입과 재생에너지 사용, 탄소상쇄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측정의 정확성은 이 모든 변화의 기초가 된다. 단순히 연료 사용량에 고정된 계수를 곱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운행 조건과 차량 상태, 도로 환경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정밀한 측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측정 도구와 검증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CBAM이 단순한 규제를 넘어 새로운 기회의 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탄소배출량이 낮은 물류서비스가 프리미엄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고, 기업들의 ESG 경영을 지원하는 컨설팅 서비스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로운 기업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앞으로의 전망도 흥미진진하다. 현재 6개 품목에서 시작된 CBAM이 점차 더 많은 제품군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는 전 지구적인 변화의 물결이 될 것 같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물류업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대응책이 아닌 장기적인 비전이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자각해야 할 때다.


한 물류업계 전문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CBAM은 우리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제시해주었다." 탄소배출 저감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물류업계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이 시점에서, 물류업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간다면 CBAM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물류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오늘의 변화가 내일의 희망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더 푸른 지구를 물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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